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분열로 얻은 열은 두 종류의 물을 통해 다른 데로 전달됩니다. 그것이 경수와 중수입니다. 같은 물인데 경수는 H2O이고, 중수는 H3O입니다. 수소가 하나 더 많죠. 원가도 좀 비싸고요. 고리를 비롯해 영광, 울진 등 대부분의 원자로에서는 경수로 가압 방식을 쓰고, 월성에서만 중수를 쓰고 있습니다.”
홍보실장이 열심히 설명했다.

“자, 제2발전소 건물로 가보실래요? 제 사무실도 그곳에 있어요.”
홍보실장의 설명이 끝나자 수원은 일행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제2발전소 건물은 감시가 더 삼엄했다. 새로운 방으로 들어갈 때마다 카드키로 문을 열었다. 사람마다 각자 자기 카드키를 사용해야 문이 열렸다. 외부에서 초청된 사람은 외빈용 카드키를 가져야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카드를 사용하면 누가 몇 시에 어느 문을 통과했다는 데이터가 전부 컴퓨터에 저장되겠군요.”
정세찬이 카드를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말했다.
“이 카드, 사진 찍어도 되나요?”

유미가 홍보실장에게 물었다. 그러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카드 앞뒷면을 촬영했다. 그뿐 아니라 여기 저기 보이는 곳은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얘, 필름 좀 아껴.”
수원이 신경이 쓰여서 한마디 했다.
“이거 필름 안 써. 칩이야.”
유미는 혀를 날름 내보였다.

“이제 원자로에 가장 근접한 건물로 들어갈 겁니다. 방호복을 입고 신발도 신고 장갑도 끼셔야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촬영 금지입니다. 사진기는 여기 두고 가셔야겠는데요.”

홍보실장의 말에 유미는 난감한 얼굴로 카메라를 내밀었다.
영준의 안내로 모두 방사선을 막는 신발과 복장을 입었다.
“이것은 방사선 측정기입니다. 지금 디지털 숫자가 0으로 나와 있지요? 방사선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영준은 일행에게 측정기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지금 원자로 속으로 들어가는 건가요?”
유미가 영준을 보며 질문했다.
“아닙니다. 원자로 속은 수백 도나 되는 불지옥입니다. 사람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불지옥을 감싸고 있는 외벽까지만 접근하는 것입니다.”
영준이 진지하게 설명했다.

“원자로의 크기는 얼마나 되나요?”
“높이가 80미터가 넘고요, 지름이 44미터입니다.”
“원자로 외벽은 얼마나 두껍습니까?”
정세찬이 계속해서 물었다.

“다섯 겹의 단단한 벽으로 돼 있습니다. 가장 안쪽에 있는 제1방호벽을 연료 펠렛이라고 합니다. 방사능에 아주 강한 소재입니다. 대부분의 방사선 물질이 그 방호벽 안에 갇히게 됩니다. 그 벽을 뚫고 나오는 방사선 물질에 대비한 것이 제2방호벽입니다. 연료 피복관이라고도 합니다. 열, 방사선, 부식에 강한 지르코늄 합금으로 이루어져 있어 아주 미세한 방사선 물질도 모두 차단시킵니다.”
영준은 자세하게 설명했다.

“제3방호벽은 25cm 두께의 강철로 되어 있는 원자로 용기입니다. 제4 방호벽은 원자로의 내벽으로 6cm 두께의 강철로 되어 있습니다.”
“이 1, 2호기 공사는 31년 전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합작으로 만든 것이지요?”
정세찬이 물었다.

“많이 알고 계시는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 완공 단계에 있는 신고리 1, 2호나 3, 4호기는 우리 기술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직접 공사를 하나요?”
정세찬이 다시 물었다.

“아닙니다. 건설 부문에 속하는 원자로의 집, 즉 격납고는 현대그룹, 대우건설 등이 협력하고 있고, 터빈과 원자로 자체, 헤드, 제어봉, 터빈 등의 공사는 두산중공업이 맡고 있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대 ㅁ 노하우가 합쳐져서 한국형 대용량 원자로가 완성되는 것이지요.”
“제5 방호벽은 어떻게 돼 있는지 설명 안 해주셨는데요.”
유미가 끼어들었다.

“다섯 번째 방호벽인 외벽은 120cm의 철근 콘크리트로 돼 있습니다. 철저히 봉쇄돼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방사선 물질이 밖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주영준이 주먹을 꼭 쥐고 흔들어보였다.
“돔의 겉면이 모래 빛깔이네요.”

“예. 외벽에는 페인트칠을 전혀 하지 않아서 콘크리트 배합 때 쓰인 원재료인 모래 빛깔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어떻습니까? 아름답지 않습니까?”
영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거대한 모래 산 같은 원자로 돔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예, 자연스럽고 은은하네요.”
유미가 맞장구를 쳤다.

“페인트칠을 안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정세찬이 물었다.
“원자로에서는 원자가스가 발생하는지 정기검사를 하는데 칠을 하면 표면의 변화를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외벽에 쓰이는 모래는 보통 건축 자재와 다릅니까?”
“그렇습니다. 색깔이 흰빛을 많이 띠고 있지요? 이러한 모래는 주로 강릉이나 합천에 있습니다. 알이 굵고 강도가 높습니다.”

“방호벽이 다섯 개나 있으니 내부에서 밖으로 방사선 물질이 새어나오는 것은 원천 차단되는 게 맞겠군요. 그렇지만 만약 밖에서라면요?”
유미가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뜻밖의 질문에 주영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가령, 미국의 9.11 사건 때처럼 자살특공대가 덤벼든다면요.”
“항공기가 부딪쳐도 문제는 없습니다만...”
영준은 고개를 흔들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일행은 다시 카드키로 문을 열고 다른 곳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원통 같은 것이 실내에 버티고 있었다.

“증기 터빈이 있는 곳입니다. 저 원통 속에 터빈이 있습니다. 그 속에는 3백 도나 되는 뜨거운 증기가 발전 터빈을 돌리고 있지요.”
“저게 터지면 어떻게 돼요?” 유미가 다시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럴 일 없습니다.”
영준은 유미의 질문을 아예 무시해버렸다.

 


작가 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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