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인재(人災)” 안산 유치원만의 문제 아니다

집단 식중독이 발생한 안산 소재 유치원. [뉴시스]
집단 식중독이 발생한 안산 소재 유치원.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경기 안산 유치원 집단 식중독 사태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과거 경기도 내 여러 사립유치원에서 ‘부실 급식’, ‘교비 부정 사용’ 등의 문제가 불거졌지만 시정되지 않아 발생한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코로나 문제에 아이들 급식관리까지 비상이 걸린 상황이라 학부모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코로나19 이어지는데 엎친 데 덮친 격’···학부모들 충격

급식 비리=유치원 비리···어떻게든 돈 남기려는 설립자원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학부모들의 걱정이 많은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인 사립유치원 문제가 불거졌다. 바로 경기 안산에 위치한 한 유치원에서 집단 식중독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앞서 지난달 20일 질병관리본부는 해당 유치원에서 장출혈성대장균 감염병 환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장출혈성대장균 감염증은 감염에 의해 출혈성 장염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심한 경련성 복통과 구토, 설사, 미열 등 증상이 나타난다. 보통 5~7일 후 호전되나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일명 햄버거병) 합병증이 나타나면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주로 소고기로 가공된 음식물에 의해 감염된다. 조리가 충분하지 않은 햄버거 섭취로 발생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1982년 미국에서 덜 익힌 패티가 든 햄버거를 먹은 어린이 수십 명이 HUS에 집단 감염되면서 햄버거병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햄버거병 환자의 절반 정도가 투석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신장 기능이 망가지는 증세를 보인다.

해당 유치원에서는 지난달 18일 장출혈성대장균 감염병 환자가 확인된 후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최근 5년간 장출혈성대장균 감염병 환자 발생은 지난 2015년 71명, 2016년 104명, 2017년 138명, 2018년 121명, 2019년 146명 등으로 나타났다.

학부모들 ‘분개’

“원인을 아이 탓으로 돌려”

해당 유치원에서 식중독 의심증상을 보이는 원아가 계속해서 발생한 가운데, 식중독 증상으로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햄버거병을 진단받은 원생이 나왔다. 이 중 일부는 신장 기능 이상 등으로 투석 치료까지 받았다.

아이들의 식중독 감염이 발생한 지 10일이 넘은 시점에도 집단 감염 원인이 파악되지 않았다. 분개한 학부모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당시 학부모들은 “유치원에서 아이들끼리 식중독에 걸려서 전파된 것이 아니냐고 하는 것 같던데 이런 방식으로 넘어가서는 안 될 문제”, “5, 6, 7세 반 아이들이 다른 층을 쓰는데 어떻게 전체가 감염될 수 있느냐”, “감염 원인을 아이들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라며 울분을 토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원인을 면밀히 조사해서 환자 치료를 포함한 관련 조치를 철저히 이행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교육부는 집단 식중독 사태를 규명하기 위해 원인 등을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예방관리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를 위해 교육부와 경기도교육청,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본부는 대책반을 꾸려 대응하기로 했다.

정치권에서는 비판 행렬이 이어졌다. 미래통합당은 “이번 사태가 예견된 인재(人災)와 마찬가지”라며 “정부는 첫 환자가 발생한 지 꼬박 열흘이 지나서야 첫 관계부처 회의를 갖고 공식 사과를 했다”고 비판했다.

통합당 배준영 대변인은 “피해 원아의 학부모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전염을 막을 수 있었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며 “부모들에게 정확한 원인은 알려주지 않은 채 역학조사를 위해 필요한 음식재료는 서둘러 폐기처분했으며 등원 중지 요청에도 사태 8일이 지나서야 공식 폐쇄됐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안산 유치원

‘돈 부정 사용’ 회자

악화되는 상황에서 해당 유치원 원장이 2년 전 경기도교육청 감사를 통해 유치원 돈을 빼돌려 부정 사용하다가 적발돼 징계를 받았던 사실이 부각됐다.

도교육청은 지난 2018년 감사를 통해 이 유치원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뒤 결과보고서를 발표했다. 당시 도교육청은 ‘2015년~2017년 사립유치원 감사결과 보고서’를 통해 해당 유치원장이 학부모들이 낸 수익자부담금 등을 식사비와 개인적 사용으로 3억9471만 원을 보전조치를 처분 받았다고 밝혔다.

또 도교육청은 해당 보고서를 통해 이 유치원에서 원아들 교육활동에 써야 할 교비 8477만 원이 영수증 미비 등 부정하게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감사 결과를 토대로 해당 유치원장은 정직 3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았다.

5세 아이를 두고 있는 엄마라고 밝힌 한 학부모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교육과 무관한 개인 경비로 사용한 이력으로 감사에 걸린 적이 있는 유치원이 과연 제대로 된 음식을 먹였을까요?”라며 “개인 경비로 수억 원을 해먹은 전적이 있는 유치원 원장의 실태를 알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아이가 복통을 호소했다. 병원에서 진단을 해보니 장출혈성 대장증후군이라는 병명이 나오더라. 주변에서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원생이 차츰 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혈변을 보기 시작했고, 변에서는 알 수 없는 끈적한 점액질도 나왔다. 어떤 아이는 소변조차 볼 수 없게 돼 투석까지 이르게 됐다”면서 “이런 상황 속에서도 유치원은 아파트 앞에서 주마다 열리는 장날 음식을 의심하더라. 장날 음식을 먹지도 않은 99명의 아이들이 왜 유독 그 유치원에 다닐까. 유치원 원장은 앞에서는 용서를 구하지만 이런 식으로 책임회피, 책임전가 할 구실만 찾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도대체 어떤 음식을 먹여야 아이들이 혈변을 보고, 투석을 하고, 햄버거병으로 밤낮을 고생하며 병들어 갈 수 있는 거냐”면서 “엄마가 미안하다. 너를 그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더라면...”이라고 적었다.

해당 청원은 지난 3일 오전 기준 4만2000명이 넘는 시민이 동의를 했다. 다른 원생의 이모라고 밝힌 청원자도 “6세 사랑하는 조카를 살려주세요”라는 청원을 올리며 피해를 호소했다.

학부모들은 해당 유치원 원장을 상대로 경찰에 고소했다. 식품위생법 위반과 업무과실치상 등의 혐의다. 경찰은 지난달 29일 이 유치원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경찰은 유치원 내 CCTV와 급식 관련 자료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산시는 이 유치원에 대해 ‘보고 의무’ 소홀로 과태로 200만 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급식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

사실 경기도 내 사립유치원들의 회계부정 행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도교육청 감사를 통해 여러 유치원의 비리가 드러났다. 사립유치원 설립자‧원장의 회계부정 행위는 아이들 급식 수준 저하로 이어진다. 이번 사태가 예견된 인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제대로 된 대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제2‧3의 안산 유치원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교육 시민단체인 비리사립유치원 범죄수익환수 국민운동본부(비범국) 공동대표이자, 전국사립유치원교직원 노동조합(유치원노조) 사무처장인 박용환 씨는 일요서울에 “예견된 인재였다. 급식 비리는 유치원 비리가 있는 곳에서는 생길 수밖에 없다. 유치원 비리라는 것은 돈을 어떻게든 많이 남기겠다는 것 아니냐. 돈을 남기는 데 있어서 빠지지 않는 것이 급식”이라며 “수입은 고정적이고 국가지원금이 2730원인데, 어떻게든 남기려고 하는 게 유치원 원장‧설립자들의 기본 마인드다. 급식에서 부실한 식자재가 들어가고, 양을 줄여서 애들한테 공급하고…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이어 “영양사를 안 쓰는 것도…보통 다섯 군데 유치원에 한 영양사가 같이 맡고 있다. 그런 식으로 인건비도 줄이려 한다”면서 “이러다 보니 안산 유치원 사태처럼 급식 문제가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또 “이번에 이재정 교육감이 영양사를 사립유치원에도 다 전담으로 배치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면서 “제도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이 있게 되면 부실한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할테니 말이다. 현실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2730원으로 배정된 급식비가 실제 아이들에게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면밀하고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다. 투명해야 한다. 급식비를 지금도 횡령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원아수가 많은 곳은 월 수천만 원씩 급식비를 지원 받는다”면서 “계산서는 높은 금액으로 만들고, 실제 납품되는 식자재는 부실하게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문서상으로만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게 아닌, 실제로 제대로 공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또 아무리 아이들이라고 해도 2730원의 급식비는 너무 낮다. 최소 3000원 대 이상으론 올라야 하지 않을까”라고 조언했다.

한편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유치원 현장에 대한 체계적인 급식 관리 시스템 도입을 약속했다. 이번 사태 대안책으로 경기 지역 모든 유치원에 보건교사를 배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교육부도 가세했다. 시도교육청과 함께 일정 규모 이상 유치원에 대한 전수 점검을 추진한다고 밝힌 것.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전국 50인 이상 원아가 있는 유치원 어린이집에 대한 전수점검에 들어가 어린이 급식 상황을 확인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경기도교육청은 오는 8월부터 감사 거부, 감사결과 조치 미이행 사립유치원에게 ‘학급운영비’와 설립‧경영자가 교원으로 활동하는 경우 지급하는 ‘교원 기본급’ 등에 대한 재정 지원 배제 조치를 한다고 밝혔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5월18일 일요서울에 감사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사립유치원에 대해 강력한 행정조치를 할 수 있도록 내부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안산 유치원 사태로 정부‧정치권까지 사립유치원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여러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이를 계기로 사립유치원에 만연한 비리가 뿌리 뽑힐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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