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발탁돼 정계입문, 햇볕정책 주도적 관여
대북송금 문제로 유죄 판결, 옥고 치르기도
6월17일 청와대 오찬 참석하며 직접 조언
정치 9단 정평, 국내 정치 관여 우려 '불식'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오후 국정원장에 박지원 전 의원을 내정했다고 밝혔다.(사진=청와대 제공) 2020.07.03.[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오후 국정원장에 박지원 전 의원을 내정했다고 밝혔다.(사진=청와대 제공) 2020.07.03.[뉴시스]

 

[일요서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이 대북 정보 등 국가안보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관련 범죄를 수사하는 국가정보원의 수장으로 내정됐다. 박 내정자가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답게 햇볕정책을 계승해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청와대는 지난 3일 박 내정자를 지명하며 "박 후보자는 4선 국회의원 경력의 정치인으로 메시지가 간결하면서 명쾌하고 정보력과 상황판단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제18·19·20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활동해 국가정보원 업무에 정통하다"고 소개했다.

청와대는 또 "박 후보자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으며 현 정부에서도 남북문제에 대한 자문역할하는 등 북한에 대한 전문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박 내정자 스스로도 내정 소식을 접한 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님과 이희호 여사님이 하염없이 떠오른다"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북 정책에 관여했던 시절을 상기시켰다.

박 내정자는 미국 LA를 거점으로 사업가로 자수성가한 뒤 1970년대 미국 망명 중이던 김 전 대통령을 만나 정치계에 입문했다. 박 내정자는 자신을 '김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소개한다.

박 내정자는 청와대 대변인,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 김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햇볕정책이 집행되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박지원 단국대 석좌교수가 15일 오전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2020.06.15.[뉴시스]
박지원 단국대 석좌교수가 15일 오전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2020.06.15.[뉴시스]

 

햇볕정책이란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대북 유화정책이다. 화해와 포용을 기본으로 남북한 교류와 협력을 증대시켜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유도한다는 게 핵심이다.

햇볕정책으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됐다. 이후 현대아산을 비롯한 중소기업들이 참여하는 금강산 관광과 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조성 등 성과가 있었다. 박 내정자는 분단 후 첫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남북간 물밑 접촉 당시 밀사 역할을 수행했다.

다만 햇볕정책은 투명성 부분에 있어선 일부 문제를 드러냈고, 이 과정에서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 내정자가 옥고를 치렀다.

대북송금 특검은 2003년 광범위한 수사를 벌여 현대가 4억5000만 달러를 국정원 계좌를 통해 북에 지원했으며 이 중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금 1억 달러가 포함돼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현대 회장이자 사건 핵심 인물인 정몽헌 회장이 현대 계동 사옥에서 투신했고, 대북송금에 관여했던 박 내정자는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2007년 말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복권됐지만 앙금은 사라지지 않았다. 박 내정자는 국회의원으로 복귀한 뒤 민주당 내 친노무현계와 대립각을 세웠다. 민주당 내 비노 인사로 활동하던 그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이끄는 신당에 합류하는 등 친노무현·친문재인계와 거리를 둬왔다.

안철수 대표와 함께 문 대통령을 향해 견제구를 던지던 박 내정자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지지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패배한 뒤 박 내정자는 "문 대통령의 성공을 통해서 진보 정권이 재창출되는 데 박지원의 역할이 있다"고 밝혔다.

 

박지원 민생당 의원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6회국회(임시회) 제5차 본회의 '정치, 외교, 통일, 안보에 관한 질문'에서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2020.03.02.[뉴시스]
박지원 민생당 의원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6회국회(임시회) 제5차 본회의 '정치, 외교, 통일, 안보에 관한 질문'에서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2020.03.02.[뉴시스]

 

박 내정자는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에 빠져있던 지난달 17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남북관계 현안에 관해 직접 조언도 했다. 박 내정자는 문정인 특보,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임동원·박재규·정세현·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등과 함께 청와대 오찬에 참석해 문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박 내정자가 햇볕정책의 계승자로서 현재 위기에 빠진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박 내정자가 정계에 오랫동안 활동하며 정치 9단으로 불리는 점은 다소 우려되는 대목이다. 국정원의 2012년 대선 여론조작 사건 등 국내 정치 관여가 문제가 됐던 만큼, 박 내정자가 이끄는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내정자 스스로도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페이스북에 "앞으로 제 입에서는 정치라는 정(政)자도 올리지도 않고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며 국정원 개혁에 매진하겠다. SNS 활동과 전화 소통도 중단한다"고 밝혔다.

박 내정자에게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관심사다. 북한이 박 내정자를 향해 최근에 내놓은 반응은 막말이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해 8월 미사일 발사를 비판한 박 내정자를 향해 "6·15시대에 평양을 방문해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로 노죽을 부리던 이 연극쟁이가 우리와의 연고 관계를 자랑거리로,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해 먹을 때는 언제인데 이제 와서 배은망덕한 수작을 늘어놓고 있으니 그 꼴이 더럽기 짝이 없다"고 비난한 바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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