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요란하게 세상을 등졌지만, 이재명 경기지사는 그 일이 있은 후 꼭 일주일 만에 정치적으로 확실하게 소생했다. 대법원은 16일 이재명 경기지사를 허위사실 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무죄 취지의 판결로 파기 환송했다. 호형호제의 죽은 서울시장과 살아남은 경기지사는 그렇게 합체가 되었다. 2022년의 추는 아직 더불어민주당 쪽으로 기울어진 채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곳곳이 지뢰밭이고, 시한폭탄이다. 오는 8월29일로 예정된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 선거도 그중 하나다. 이번 당대표 선거에는 전남지사와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5선의 이낙연 의원과 4선 의원 출신의 문재인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김부겸 전 의원이 맞붙었다. 겉으로 보이는 그림으로만 보면 친문 세력 핵심 간의 사활을 건 쟁투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는 아니다. 친문의 대표주자임을 자처했지만 친문의 조직적인 지지를 얻지 못한 4선의 홍영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내의 유일한 계파임을 자처했던 민평련계 출신의 4선 우원식 의원, 호남의 맹주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5선의 송영길 의원은 차례차례 불출마의 길을 택했다. ‘불출마의 길을 택했다’기보다는 ‘지지 않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림으로만 보면 양자대결이 성사되었기에 피를 말리는 싸움일 될 것 같은 느낌도 있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별 볼일 없는 게임이다. 더불어민주당 내의 핵심세력, 주류, 혹은 친문세력으로 불리어도 무방한 다수파 세력들이 게임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 두 사람은 닮은 듯 닮지 않았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동아일보 기자 시절 인연으로 김대중 대통령 때인 2000년 제16대 국회에 처음으로 금배지를 달았고, 김부겸 전 의원은 제6공화국 출범 이후 한겨레민주당에서 처음 국회의원 출마를 한 뒤, 우여곡절 끝에 2000년 총선거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대통령은 김대중이었고 이낙연은 여당 국회의원, 김부겸은 야당 국회의원이었다.

처음 정치를 시작한 길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민주당에서 만났고, 손학규라는 계파의 수장 아래서 정치적으로 성장했다. 김부겸은 손학규의 황태자였고, 이낙연은 손학규의 복심이었다. 손학규가 떠난 민주당에서 둘은 이제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을 걸고 진검승부(眞劍勝負)를 펼치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길 것인가? 과연 이 싸움이 더불어민주당을 어디로 인도할 것인가? 제20대 대통령선거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유력 대선후보들을 계속해서 잃고 있다. 성추문으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잃었다. 조국 사태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잃었고, 21대 총선으로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잃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회생했지만 게임메이커일 뿐이고, 김경수 경남지사는 아직 안갯속이다.

그런 와중에 유력 대선후보들인 이낙연과 김부겸이 맞붙은 것이다. 이낙연이 승리하면 이낙연은 7개월짜리 당대표이기는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내 대권 게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김부겸은 패하더라도 대패가 아니라면 대권도전에 나설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을 것이다. 유력 대선 후보 두 사람이 모두 살아나는 전당대회가 될 것이다.

김부겸이 승리하면 대선 경선을 관리하고 2년 임기를 다 채우는 당대표가 될 것이다. 이낙연은 자동적으로 대선후보로서의 지위를 잃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권 후보 두 사람을 모두 잃는 전당대회가 될 것이다. 물론 대체재로서의 정세균 국무총리는 건재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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