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의 시사딱밤]

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두려움 자체입니다. 실체 없고, 터무니없으며, 근거 없는 공포는 퇴보를 진보로 바꾸는 데 필요한 노력들을 방해합니다. (중략) 더 중요한 것은, 많은 실업자들이 생존이라는 엄숙한 문제를 마주하고 있으며, 그만큼 많은 수고를 해도 보상은 거의 없습니다. 바보 같은 낙관주의자만이 지금의 어두운 현실을 부정할 것입니다. (중략) 이 암흑기로 인해 우리의 진정한 운명은 자신과 동지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지 그 운명에 이끌려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울 수만 있다면, 이 시기도 가치가 있습니다. 

세계적 대공황을 맞아 “무엇이라도 해봅시다.”라고 외치며 “뉴딜” 정책을 추진했던 루즈벨트 대통령의 유명한 취임 연설이다.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라고 해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데자뷔’ 상황이다.

한 세기가 흐른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탄소 의존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 불평등 사회에서 포용 사회로,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대한민국 대전환 선언”이라며 “새로운 미래로 가는 열쇠”라는 말로 “한국판 뉴딜” 추진을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디지털 혁명’과 ‘그린 혁명’을 강조하면서 “전 국민 대상 고용안전망을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의 고용안전망을 두텁게 하겠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에 띄는 대목은 2025년까지 총 160조 원을 투자해 일자리 190만 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놓은 점이다. 이번 투자로 정부는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기회의 문이 될 것이며 국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국민에게 새로운 일자리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판 뉴딜” 청사진에 이름만 들어도 기대감으로 가슴이 뛰면 좋겠지만, 대통령 선거 공약 같은 추상적인 단어의 나열 속에 공허함이 먼저 밀려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과 선도국가 도약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봅시다.” 류의 한국판 뉴딜 정책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왠지 허전함이 먼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우선 구체성의 결여가 주는 공허함일 것이다. “디지털 뉴딜”이나 “그린 뉴딜”에 대해서는 이미 정부와 지자체들이 수많은 정책을 포장해서 발표하고 있었고, 이번 발표는 그 종합판 성격이라 볼 수 있는데,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구체적인 경제정책이라기보다는 대국민 홍보용 이벤트 느낌이 강하다. 특히 다음 정권까지 대규모 투자를 통해 190만1000개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는 연평균 38만 명 수준에 이른다. 코로나 직전까지 기존 일자리창출 성과를 보면 결론이 자명하다. 공무원 숫자를 늘리는 방식으로는 국가 재정의 미래가 더 어둡다는 것도 국민들이 잘 알고 있다. 국가 채무의 급증에 대한 우려도 극에 달해 있다. 

두 번째는 추진 주체, 즉 사람과 그들이 펼쳐 온 정책에 대한 불신이 내재된 공허함일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한국판 뉴딜”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살리기’일 것이다. 그런데, 뉴딜은 누가 추진하는 것인가? 기존에 수많은 논쟁을 몰고 온 ‘소득주도성장’이나 노동시간 단축, 공무원 증원, 주택가격 정책 등을 추진해 온 핵심 주체들 아니겠는가? 진짜 실물경제를 경험적으로 아는 실전 고수가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는 기존 경제정책이 완전히 옳다는 전제하에 출발하는 뉴딜에서 어떤 희망의 불씨를 발견할 것인가.

절체절명의 ‘코로나19’ 경제 상황에서는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관행을 완전히 탈피한 ‘그라운드 제로’ 상태에서 “진짜 뉴딜”을 추진해도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 게다가 기존 정책의 연속선상에서 국가 주도로 재정 투입을 확대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다. 

실전 고수로 추진 주체가 바뀌지 않고 구체성이 결여된 “한국판 뉴딜”은 “새로운 미래로 가는 열쇠”가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국가 채무’만 듬뿍 안기는 “족쇄”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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