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일 새벽 박원순 서울시장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그의 딸이 실종신고를 한 지 7시간 만이다. 경찰 브리핑에 의하면 타살 흔적은 없다고 하니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가족들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메시지를 전했다고 하니 더 이상 그의 죽음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항간에 ‘성추행 의혹’ 고소사건의 영향으로 죽음을 택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의 죽음 앞에 그것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박원순 서울시장은 사망했고, 그가 죽음을 택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죽음이 다가오는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또한 아무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정치인 박원순의 등장은 안철수의 정치권 등장만큼이나 센세이셔널(sensational)했다. 백두대간을 종주 중이던 그는 면도를 하지 않아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안철수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시민운동가 박원순, 희망제작소의 박원순이 아닌 유능한 정치인이자 행정가로서의 박원순의 등장이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시 제1야당이던 민주당 박영선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본선 승리까지 거머쥔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후 승승장구했다. 단숨에 정치가로서 그리고 행정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그는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패한 뒤, 진보진영의 유력한 대권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으며, 진보진영 후보 중에서는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지나친 자신감, 행정가로서의 유능함, 시민운동가적 마인드는 그의 대권가도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정치적 유불리에 지나치게 계산적으로 반응한 그는 국민들에게는 우유부단하게 보였으며, 정치권에서는 리더로서의 자질을 의심 받기에 이르렀다.

21대 총선 결과 자신을 지지하는 더불어민주당 내 국회의원이 한 다스(dozen)는 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아이러니(irony)하게도 20대 대선에서의 박원순 서울시장의 입지는 더불어민주당 내에서조차 유력한 대권후보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러 있었다.

이낙연 의원, 이재명 경기지사보다 한참 낮은 지지율에 머무르고 있었고, 정세균 국무총리가 항시적으로 이들의 대체재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었던 데 반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어쩌면 2017년과 같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해야 할 위치로 내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으로 더불어민주당은 20대 대선에서 유력한 흥행카드를 잃었다. 그러나 선명하지 못하여 불확실했던 카드가 확실하게 정리됐다. 또한 상시적 위험요소일 가능성이 있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당을 살렸다. 선당후사(先黨後私)로서 서울시장 9년을 정리한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은 20대 대선 시계를 앞당겼다. 다음 달 29일로 예정된 이낙연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 간의 더불어민주당의 당권경쟁은 무한경쟁으로 치달을 것이고, 이재명 경기지사의 브레이크 없는 전진은 더 가속될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신데렐라로 떠오른 정세균 국무총리에 대한 대망론도 고개를 들 것이다.

반면, 변변한 대권후보조차 없던 미래통합당에도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일 수는 없지만 의도하지 않았다면 피할 이유도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세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니 힘이 날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렇게 작은 공을 쏘아올리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우리 정치권에 기여한 공로를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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