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장덕수의 논담전선]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마침내 위험한 놀음을 시작했다. 본인과 여권의 정치운명을 좌우할 판도라의 상자를 꺼내놓았다. 취임 후 한 달여간 대권후보 낙점놀이를 하던 김종인 위원장은 더 이상 거론할 후보가 마땅치 않았는지 '내각제 개헌'으로 패를 바꿨다. 김종인 위원장은 지난 14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에서 현재 정치·경제·외교안보 등 전방위적 국가 위기 원인을 '대통령제'라고 진단하며 대통령에 권력 집중이 계속되는 한 지금 같은 상황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종인 위원장은 "권력 구조를 개편하겠다는 (여권의)제의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여권은 그동안 김종인 위원장의 ‘내각제 제안’을 기다렸다는 듯이 낚아챘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17일 제72주년 제헌절 기념식 경축사를 통해 "대전환의 파도 앞에서 국민을 지키고 미래를 열기 위해 헌법의 개정이 불가피한 때"라며 "앞으로 있을 정치 일정을 고려하면 내년까지가 개헌의 적기로 코로나 위기를 넘기는 대로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자"고 제안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촛불로 이룩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고, 변화된 시대 흐름에 맞게 경제·사회·문화·노동·환경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헌법정신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시작할 때”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개헌을 시사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3월 제출한 4년 중임 대통령제의 정부개헌안을 제출한 바 있다.

청와대는 사전 교감이 전혀 없다는 듯이 ‘노코멘트’였지만 개헌 같은 중대사안을 국회의장과 국무총리가 ‘개인 의견’으로는 낼 수는 없다. 현 여권의 개헌 추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집권 초에는 이원집정부제 또는 4년 중임제의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one point 개헌 추진 움직임을 보이다가 20대 국회 의석수로는 개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뒤 선거구제 개혁으로 방향을 틀어 개헌 환경 조성에 집중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초 정부가 대북 대화에 집중하면서 남북연방제 통일 등을 대비한 이원집정부제 또는 내각제 개헌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월,  출간한 대담에세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개헌을 한다면 내각제가 더 나은 제도라고 본다"며 "권력의 균형과 집중이라는 면에서 내각제가 낫다"고 강조했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한다는 설이 파다했다. 2020년 21대 총선 전에 이원집정부제 개헌안을 통과시킬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회 의석수가 개헌안을 통과시킬 수 없었다. 여당인 민주당과 여권 우호정당인 정의당을 합쳐도 129석이고 친여 성향의 국민의당과 일부 무소속 의원이 합쳐서 140석에 불과했다. 개헌을 위해서는 국회 재적(300명) 의원 3분의 2 찬성과 국민투표 과반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이에 범여권은 2018년 12월 15일 선거제 개혁에 합의하고 패스트트랙 파동을 거쳐 21대 총선을 불과 4개월 앞둔 2019년 12월 27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전격 통과시키고 4.15 총선에서 민주당 163석, 더불어시민당 17석, 정의당 6석, 열린민주당 3석 등 189석에 친여 무소속 3석을 포함하면 192석을 확보하는 대승을 거둔다. 이제 여권은 앞으로 개헌의 첫 관문인 국회를 불과 8명만 확보하면 이원집정부제나 4년 중임 대통령제는 물론 순수 내각제, 연방형 내각제 그 무엇이든 통과시킬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결국 야당 대표인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내각제 개헌’은 이제나 저제나 때를 기다리던 여권에게 판을 깔아준 꼴이다. 

통합당에서는 김종인 위원장 말고도 내각제 개헌론자들이 많다. 김무성 전 의원도 내각제 개헌론자다. 김무성 전 의원은 “국민들이 현재로서는 너희가 잘못하고 있는데 내각제로 가게 되면 국회는 권력이 더 커지는데 제대로 하겠느냐 이런 불신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 불신을 국민들을 잘 설득해서 내각제로 가야 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권력구조는 어떻게 될까.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여야 합의가 절실하다. 아무리 의석수가 많아도 야당 동의 없는 개헌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하기 힘들다. 여권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김종인 위원장과 김무성 전 의원 등은 내각제를 원한다. 결국 양측 안을 절충하면 프랑스식 대통령제, 이원집정부제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앞서 밝혔듯이 문재인 대통령도 과거에는 4년 중임 대통령제였지만 내각제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 최근에는 내각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중 최고 업적으로 생각하는 ‘남북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해서는 남북 연방형 이원집정부제가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앞서 국민기본소득제 발언으로 여권의 국민기본소득제 논란에 불을 지폈다. 김 위원장 측은 ‘이슈 선점’이라고 했으나 결과는 ‘침 바르기’에 불과했고 실리는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챙겼다. 

김종인 위원장은 내각제 개헌 카드로 여권을 낚아보겠다는 의도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도리어 여권에게 발목이 잡힌 것 같다. 앞으로 국민을 담보로 한 김종인 위원장의 ‘투망식 정치놀음’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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