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여의도 정가의 풍문에 불과했던 안이박김(안희정·이재명·박원순·김부겸 또는 김경수)’ 음모론이 또다시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극적인 선택 이후 또다시 항간에 떠돌고 있는 것이다. 한때 안이박김 숙청설또는 안이박김 살생부로 불렸던 음모론의 핵심은 문재인 대통령 이후 여권의 차기 지형에서 비문진영의 대표 주자들이 정치적으로 몰락한다는 골자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이재명 전 경기지사,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순서대로 차기 레이스에서 이탈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엇갈린다.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마저 대권경쟁에서 탈락한다는 설이 있고 반대로 친문진영의 김경수 경남지사의 이름도 거론된다. 결과적으로 안이박김 음모론은 여권 내부의 차기 대권지형과 묘하게 연관된 것으로 비문 주자들이 차례로 몰락한 뒤 결국은 친문진영이 재집권에 성공할 것이라는 설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친문 핵심에서 만들어낸 차기 집권 플랜이라는 설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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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문 유력주자 차례로 탈락한 뒤 친문 차기주자 옹립설
- 근거없는 풍문이나 지난 대선 이후 우연의 일치 지속

대중적 호기심에도 불구하고 안이박김 음모론은 명확한 근거가 없는 풍문에 불과하다. 여의도 정치권을 떠돌아다니는 속칭 찌라시(사설 정보지)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안이박김 음모론은 현실 정치와 묘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다.

실제 지난 20175월 대선 이후 이른바 포스트 문재인이 거론되는 비문진영의 정치적 거물들은 차례로 낙마했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다소 고약하다. 우선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경우 수행비서의 미투 의혹으로 정치생명이 마무리됐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경우 지난 20186월 경기지사 선거 직전 더불어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엄청난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특히 여권 주류인 친문 진영과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최근 대법원 무죄판결로 오뚝이처럼 극적으로 기사회생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여비서 성추행 의혹으로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이제 남은 인사는 김부겸 전 장관과 김경수 경남지사다. 김 전 장관은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어떤 성적표를 내느냐, 김 지사는 향후 재판에서 어떤 결과를 얻느냐에 따라 안이박김 음모론에 대한 관심이 엇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홍준표·조원진 수면위로 떠올린 안이박김 숙청설

지난 대선 이후 여의도 정치권에서 풍문으로만 떠돌던 안이박김 숙청설이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진 계기는 보수야권 정치인들의 공개 발언 때문이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조원진 전 우리공화당 대표는 공개석상에서 안이박김 숙청설의 일단을 언급했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지난 20183월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 청와대를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 때문이었다. 본격적인 회동에 앞서 홍준표 전 대표는 당시 환영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향해 홍 전 대표는 안희정 충남지사 (미투 사건을) 임 실장이 기획했다고 하던데. 안희정이 그렇게 되나. 무섭다고 말했다.

이는 세간에 떠돌던 친문진영의 안희정 견제설을 홍 전 대표가 공개해버린 것이다. 실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미투 의혹은 우리 사회를 크게 뒤흔들었다. 여론은 찬반 양론으로 극심하게 엇갈렸고 이 과정에서 온갖 음모론이 속출했다. 홍 전 대표는 본인의 발언을 둘러싼 파문이 확산되자 기자들에게 농담이라고 정정하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이어 조원진 전 대표도 공개 석상에서 안이박김 숙청설을 언급했다. 조원진 전 대표가 언급한 내용은 홍준표 전 대표가 언급한 것보다 한걸음 더 진화했다. 조원진 전 대표는 20대 국회 시절인 지난 2019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안희정, 이재명 날리고 박원순은 까불면 날린다는데, 그러면 김은 누구인가라고 말했다. 세간의 음모론을 국정감사장에서 오픈한 것이다.

당시 상황은 미묘했다. 안희정 전 지사는 미투 사건으로 이미 대권 레이스에서 탈락해 정치적 재기가 불가능했다. 친문진영의 집중 표적이었던 이재명 경기지사 역시 각종 악재로 정치행보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박원순 전 시장의 경우 친문에서 차기 주자로 옹립한다기보다는 언제든지 견제에 나설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역설적인 것은 조 전 대표의 언급 이후 안이박김의 이 김부겸 전 장관을 뜻하는 것인지 김경수 지사를 뜻하는 것인지 설왕설래가 일기도 했다.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숙청설 근거없는 풍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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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박김 숙청설이 잊을만하면 되풀이되는 건 유력 정치인들의 비극적인 몰락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비문진영의 유력 정치인들이 대거 몰락했다. 미투 의혹으로 정치생명이 끊어진 안 전 지사가 대표적이다. 안 전 지사는 미투 의혹 이전만 해도 가장 유력한 포스트 문재인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이른바 좌희정 우광재로 불린 친노진영의 핵심으로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한 86세대의 선두주자였다.

특히 지난 대선 과정에서는 상대적인 유연함으로 보수진영으로의 외연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것도 정치적인 강점이었다. 다만 대선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경쟁하면서 대표적인 비문 주자로 분류됐다. 이후 미투 의혹만 없었다면 민주당 당 대표, 21대 총선 원내 진입을 거쳐 여권의 유력 차기주자로서의 행보를 이어갈 수 있었다. 다만 전직 수행비서의 미투 의혹으로 정치인생은 송두리째 날아갔다. 향후 정치적 재기 가능성 또한 제로에 가깝다.

박원순 전 시장의 비극적인 선택도 안이박김 숙청설을 피워오르게 했다. 박 전 시장은 안이박김 숙청설의 주요 등장인물 중 지난 대선 이후 가장 순탄한 정치행보를 이어왔다. 안희정 전 지사의 몰락, 김부겸 전 장관의 21대 총선 낙선, 이재명 경기지사와 김경수 경남지사의 재판 문제 등과 비교해 볼 때 차기 레이스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국면이었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민주당 경선국면에서 3선 서울시장 불가론도 없지 않았지만 특유의 돌파력으로 이를무난히 통과했다. 이후 차기 지지율은 비록 낮았지만 3선 서울시장을 지내면서 폭넓은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유력 주자로 분류됐다. 특히 21대 총선을 거치며 자파 의원들이 대거 원내로 진입하면서 차기 대권도전이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비서 성추행 의혹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무대에서 쓸쓸하게 퇴장하고 말았다.

안이박김 숙청설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는 하지만 실체가 없는 풍문에 불과하다. 이재명 경기지사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지사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치러진 21대 총선 이전만 하더라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과 맞붙었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은 물론 20186월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 경선 과정에서 친문진영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기 때문이다.

특히 친형 강제입원 사건과 관련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한 재판으로 백천간두의 위기에 섰다.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면 경기지사직을 잃고 대권 레이스에서도 완전히 탈락하게 됐다. 다만 안이박김 숙청설의 주요 등장인물인 이 지사는 화려한 반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판결도 기사회생했다. 경기지사직을 유지하면서 차기 대권 레이스 역시 탄탄대로에 접어들었다.

이 지사는 “‘대동세상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겠다고 차기 대권을 향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 때문에 민주당 안팎에서는 대세론을 구가하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더불어 이 지사가 양강구도를 구축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차기대권 앞두고 들끓은 설설설친문 재집권?

안이박김 살생부의 핵심은 비문 차기주자들의 탈락과 현 정권의 핵심 주류인 친문진영의 차기 재집권이다. 다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여권의 차기 지형에서 사실 마땅한 친문주자가 없다. 한때 조국 대망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조국 전 법무장관은 지난해 하반기 이른바 조국사태를 거치며 정치적 재기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 차출설이 거론되지만 아이디어 차원이다.

문재정부 초대 청와대 비서실 수장으로 한반도 평화국면을 주도했던 임종석 전 비서실장 역시 21대 총선 원내 진입에 실패하면서 차기 대권 도전은 다소 부담이다. 오히려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도전설이 거론되는 수준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차기 대권을 노리고 정치재개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없지 않았지만 유 이사장의 거듭된 부인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친문진영에서 남은 주자는 김경수 경남지사 정도밖에 없다. 김 지사를 최종 대선후보로 밀기 위해 비문진영의 잠재후보를 제거한다는 시나리오는 현실화되기 쉽지 않다. 당장 김 지사가 처한 상황이 쉽지 않다. 특히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재판이 정치생명의 발목을 잡고 있다. 김 지사 역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향후 정치적 앞날이 어두운 상황이다.

안이박김 숙청설이 잊을만하면 되풀이되는 건 여권 내부의 차기 경쟁을 친문 vs 비문 진영의 대결구도로 보기 때문이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을 포함한 당정청 전반을 확고하게 장악한 상황에서 과연 계파로서의 비문진영이 정치적 실체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과거 친문의 전신인 친노진영과도 상대적으로 거리를 뒀던 비문진영의 대표 정치인이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이 전 총리와 임 전 실장을 비문으로 분류하는 게 어색할 정도다. 다시 말해 민주당 안팎의 주요 정치인 중 스스로를 비문이라고 부르는 이는 없을 정도다.

여의도 정치권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안이박김 숙청설이 대중적인 호기심을 끌지만 별다른 근거없이 여의도를 떠도는 수많은 풍문 중 하나에 불과하다이른바 보이지 않은 손이 미래권력 창출에 나설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아울러 역대 대선 사례를 돌이켜볼 때 집권세력이 모종의 기획과 음모로 대선에서 승리한 사례는 없다면서도 차기 대선을 둘러싼 불안정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안이박김 숙청설과 유사한 형태의 시나리오들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속출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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