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엄경영 소장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울 때 메시아를 기다린다. 메시아(Messias)는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에게 예수, 즉 구세주다. 일반인들에게 메시아는 구원자다. 혹은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특히 곤경에 처한 진영은 늘 메시아를 갈망해 왔다.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은 전례 없는 위기를 겪었다. IMF 발(發) 금융위기로 압축성장 신화는 깨졌다. 정치리더십은 해체되고 사회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첫 문민정부로 화려하게 출발했던 김영삼(YS) 정부는 식물상태로 전락했다. 당연히 보수 진영의 충격은 컸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호남-충청 지역연합을 결성했다. 보수 위기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보수 진영 첫 패배의 두려움이 엄습했다.

메시아는 이때 등장했다. 주인공은 이회창 전 총리다. 이 전 총리는  1990년대 중반 문민정부에서 짧은 기간 국무총리를 지냈다. 그는 YS와 깐깐하게 맞서며 원칙을 고수했다. 인기가 하락하던 YS와 비교되면서 그의 인기는 치솟았다. '대쪽 총리'로 불린 그는 임명 125일 만에 사임하고 말았다. 이 전 총리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보수 진영 메시아가 되어 두 번이나 대선후보가 됐지만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다.

대략 10여 년 전이다.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88만원 세대가 급속하게 확산하던 시기다. 금융위기 이후 청년들의 삶은 급속히 어려워졌다.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는 N포세대로 더욱 악화했다. 헬조선(지옥(hell)+조선)이란 자조가 유행어로 번져나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청년들의 절망을 타고 갑자기 등장했다.

안 대표는 청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던졌다. 청춘콘서트가 열리는 곳마다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 안 대표도 끝내 현실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12년 무소속으로 대선에 도전했지만 중도 포기했다.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 깜짝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합집산을 거치며 3석 미니 정당 대표에 머물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장과 퇴장은 메시아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촛불과 탄핵 이후 나락에 떨어진 보수 진영에게 반 전 총장은 메시아였다. 그는 2017년 1월 10년 만에 귀국했다. 보수 진영에선 그를 대선후보로 만들기 위해 탈당, 창당 등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반 총장은 정치활동을 시작한지 불과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불출마를 선언하고 말았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보수 진영에겐 메시아다. 윤 총장은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7%를 기록해 여야 3위, 보수 진영에선 압도적 1위다(자체, 7~9일 1001명 대상,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p, 자세한 개요는 한국갤럽·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여권과 맞선 것처럼 비치면서 보수층 관심이 윤 총장에 쏠린 탓이다.

윤 총장은 대구·경북, 50대 이상, 문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평가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다. 주로 네거티브 성격의 지지율이다. 2040에선 3%에 그치고 있다. 윤 총장은 구(舊) 권력, 기득권을 대표한다. 설사 보수 진영의 후보가 된다고 해도 본선 경쟁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민주당 대선주자들을 압도하지 못한다면 통합당은 윤 총장 영입을 망설일 수 있다.

보수 진영의 문제는 내부에 있다. 결국 해답도 내부에 있을 수밖에 없다. 끝없는 성찰과 쇄신으로 국민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윤석열 대망론’은 보수 죽이기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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