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은 입법자로 불린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의 일원이라는 뜻이다. 국회의원은 입법부인 국회의 구성원으로 개개인이 법을 제안할 권리를 가진다. 우리나라는 법안을 발의할 수 있는 권한이 입법부인 국회와 행정부에 있다. 국회의원들은 개개인의 정치철학과 관심사를 반영해서 법 제정안이나 개정안을 국회에 낸다. 이걸 법안을 발의한다고 한다.

국회의원은 자기 이름을 걸고 법안을 발의한다.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보통 함께 내놓는 보도자료를 참고한 기사가 몇 개 나고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법안이 본회의 의결을 거쳐 통과되려면 첨예한 논쟁과 조정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난 20대 국회는 2만 4141건의 법안이 발의되었고, 겨우 37.8%의 법안만 처리되었다. 나머지는 폐기된다.

법안을 발의하는 건 의원이지만 준비는 보좌진이 한다. 보좌진이 직접 ‘법안 작성기’라는 옛날 한글 3.0 느낌의 구닥다리 프로그램을 이용해 법안을 작성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국회 법제실에 취지를 설명하며 법안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한다. 가장 간편하고 확실한 방법은 행정부에서 만든 법안을 받아 의원 이름으로 발의하면 된다. 통과율이 가장 높다.

보좌진 사이에서 법안을 발의하는 과정에서 금기시되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의원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면 「차별금지법」, 종교인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소득세법」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사람 쪽수로 어르고 달래는 무리들이다. 교회는 그 중에서 가장 무서운 축에 속한다.

의원이 의사 출신이거나 의원 부인이 의사라면 의대 정원을 늘리는 「의료법」이나 의사의 권한을 줄이는 「물리치료사법」을 발의했다가는 잘릴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똑같은 경우로 의원이 변호사나 판사, 검사 출신이라면 세무사나 법무사의 권한이나 업무영역을 확대하는 「세무사법」, 「법무사법」개정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박용진 의원이 용기를 가지고 나서기 전에는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유아교육법」도 피해야 할 법안이었다. 국회 밥을 몇 그릇 먹은 보좌진이라면 누구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법안이었지만, 누구도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지역구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유치원 연합회라는 조직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국회법」도 개정이 쉽지 않은 법 중에 하나다. 국회의원의 권한을 제한하거나 감시를 강화하는 「국회법」개정안은 돈키호테 같은 의원이 발의 자체에 의의를 두고 발의하는 법안 목록 중 하나였다. 최근에 여당이 ‘일하는 국회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나선 것은 사건이라 부를 만한 일이다. 고양이가 스스로 목에 방울을 다는 기적이 일어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야당이 7월부터 국회 일정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여당이 하는 일에는 무조건 반대하는 야당이 ‘일하는 국회법’이라고 통과시켜 줄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차, 포 다 떼고 넝마가 되어 ‘구걸하는 국회법’이 되어버릴 것 같다. 물론 여당이 마음을 먹으면 힘으로 통과시킬 수도 있다. 이제 여당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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