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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고 최숙현 선수 추모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일요서울 | 곽영미 기자] 한국 체육계에서 또다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고(故) 최숙현 선수가 팀 내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 이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최 선수의 상황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방치한 대한철인3종협회, 경주시체육회, 경북체육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또 지난해 1월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의 폭행과 성폭행 사건 후 대국민 사과까지 하며 쇄신을 다짐했지만, 여전히 되풀이 되는 체육계 가혹행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대한체육회에도 날 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최숙현 선수는 지난달 26일 오전 부산의 한 숙소에서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가족에게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최 선수가 남긴 녹취록과 동료 선수들의 증언을 통해 공개된 가혹행위는 대중을 분노케 했다. 감독, 주장, 선배, 팀 닥터 행세를 한 안 씨는 잦은 폭행과 폭언으로 최 선수를 괴롭혔다. 이를 힘들게 견뎌오던 최 선수는 올해 초 팀을 옮긴 후 가해자들을 고소했으며, 대한체육회와 대한철인3종협회에도 진정을 내며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최 선수는 이 과정에서 ‘폭행과 폭언을 당했고, 시청에서 지원하는 비용을 선수들 사비로 입금케 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최 선수에 대한 진상 조사가 시작되자, 동료들의 폭로도 이어졌다. 이들을 통해 밝혀진 가해자들의 가혹행위는 상상 이상이었다. 최 선수의 동료들은 “탄산음료를 한 잔 마셔 선수들이 체중이 늘었다는 이유로 빵 20만원 어치를 새벽까지 먹게 했으며, 견과류나 복숭아 등 음식을 먹고 살이 쪘다는 이유로 폭행을 가했다. 뿐만 아니라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뺨을 때리고, 선수들의 부모님에게 협박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팀 닥터는 폭행 가담은 물론 치료라는 이유로 선수들의 가슴과 허벅지를 만져 성적 수치심을 줬다”고 덧붙였다.

사건 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며 대중의 분노가 더욱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 선수의 간절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은 체육 단체들과 수사 축소 의혹이 불거진 경주경찰서 등에도 책임 추궁이 이어지고 있다. 최 선수는 5곳의 기관에 6번의 진정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체육회는 진정을 낸 최 선수에게 연락해 “김 감독과 주장이 의견서를 내며, ‘가혹행위는 없었다’는 내용이 담긴 전·현직 선수 10여 명의 진술서를 제출했다”며 “반박할 증거를 제출하라”는 내용만을 전달했다. 문제 제기가 됐음에도 사태를 파악하려는 대한체육회의 의지는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 소명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며 최 선수를 좌절케 했다.

경주시는 지난 6월 제출한 행정 사무 감사 자료에서 최 선수의 부친이 지난 2월 체육진흥과를 방문해 트라이애슬론팀의 여러 문제점에 대한 구두 진정과 타 팀으로 이적한 선수 5명을 상대로 받은 진술 내용을 누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경주경찰서는 최 선수 신고와 관련된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담당 수사관이 “최숙현 선수가 신고한 내용이 아닌 자극적 진술은 더 보탤 수 없다”며 일부 진술을 삭제하고, ‘어떻게 처리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벌금 20만~30만 원에 그칠 거다. 고소하지 않을 거면 말하지 말라”는 식의 대응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선수의 도움 요청에 안일하게 대처했던 기관들은 이제야 가해자들의 징계와 대책 마련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경찰 측도 경주경찰서의 사건 축소 의혹이 커지자 사건 확인을 위한 감찰에 들어간 상황이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이번 사건을 책임지려는 모습은 없었다.

이에 문화연대와 체육시민연대 등 4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6일 가해자 처벌과 책임자 엄중 문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범시민사회단체연합(범사련) 등 9개의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9일 “최 선수가 세상을 떠나도록 방치한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박양우 문체부 장관을 비롯해 최영애 인권위원장, 이기홍 대한체육회장, 민갑룡 경찰청장, 주낙영 경주시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또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모든 직위에서 사퇴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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