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2020.07.10.[뉴시스]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2020.07.10.[뉴시스]

 

[일요서울]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0시1분 서울 성북구 성북동 일대 야산 일대에서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전날인 지난 9일 오후 5시17분 박 시장의 딸의 실종신고로 수색작업에 나섰는데, 경찰은 '아버지가 이상한 말을 남겼다'는 신고자의 신고를 접수해 수색 작업에 돌입한 지 7시간 만에 사망한 박 시장을 발견했다.

박 시장은 인권변호사로 시작하면서 시민사회에 들어섰다. 시민운동가를 거쳐 서울시 시장까지 올라 차기 대권 주자를 꿈꿨지만, 사망하면서 멈춰 서게 됐다. 

앞서 박 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에서 2남 5녀 중 여섯째로 출생했다. 13세 때 작은 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양되는 등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후 전국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명문 경기고를 졸업하고 75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지만, 유신체제에 항거하는 학생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돼 ‘긴급초지 9호’ 위반 혐의로 4개월 복역하고, 제적을 당했다.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명문 런던정치경제대학(LSE)에서 국제법을 공부한 박 시장은 한국에 돌아와 사법시험 22회에 합격했다. 82년 대구지방검창철 검사로 임용됐지만 1년 만에 물러났다. 

이후 변호사가 된 박 시장은 고(故)조영래 변호사를 만나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부산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말지(誌)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사건 등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굵직한 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관련 소송인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 풍토의 시선을 바꾼 일화로 유명하다. 

90년 자신의 정신적 스승과도 같은 조 변호사가 별세하자 미국과 영국 유학길에 오른 박 시장은 94년 귀국해 참여연대를 설립했다. 시민운동에 관심이 컸던 박 시장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지내고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총선시민연대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부패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낙천 및 낙선운동을 이끌어 사회운동 분야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이 외에도 국민생활최저선운동, 사법개혁운동, 작은권리찾기운동, 소액주주운동, 예산감시 정보공개운동 등 그가 이끈 여러 사회참여 운동으로 우리 사회 시민운동이 발전할 수 있었다. 

시민운동을 우리 사회에 정착시킨 그는 기부와 모금 쪽으로 관심 분야를 넓힌다. 2001년부터는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를 설립해 기부 받은 물건을 재가공해 저소득층에게 저렴하게 팔고 그 수익을 기부함으로써, 기부와 나눔문화를 확산시키는데 애썼다. 2006년에는 희망제작소를 만들어 시민들에 내놓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작업에도 힘썼다. 

2011년 오세훈 전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패배해 사퇴했다. 기회를 얻게 된 박 시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지지율이 5% 내외로 미미했다. 그러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대학원장이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지지를 얻어 야권의 단일후보가 되어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시장에 당선됐다. 그 뒤로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2014년에는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2018년엔 김문수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를 각각 누르고 역대 처음으로 서울시장 3연임에 성공했다. 

시민운동가 출신 서울시장으로서 강북균형발전, 공공와이파이, 제로페이, 서울로 7017, 미세먼지 시즌제,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비정규직 정규직화, 청년수당, 도시재생, 사회경제기업 협동조합, 원전하나줄이기, 노동이사제, 토건에서 복지 패러다임으로 전환 등 수많은 사회정책을 단행했다. 

박 시장이 대통령 선거 출마 의사를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서울시장 직에 세 번이나 내리 당선되어 10년간 서울시정을 이끌며 쌓은 경험과 인지도로 인해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혀 왔다.

하지만, 그가 사망함으로써 박 시장의 정책은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게 됐다. 그의 나이 향년 64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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