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2일 만의 실형 선고, 그마저도 ‘반쪽짜리 재판’ 논란

[제공=청년 건설노동자 故김태규 씨 유가족]
[제공=청년 건설노동자 故김태규 씨 유가족]

[일요서울 | 양호연 기자]지난해 4월 아파트형 공장 신축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화물용 승강기 추락 사망 사고, 이른바 ‘고(故) 김태규 청년 추락사’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재판부가 실형을 선고했다. 유족들은 그간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산재사망사고에 대해 집행유예가 이뤄지던 것과 달리 실형 선고를 한 점을 다행으로 여겼지만, 판결에 대한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여기에 일부 시민단체는 주요 책임자가 모두 불기소된 ‘반쪽짜리 재판’이었다고 비판했다.


- 사망사고에도 시공사 벌금 ‘700만 원’...사법부 책임론 대두
- 유가족 “비일비재한 건설노동자의 죽음...멈추는 계기 되길”



김 씨는 지난해 4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아파트형 공장 신축 공사 현장의 화물용 승강기 5층에서 떨어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조사 결과 당시 현장의 안전 조치가 소홀히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출입문을 연 채 승강기를 운행하도록 한데다가 해당 승강기는 설치 검사를 받기 전 사용 허가가 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검찰은 지난해 12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받는 건설사 직원과 승강기 업체 대표 등 3명과 건설사 법인을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시행사와 발주처 관계자 등은 과실이 인정되지 않아 불기소 처분했다.

이 같은 검찰의 결정에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일하는2030,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청년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님 산재사망 대책회의’는 수원지검을 규탄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항고장을 제출키도 했다. 이후 유가족과 대책회의 등은 각종 규탄 시위를 이어가며 재판부에 책임자에 대한 엄중 판결을 촉구했다. 이와 함께 언론 등에 사건이 알려지면서 일부 여론은 당시 사고에 대한 안전관리와 감독 소홀 등에 대해 비판에 나서기도 했다.

시공사 700만 원刑
유가족 “분노 한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462일 째 되는 날인 지난 19일, 수원지법 형사1단독(이원석 판사)은 공사현장소장 김모씨와 현장차장 문모씨의 업무상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 각각 징역 1년,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씨와 문 씨가 도주 우려 없음을 이유로 법정구속 하지는 않았다. 승강기 제조업자 이모씨에 대해서는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시공사 은하종합건설에 대해서는 벌금 700만 원 형을 선고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형법상의 업무상과실치사죄(268조)를 비춰 봐도 너무 낮은 형량이라며 반발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 측은 “실형 선고마저도 유가족이 직접 나서 시민사회에 알려 이뤄진 결과”라며 “실형이라고 해도 선고를 받은 사람이 현장소장일 뿐이라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은하종합건설에 대해선 고작 700만 원이라는 점에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분개했다.

유가족 측은 건설현장의 추락사가 빈번히 발생하는 점을 언급하며 기업과 최고경영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기업들이 안전 조치에 들이는 비용보다 벌금이 더 낮다는 이유로 안전조치를 소홀한 경우가 다분하다는 설명이다.

“‘죄’와 ‘책임’ 위한 투쟁”
산재 사망, ‘건설 분야’ 50%


민주노총 경기지부(이하 민노총)도 재판부의 이번 1심형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며, 기업과 함께 사법부의 책임에 대해 비판을 이어갔다. 이들에 따르면 이번 재판이 산재 사망사고의 핵심 안전책임자인 법인 대표를 제외하는 등 주요 책임자가 모두 불기소된 ‘반쪽짜리 재판’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산재 사망사고의 핵심 안전책임자인 법인 대표가 기소되지 않은 점과 추락사의 직접적인 원인인 ‘문 열린 화물용 엘리베이터’ 책임 주체 건축주 역시 법망을 피해갔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성명서 발표를 통해 “기업에는 살인이라는 ‘죄’가 있는 것이고, 법적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는 사법부에는 재발을 방지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며 “사법부의 책임방기를 막기 위해서라도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 제정’에 모든 노력과 투쟁을 병행해 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편 건설 현장의 산재 사고 중에서도 추락 사고는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고용노동부 ‘전체 산업 재해현황’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건설업은 2만7686명으로 나타났으며, 이 중 ‘떨어짐’이 9191명으로 집계돼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뒤이어 ‘넘어짐’이 4083명, ‘물체에 맞음’이 3181명, ‘절단‧베임‧찔림’이 2849명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사고 사망자는 전체 971명으로, 이중 건설 분야 사망자가 50%(485명)에 이르렀고, 추락으로 인한 사망자는 60%(290명)을 차지했다.

이런 상황에 지난해 5월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은 건설 분야에서 추락재해를 추방해 적어도 100명 이상의 사고사망자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예방활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 10대 건설업체 최고경영자들도 안전수칙 준수 등 자율관리 방안을 담은 ‘안전 경영 선언문’을 발표 했다. 이 같은 활동 추진 방안과 선언문 발표가 단순히 ‘보여주기 식’이 아닌, 일선 건설현장 근로자들의 안전과 목숨을 지켜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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