21대 국회가 개원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아직 국회는 개문발차만 한 상태다. 답답한 원(院) 구성 협상 중에 문을 열어 놓은 채 출발은 했지만 채 한 정거장도 못 가 멈춰 서 있다. 여야는 법사위원회 위원장을 누가 할 것인가를 두고 사생결단하듯 싸우고 있다. 압도적인 의석을 가진 여당이 제가 가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한심하고, 중간선거에서 민심의 심판을 받아 대패한 야당이 반성은커녕 기세등등한 행태를 보이는 것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국회는 상임위원회를 통해 실질적으로 운영된다. 전체 300명 의원들이 모여 법안 등을 의결하는 본회의에서는 최종적으로 표결만 한다. 18개 상임위원회에서 법안을 비롯한 안건의 심의와 정부 부처에 대한 질의와 견제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의원들은 보통 18개 상임위원회 중 한 곳에 소속되어 의정활동을 한다. 의원들 사이에서는 국토교통위원회, 정무위원회, 산업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 등이 인기가 높고 환경노동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등은 홀대받는 편이다.

각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장관급으로 예우 받으면서 상임위원회를 운영한다. 법사위원장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그만큼 권한이 크기 때문이다. 법사위원장의 권한은 법사위원회의 특별한 위치에서 나온다. 법사위원회는 국회에서 논의, 의결되는 법안들이 헌법이나 다른 법률체계와 모순되는지를 심사하는 체계·자구 심사권을 갖는다. 법사위원회는 체계·자구 심사권을 가지고 국회의 상원 역할을 한다. 법사위원장은 하기에 따라서 국회의장 못지않은 역할이 가능하다.

미래통합당은 법사위원장을 자신들이 가져가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야당 몫의 관행’을 든다. 그런데 이 주장이 딱히 근거가 뿌리 깊은 주장은 아니다. 국회에 법사위가 설치된 이후 첫 야당 법사위원장은 목요상 의원이다. DJ정권 출범 이후 야당이 된 한나라당이 여권에 국회의장을 내주는 대가로 법사위원장을 차지하면서 ‘야당 몫’이 시작된 것이다. 그 이후로 관행처럼 야당 출신이 법사위원장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야당 몫’ 관행은 20대 국회 전반기에 깨졌다. 당시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패한 뒤에도 법사위원장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심지어 새누리당은 탄핵 이후에는 여당 원내대표가 ‘관행’으로 맡아 왔던 ‘운영위원장’ 자리 마저 내놓지 않는 관행 파괴를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관행을 들어 자기들 몫을 주장할 만한 처지는 아닌 것이다. 이런 미래통합당이 몽니에 가까운 고집을 부리는 데는 노림수가 명확하다.

미래통합당으로서는 법사위에서 길목을 지키는 것 말고는 딱히 거대여당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  176석 더불어민주당은 18개 전 상임위에서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정의당이나 열린민주당도 유사시 여권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높다. 의석수만 놓고 보면 가히 헌법 개정 말고는 못 할 일이 없다. 법사위의 게이트 키핑 기능이 미래통합당이 활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고, 쥘 수만 있다면 ‘절대반지’에 해당한다.

반면에 여권 입장에서는 미래통합당이 법사위를 백분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라 양보를 기대하긴 불가능하다. 당 지도부가 양보를 했다가는 당원들에 의해서 사퇴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 그 정도로 당내 분위기가 험악하다. 법사위가 없어도 저렇게 몽니를 부리면서 사찰을 돌며 국회를 공전시키고 있는데 법사위를 가져가면 어떨지 생각만 해도 끔찍할 것이다. 이렇게 법사위를 두고 싸우는 중에 총선 민심은 완연히 퇴색했다. 국회 관행이 원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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