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핵 유지할 것”이라는데…정부, 대북(對北) 라인 ‘물갈이’
[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올해는 대한민국이 6·25전쟁 이후 맺은 北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최초 통일 관련 합의인 ‘7·4 남북공동성명’이 48주기를 맞은 해다. ‘최초의 남북공동성명’의 핵심은 ‘민족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이었다. 하지만 ‘민족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 합의에도 불구하고, 정작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축소됐다고 장담할 수 없는 형국이다. 오히려 그 위협의 정점인 ‘핵(核)’으로 인해 ‘7·4 남북공동성명’이 종잇조각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이에 일요서울은 신원식(62) 미래통합당 의원을 통해 지난 3일 북핵(北核) 위협의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원식 일성 “북핵, 이제 외면할 수 없어…실질적 대응책 절실”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이 70주기를 맞았지만, 정작 북한은 수백 만 명의 사상(死傷)자가 발생한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부르고 있다. 지난 1950년 발발(勃發)한 6·25전쟁은 3년 만인 지난 1953년 7월27일 ‘정전(停戰)협정’으로 잠시 멈췄지만, 지금까지 북한은 이날을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로 왜곡해 선전(宣傳)하고 있다.
그로부터 약 20년 후인 지난 1972년 7월4일, 서울과 北 평양에서 ‘7·4 남북공동성명’이 동시에 발표된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 성명은 ‘남북 간 최초 공식 합의문서’로, 우리 정부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北 조선노동당 조직도부장이었던 김영주, 그리고 그를 대리한 제2부수상이었던 박성철 간 비밀 막후교섭에 의해 이루어졌다.
7·4 남북공동성명은 7개 항에 대한 합의다. 그 중 첫 번째 항은 ‘조국통일원칙’인데, 성명에 따르면 이는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해야 한다’,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해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대단결을 도모해야 한다’로 명시됐다. 바로 ‘민족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이다.
이어 ▲남북 간 긴장완화 및 무력도발·군사적 충돌 적극 방지 ▲적극적 남북교류 ▲남북적십자회담 협조 ▲서울-평양 상설 직통전화 설치 ▲남북조절위원회 구성·운영 합의 ▲합의 성실이행 약속 등이다. 결국 핵심은 제1항으로 모아진다.
하지만 최초의 ‘남북공동성명’은 불과 1년 만에 중단됐다. 당시 북한은 ‘자주’를 외세배격 등 ‘배타적 자주’로 보고 주한미군 철수 및 유엔사 해체를 주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을 ‘평화’로 해석했다. ‘민족대단결’ 또한 북한은 ‘국가보안법 해체’로 인지했다. 그러던 그해 北 당중앙위원회 제5기 대회에서 ‘주석제’가 담긴 ‘사회주의 헌법’의 최종안 심의가 진행돼 ‘北 김일성 유일체제’가 확립됐다. 北 김일성의 의지는 곧 북한 지도부의 ‘나아갈 길’이 됐는데, 지금의 북핵(北核) 위기는 이 같은 배경과도 무관치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지난 1985년 12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1)’ 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993년 NPT 탈퇴를 선언했고 10여년 만인 지난 2002년 핵 동결 해제를 발표하기도 했다. 결국 지난 2006년 10월, 북한은 제1차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북핵(北核)의 실체를 전 세계에 드러냈다. 북한 핵실험은 지난 2017년 9월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실시됐다. 이로써 7·4 남북공동성명의 ‘조국통일원칙’은 완전히 무력화됐다.
이에 일요서울은 ‘7·4 남북공동성명’ 48주기를 맞아 ‘북한 비핵화(非核化·denuclearization)’에 대해 천착해 온 신원식 미래통합당 의원을 지난 3일 찾았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申 “애써 외면해 온 북핵(北核)…이제 피할 수 없다”
-7·4남북공동성명 48주년인데, 북한 비핵화는 공회전 중이다. 문제가 무엇인가.
▲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낙관적 기대로 북핵 위협을 애써 외면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의 문’ 앞에 섰다. 북핵의 불편한 진실은 세 가지다. 이를 받아들이고 실질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생존의 길이 열릴 것이다.
-북한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 북핵 고도화로 물리적 제거가 불가능하다. 즉, 북한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20~30년 전에는 영변 하나만 제거하면 됐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몇 군데만 제거하면 됐다. 최후 수단인 군사 공격의 목적도 북한을 비핵화 협상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여건 조성에 있다. 그런데 이제는 스텔스기 몇 백대를 투입해도 핵무기 위치를 알 수가 없다. 결국 물리적 제거는 어렵다.
지난 30년 간 북핵 위기 과정에서 우리와 북한은 늘 같은 패턴을 보여 왔다. ‘北 위협과 도발 → 우리 양보→ 일정기간 소강상태→ 北 위협과 도발 재개→ 우리의 새로운 양보’ 식이다. 앞으로도 이런 과정이 반복될 경우 북한은 ‘제재 해제’와 ‘핵보유국 인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게 될 것이다. 북한 비핵화는 협상으로 해결될 수 있으나 어떤 조건에서 시작하느냐가 그 성패를 좌우한다. 북한이 버틸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되면 우리가 성공하겠지만, 그 반대가 되면 우리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북한이 버틸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갈 강력한 대북 제재를 결심하고 상당 기간 지속시킬 정치적 리더십이 우리에겐 없다. 그래서 북한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요원하다.
-현 상황에서의 북한 비핵화 협상 결과는 어떻게 될 것으로 예측하는가.
▲ 북핵 협상이 설사 원만하게 타결돼도 비핵화가 아닌 동결·감축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06년 1차 핵 실험 이후 북한은 단 한 번도 핵 포기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 오히려 강력한 핵무장 의지를 계속 천명해 왔다. 지난 2017년 12월, 北 김정은이 외친 ‘핵 무력 완성’은 북한 비핵화 협상 진행 중이라는 게 아니고 ‘종결됐다는 선언’이다. 비핵화 협상은 北 김정은의 핵 포기 결단이 선행돼야 시작된다.
지금 진행되는 미·북 협상의 목표는 사실상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핵 동결 또는 군축’이다. 우리와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겉으로는 북의 주장을 일축하며 비핵화를 주장해도, 내심 물 건너갔다는 걸 다 알고 있다. 아무리 미·북 협상이 잘 되더라도 ‘완전한 비핵화(CVID, FFVD)는 미래 노력의 방향’이라는 공허한 외교적 수사로 끝날 것이다. 동결 또는 군축을 얼마나 끌어내느냐가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치명적인 재앙을 맞게 된다. 북핵 동결이나 군축은, 우리를 위협하는 북핵은 그대로 둔 채 미국을 위협할 핵 능력만 더 개발하지 않거나 줄인다는 의미다. 달리 표현하면, 미국이 본토의 안전을 위해 동맹의 안전은 희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미동맹은 결정적 위험에 처한 가운데, 우리 혼자 북핵에 맞서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북핵 협상이 타결되면 한국은 더 위험해지는 역설(paradox)이 현실이 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 북핵 억제와 대응 능력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 협상에 의한 완전한 북한 비핵화가 어렵다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실질적인 북핵 대비태세 구축을 국가 최우선 과업을 설정하고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동맹과 자강(自强)이라는 큰 틀 속에서 북핵을 억제하되, 억제 실패 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확충해 나가는 것만이 생존의 유일한 길이다.
北 김정은 “핵 전력 유지할 것”… 靑, 햇볕정책 핵심인물 등용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등을 역임한 육군 중장 출신의 신원식 미래통합당 의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 위협은 그대로다. 이는 현재 북한의 철권 통치자로 군림하고 있는 ‘北 김정은’의 발언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北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가 지난해 12월23일부터 9일간 열렸는데, 대외 선전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전원회의에 참석한 北 김정은이 “세상은 곧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발언과 함께 신형 무기 개발 의도가 있음을 보도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이스칸데르형 단거리 탄도 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Submarine Launched Ballistic Missile) 등을 발사하면서 무력 시위를 저지른 데 이어 올해도 신무기를 공개함에 따라 군사 도발 우려가 제기됐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北 김정은은 “여전히 (미국의) 적대적 행위와 핵 위협 공갈이 증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가시적 경제 성과와 복락만을 보고 미래의 안전을 포기할 수 없다”면서 “미국의 대(對)조선 적대시가 철회되고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국가 안전을 위한 필수적이고 선결적인 전략무기 개발을 중단 없이 계속 줄기차게 진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핵 전력을 그대로 유지할 것을 표명하기도 했다. 즉, 무력개발 노선을 확고히 한 것이다.
北 김정은은 “미국의 핵 위협을 제압하고 우리의 장기적인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강력한 핵 억제력의 동원 태세를 항시적으로 믿음직하게 유지할 것”이라며 “우리의 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 조선 입장에 따라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北 김정은의 이 같은 ‘협박’은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한 지난달 25일에도 이어졌다. ‘北 외무성 군축 및 평화연구소’는 이날 조선중앙통신에 공개한 연구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우리에 대한 병적이며 체질적인 적대시 정책에 매여달리면서 극단적인 핵위협 공갈을 일삼고 있다”면서 “제2의 6·25 재현되지 않는다는 담보 어디에도 없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조선전쟁(6·25전쟁)은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필연적 산물”이라며 전쟁 발발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특히 “미국은 지난 4월 연합공중훈련, 해병대 합동상륙훈련을 벌려놓으면서 우리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한시도 늦추지 않았다”며 “미국의 핵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대화를 통한 노력도, 국제법에 의거한 노력도 해봤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미국이 우리를 한사코 핵 보유에로 떠밀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6·25전쟁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뜻으로, ‘북한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현 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경주하고 있을까.
청와대는 지난 3일 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햇볕정책에 관여했던 5선 국회의원 출신의 박지원 단국대학교 석좌교수를 국가정보원장에 임명했다고 밝혔다. 햇볕정책은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대북 유화책으로, 남북교류·협력을 우위에 두고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겠다는 정책이다. 지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조성’ 등으로 이어졌는데, 박 내정자는 남북 간 물밑 접촉 당시 밀사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정부의 향후 대북 정책의 기조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한편, 오는 7월11일은 지난 2008년 당시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됐던 ‘금강산 관광’에 참여했던 박왕자 씨가 북한에 의해 피살됐던 날이다. 햇볕정책에 관여했던 인물을 대북 정책의 요직에 전격 임명한 현 정부가 “핵 전력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던 北 김정은의 발언과 “북한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신 의원의 지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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