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산업안정기금, ‘대한항공’ 위해 만들었나

기간산업안정기금 운용심의회가 출범한지 한 달이 훌쩍 넘어가고 있지만, 아직 그 예상 리스트조차 나오지 못한 상황에 대한항공만 예정되면서 업계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이창환 기자]
기간산업안정기금 운용심의회가 출범한지 한 달이 훌쩍 넘어가고 있지만, 아직 그 예상 리스트조차 나오지 못한 상황에 대한항공만 예정되면서 업계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코로나19에 의한 직접 피해 기업만 지원이 가능하다며 방향성을 설정했다는 ‘기간산업안정기금(이하 기안기금)’이 40조 원의 자금 지원을 받을 기업을 아직 선정하지 못하고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일 열린 제6차 기안기금 운용심의회에서 코로나19 이전부터 구조적 취약 요인이 있는 기업들에 대한 지원 여부를 논의하고도, 산업은행법상 설립목적을 감안해 배제하자는데 뜻을 모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의 경영 애로를 지원하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지만 여태 검토단계에만 머물러 그 대상을 탐색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기안기금, ‘검토만 한 달째’…처음 시행되는 제도 핑계 
저비용항공사(LCC) 및 인수절차 진행 아시아나항공 제외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산업은행 소속 인원 등으로 구성된 기간산업안정기금 운용심의회(기금운용심의회는)에 따르면 그 첫 대상으로 대한항공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기금운용심의회는 기금의 기준인 총 차입금 5000억 원 이상, 노동자 수 300인 이상의 요건에 해당하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매출 감소 등 경영상 어려움에 처해 자금 지원을 통해 일시적 위기를 극복하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업으로 대한항공을 고려하고 있다. 

기금운용심의회는 당장 대한항공의 구체적인 자금 수요와 필요한 시기 등에 대해서는 실무 협의자 진행 중인 점을 감안해 추후 해당 기업의 자금 신청 시 세부 지원조건을 심의할 예정이다. 세부 조건에 대한 협의가 마무리되면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을 통해 자금지원 신청이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다만 예측에 불과할 뿐 아직 단 한 기업도 확정된 곳은 없고 추가적인 예상리스트도 없다. 

기안기금 대상 ‘아직도’ 검토 중

일각에서는 신청 기업이 없는 것은 기간산업이 그 만큼 어렵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실효성 없는 정책을 세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지속해서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하고 있는 산업은행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또 다른 이유로 정책 기금을 마련하면서 기간산업 가운데 정말 필요한 기업이 포함되도록 설계하지 못해 신청 기업 또는 검토 기업이 없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즉, 기간산업 기업들이 기금 지원을 받을 만큼 어렵지 않거나, 기금 신청 대상이 될 수 없도록 설계했다는 의미인데 지금 반토막 난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을 비춰볼 때 전자일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산업은행과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해당 정책 기금의 운용 방향은 금융위가 결정을 내리고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치게 된다. 이후 산업은행은 심사 대상 기업들에 대한 모니터링과 신청 내용 검토 및 심사 진행 등 실제 운용을 하는 입장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일부 기업들 사이에서는 “‘40조 원 만들어 놓고도 다 못 쓸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며 “신청 대상의 조건을 넓게 두고 신청한 기업을 상대로 검토와 심사가 진행돼야 하는데 전제된 조건이 까다로워 신청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철저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안기금은 지난 4월30일 20대 국회 말미에 ‘40조 기간산업안정기금 설치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인도계 대주주 마힌드라의 투자 철회로 유동성 위기와 신차 개발 투자금 부족에 놓인 쌍용자동차는 해당 기금을 간절하게 바랬다. 

하지만 지난 5월28일 열린 기안기금 출범식 등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쌍용차는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자체 노력으로 해결하라”고 선을 그었다. 이후로도 금융위원장과 산업은행장은 수차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직·간접적으로 “쌍용차는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 시켜줬다. 

대한항공 위한 항공 산업 지원

기안기금의 지원을 간절히 바라지만 수혜자가 될 수 없는 곳은 또 있다. 기금운용심의회는 저비용항공사(LCC)에 대해 그간 정책금융을 통해 약 4000억 원의 자금을 지원해 왔으며, 정부의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135조원+α)을 통한 지원이 우선 검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을 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기안기금 관련 회의를 통해 항공업을 우선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에 나설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아시아나항공은 인수 절차에 있다고 제외하고, LCC는 다른 정책 금융으로 배제하면 결국 남는 곳은 대한항공 한 곳뿐인데 기금이 대한항공을 위해 마련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29일 정세균 국무총리는 국회 본회의 자리에서 약 40조 원에 달하는 3차 추경안을 두고 “글로벌 경기침체와 코로나19 등으로 맞게 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하게 됐다”며 “수출 기업들의 실적 악화와 항공, 자동차 등 관련 산업계는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고용 상황은 더욱 어려워져 특히 임시직, 일용직 등 취약한 일자리를 중심으로 감소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경제회복 지원과 한국판 뉴딜 등 포스트 코로나 대책의 뒷받침을 위해 총 35조3000억 원 규모의 추경을 마련했다. 여기에는 중소, 중견기업 긴급자금 40조 원 공급을 위한 출자와 주력산업 및 기업의 긴급 유동성 42조 원 공급을 위한 출자 및 출연자금 3.1조 원을 편성해 넣었다. 

경제위축과 코로나19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들은 이번 추경으로 편성된 자금은 담당기관이 얼마나 오래 검토하고 누가 수혜를 입을지 지켜보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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