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가스라이팅(gaslighting)”. 특정한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타인이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하도록 만들고, 현실감과 판단력을 흐리게 함으로써 그 타인을 정신적으로 파괴시키고 실질적 지배력과 통제력을 행사하여 결국은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가스등(Gas Light)”이라는 연극에서 비롯된 정신적 학대를 일컫는 심리학 용어다.

또 20대의 꽃다운 청춘이 스러져갔다. 철인 3종 국가대표 출신으로 전도양양했던 최숙현 선수가 폭언, 폭행을 이기지 못한 채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감독이 욕을 안 하면 ‘오늘 뭐 잘 못 먹었나?’ 싶을 정도로 폭언은 일상이었죠. 여러 번 맞기도 했어요.” 경주시청 철인 3종 경기(트라이애슬론)팀에 몸담았던 선수의 말이다. 군 시절 고참들이 “나때는 얼차려 한판 안 하고 누우면 불안해서 잠이 안 왔어.”라는 농담이 데자뷔된다. “가스라이팅” 그 자체다. 

국민배우로 사랑받던 80대 중반의 노신사 ‘대발이 아빠’ 이순재 씨가 일정을 관리하고 이동을 도왔던 매니저로부터 “두 달여간 배우 가족의 허드렛일을 했다.”는 폭로로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두 달가량 근무하는 사이 아내가 3번 정도 개인적인 일을 부탁했는데,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아내에게 주의를 줬고, 매니저에게도 사과했다”고 말했지만 매니저는 추가 폭로도 예고하고 있다. 왜곡되고 부풀려진 부분도 있어 억울하다는 소속사 목소리의 크기는 왠지 작게 들린다.

“이번 항소심 실형 판결을 통해 피고인에 대한 저희 가족들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그마한 위안을 삼습니다.”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과 상해, 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최종범 씨에 대해 징역 1년이 선고되고 법정구속된 직후, 고(故) 구하라 씨의 친오빠가 쓴 글이다.

정치 분야에서도 갑질 방지에 대한 각종 법률을 입안하고, 정당에도 ‘乙지로위원회’라는 위원회를 만들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도 연일 대중소기업 간의 상생이나 노사 간 상생을 통해 갑질 문화를 걷어내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 심지어 상명하복 문화가 기본이었던 군대 내에서도 고참의 갑질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동기들끼리 내무반을 사용하게 만드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뿌리 깊게 박혀 있던 갑질 문화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가고 있다. 최소한 표면상으로는 그렇다.

모 건설사 고참 부장이 부하 직원들의 근무 태도에 대해 일장 훈계를 하니 “저 그리 오래 다닐 생각 없어요.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라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교수도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나오는 게 “너 애인 있니?”라는 질문은 안 된다는 것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그런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써야 되는 세상이다. 기존 악습이나 관성에 의해 당연시되던 일도 시대 변화에 따라 범죄가 되기도 하는 세상인 것이다. “코로나19”로 급변한 사회 문화적 인식에 비추어 보면 더 많은 분량의 가치관이 흔들릴 것이다. 

이렇듯 급변하는 사회 인식을 외면한 채, 갑질의 관성에 익숙해서 여전히 사회 각 분야에서 상하 관계나 힘의 불균형에 따른 언어 폭력 및 성희롱, 데이트 폭력 등 다양한 갑질 뉴스가 등장한다.
 
갑질에 젖어 있는 이 땅의 甲님들아. 이제 ‘갑질의 추억’은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갬성” 속에 고이고이 간직하시라. 혼자 “레트로 갬성” 가운데 갑질을 추억하며 “이불킥(이불을 뒤집어쓰고 발길질을 하는 행위를 말하는 신조어)을 하는 것이 슬기로운 갑질 생활을 오래오래 즐기는 길일지니.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