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오래 있다 보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삭는다. 일 년에 한둘씩 심혈관계 질환으로 이 바닥을 떠난 사람의 소식을 들려오면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여의도를 떠나는 것은 지능순(順)’이라는 자조적인 한탄 속에 사직서가 아른거리지만 실행할 용기도 없다. 소주잔을 기울이다 보면 어깨가 결리고, 눈은 침침해 눈물이 맺히고 뒷목은 뻣뻣해져 온다.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고질병 속에 국회는 돌아간다.

이런 고질병은 습관처럼 몸과 마음에 달라붙어 있기에 고치기도 예방하기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고질병이 의식하지 못하는 업무 습관이나 무의식에 고인 마음가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신물이 올라온다고 당장 오늘 저녁 약속을 미루기도 쉽지 않고, 눈이 침침하다고 컴퓨터 모니터 앞을 떠나기도 쉽지 않다. 컴퓨터 앞 바른 자세, 스트레스 없는 업무환경, 즐거운 국회생활은 종편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니까.

고질병은 사람만 걸리는 게 아니다. 약도 없는 악습같은 고질병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있다. 입 바른 언론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치는 특권, 무능, 무기력이라는 고질병을 앓고 있다. 경제는 저성장, 장기침체라는 고질병에 빠진 지 오래다. 언론도 연이은 왜곡과 오보로 ‘기레기’라는 악담이 보통명사에 등극하며 사회의 흉기가 되어 버렸다. 검찰이 개혁에 저항하는 이유도 별거 없다. 검사들이 가진 특유의 선민의식이 중병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안희정 모친의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고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정의당 얘기다. 한때 노회찬의 당이었던 이 당도 고질병을 앓고 있다. 논평을 발표하며 정의당이 챙겼을 정치적 올바름이야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다 해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이다. 그녀의 아들 안희정은 평생 운동한답시고 어미 속을 끓이다 강간범이 되어 감옥엘 다시 갔다. 평생을 아들 때문에 가슴 저몄을 그녀는 아들의 얼굴도 못 보고 생을 마감했다.

정의당이 그런 안희정 모친상에서 보여준 강퍅함은 고질병이나 다름없다. 틀린 말은 하나 없다. 대통령이 국민세금으로 성폭력범이 상주인 상가에 조화를 보내는 것이 떳떳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통령 아닌 문재인 개인 계좌에서 보냈어야 한다는 말일까. 한때의 동지, 한때의 경쟁자, 지금은 안타까운 모친상을 맞은 후배를 앞에 두고 그런 정치적 계산까지 했어야 한다는 말일까.

맞다. 안희정은 죄인이다. 살인범은 아니나 그 못지않은 상처를 남겼고, 젊은 시절의 애국애족이 무색한 사회적 중죄를 지었다고 볼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사회에 복귀하겠지만 그의 삶은 예전과 다를 것이다. 평생의 업(業)이었을 정치와 격리된 삶을 살아야 할 것이고 가족도 어머니도 더 이상 그의 곁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의당은 안희정이 아닌 안희정의 어머니에게는 예를 갖췄어야 했다. 조화를 보내란 게 아니다. 말은 삼갔어야 했다는 것이다.

정의당은 항상 태도가 문제라는 비판을 들어 왔다. 틀렸다. 정의당은 미숙함이 문제다. 정의당은 자신들의 주의, 주장과 이상에 갇혀 세상을 재단하며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노회찬이라는 예민한 안테나가 사라진 정의당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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