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연 “구체적 사항 없다” 싱크탱크 구상 속 ‘동상이몽(同床異夢)’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미래통합당이 개혁을 위한 진통을 겪고 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5월31일 통합당의 외연 확장을 위해 독일 기독민주당(기민당)의 싱크탱크인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을 모델로 한 여의도연구원의 개혁 방향을 제시하고 ‘아데나워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독일 유학파 출신인 김 위원장이 벤치마킹 하려고 하는 정당은 독일의 기민당이다. 반면 김 위원장의 이런 구상에 대해 당내·외에서 반발도 불러왔다. ‘아데나워 프로젝트’를 내세운 김 위원장의 의도가 무엇인지 일요서울이 추적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비대위원장실에서 슈테판 잠제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한국사무소 소장과 면담 전 악수하고 있다. 2020.06.26.[뉴시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비대위원장실에서 슈테판 잠제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한국사무소 소장과 면담 전 악수하고 있다. 2020.06.26.[뉴시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통합당 개혁을 위해 독일 ‘기독민주당(기민당)’,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그리고 ‘영유니온(청년조직)’을 롤모델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지난달 26일 밝혔다. 

김 위원장은 최근 자신의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독일 기민당을 봐라. 보수 정당이지만 보수를 앞세우지 않으면서 보수주의를 실천하고 좌파의 어젠다까지 선점하여 좌파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가 언급한 대로 기민당은 1983년부터 헬무트 콜 총리가 16년 동안 집권했다. 기민당은 1998년 총선에서 사민당에 패해 2004년까지 정권을 내줬지만 2005년 다시 메르켈 총리 집권 후 15년째 독일을 이끌어 가고 있다. 

아데나워 재단은 기민당 출신인 서독 초대 총리 콘라드 아데나워의 이름을 따서 만든 재단이다. 당의 이념과 사상적 기반을 연구·제공하고 다양한 분야의 청년 인재들을 교육시킨다. 김 위원장이 아데나워 재단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통합당의 집권을 위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 진보적 정책이라도 적극 발굴·도입하여 보수정당인 기민당이 장기 집권할 수 있도록 동력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김 위원장은 진보 관련 의제를 던져 이슈 선점을 주도했다. 반면 통합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4.15총선 참패를 예측하지 못했고 정책적 이슈도 선점하지 못해 당 안팎에서 비판을 받았다. 

김 위원장의 관심은 ‘아데나워 프로젝트’의 일환인 ‘청년 조직’과도 무관치 않다. 통합당은 지난달 22일 당내 청년 조직을 개혁하기 위해 ‘한국식 영유니온 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독일 기민당의 청년 조직인 영유니온을 모델로 하겠다는 것이다. 영유니온은 14~35세 청년 당원으로 구성돼 있다. 전국 지역조직이 갖추어져 있으며 회원은 12만 명에 달한다. 자체적으로 전당대회와 토론회 등 행사를 운영하며 지도부를 선출하고 독자적 목소리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통일을 이끌었던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도 영 유니온 출신이다. 김 위원장의 이러한 의지를 반영해 통합당 비대위원들은 각자 역할을 나누어 ‘아데나워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4.15총선에서 통합당은 청년 정치인들에게 기회를 준다며 청년가산점 제도를 만들어 홍보했다. 하지만 공천권을 두고 이루어진 계파 싸움에 청년 정치지망생들은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구색 맞추기 용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자신의 지역구가 아닌 타지에 출마해 낙선을 면치 못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통합당의 용인술 때문에 ‘킹 메이커’란 별명을 가진 김 위원장도 인재풀이 없어 고전하고 있다.

현재 통합당은 총체적 난국에 빠진 형국이다. 보수 성향의 핵심 지지층에게도 신뢰를 얻지 못해 당 지지율은 공회전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국회 상황도 ‘빨간불’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상임위원장 독식 사태’를 거치며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김 위원장은 통합당이 다시 국민의 지지를 받아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아데나워 프로젝트’에 희망을 걸고 있다. 

 

정원석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차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0.06.01.[뉴시스]
정원석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차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0.06.01.[뉴시스]

 

‘아데나워 프로젝트’ 실무자 정원석 “청년 인재 육성”

일요서울은 ‘아데나워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정원석 비대위원과 지난 1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 위원은 작년 하반기 여의도연구원 추천으로 영유니온(청년조직) 전당대회에 직접 관여한 인물이다. 베를린 기독민주당 중앙당과 아데나워 본사 등을 돌아보고 독일 집권여당의 차별화된 정치 생태계를 경험했다. 지난 4.15총선 이후 인재양성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에 의해 비대위에 발탁 ‘아데나워 프로젝트’ 핵심 실무자가 됐다.

먼저 정 위원은 김 위원장이 개혁 대상으로 지목한 여의도연구원에 대해 “여의도연구원의 발전을 위해선 특정 개인의 이기심과 정치적 욕심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데나워 프로젝트’의 핵심사안에 대해서는 “독일의 아데나워 재단처럼 교육과 대외협동사업, 정책연구 등의 여러 기능을 수행하고 기독민주당, 영유니온(청년조직)과 상호 유기적인 화합을 이뤄낼 수 있는 미래의 청년 인재를 길러 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 위원은 “통합당 내 청년국과 여의도연구원 청년정책센터 그리고 아데나워 재단과 연계하여 프로젝트를 진행시킬 준비 중에 있다”고 전했다. 통합당이 그의 말대로 기초조직을 개선하면 ‘기사회생(起死回生)' 가능성이 있을까.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바른사회운동연합 주최 '21대 국회,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2020.04.24.[뉴시스]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바른사회운동연합 주최 '21대 국회,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2020.04.24.[뉴시스]

 

아데나워 “더 할 말 없다”, 자유기업원 “정체성 확립 먼저”

한편 지난달 30일 자유기업원 최승노 원장은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먼저 우리 사회는 보수주의에 관한 정체성이 제대로 합의되지 않았다”라며 “우선순위를 정해 보수주의에 대한 이해 그리고 비젼 등이 먼저 합의되고 현실적으로 보수진영에 가장 필요한 시스템이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해외의 특정 재단이나 정당의 성공에 집착하지 말고 우리 정치 지형과 여건에 맞게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일요서울은 ‘아데나워 프로젝트’의 준비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1일 여의도연구원 관계자에게 물었다. 연구원 관계자는 일요서울에 “여연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직 없다. 비대위에서 거론된 사항 외 구체적으로 나온 것은 없다”라고 답했다. 이어 콘라드 아데나워 한국 재단 관계자도 “아직 통합당과 구체적으로 이야기 나눈 것은 없다. 더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전화를 끊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1일 취임한 가운데, 당내 쇄신 드라이브에 착수한 지 한 달을 넘겼다. 당내에선 김 위원장이 외연 확장을 명분으로 ‘보수’라는 용어도 쓰지 말라고 한다며 좌클릭을 한다고 비판한다. 다른 일부에선 김 위원장 자신이 대권에 욕심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87세까지 14년간 집권한 콘라드 아데나워 총리의 이름을 딴 재단을 부각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한편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스스로 ‘킹’ 될 수 있느냐는 것에 대해 (내가) 그런 무리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라며 대권에서 한 걸음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독일 관련 재단 등을 내세워 당 개혁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향후 그의 행보가 주목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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