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석 의장 "개헌, 정치일정 고려해 내년까지가 적기"
정세균 "시대 변화 맞는 헌법정신 구현 시작할 때"
코로나에 '개헌 블랙홀' 역풍 우려…아직 신중론 다수

박병석 국회의장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72주년 제헌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0.07.17.[뉴시스]
박병석 국회의장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72주년 제헌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0.07.17.[뉴시스]

 

[일요서울] 대한민국 헌법 공포를 기념하는 17일 제헌절을 맞아 여권에서 개헌론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한 모양새여서 주목된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이날 제72주년 제헌절 경축사에서 "앞으로 있을 정치일정을 고려하면 내년까지가 개헌의 적기"라며 "코로나 위기를 한고비 넘기는 대로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자"고 밝혔다.

박 의장은 "헌법이 개정된 지 33년. 한 세대가 지난 현행 헌법으로는 오늘의 시대정신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권력구조 문제는 20대 국회에서 이미 충분히 논의했다. 선택과 결단만 남았다"고 여야에 개헌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박 의장은 전국단위 선거가 없는 21대 국회 전반기가 개헌의 골든타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민주당 국회의원 시절부터 대표적 개헌론자로 꼽히던 정세균 국무총리도 제헌절을 맞아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촛불로 이룩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고, 변화된 시대 흐름에 맞게 경제·사회·문화·노동·환경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헌법정신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시작할 때"라고 제안했다.

정 총리는 "코로나19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이때, 지난 4년 동안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던 '헌법'을 다시금 꺼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다가 다양한 현안에 묻혀 잠잠해지곤 했던 개헌론이 제헌절을 계기로 국회의장과 국무총리에 의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그동안 여권에서는 21대 국회가 개헌 문제를 풀 절호의 기회라는 인식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민주당이 180석(현재는 176석)을 쥔 슈퍼여당으로 거듭나면서 힘의 균형추가 여권으로 확연히 기울어지면서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018년 3월 4년 중임제 도입과 대통령 권력 분산, 지방 분권 강화, 선거 연령 하향 조정 등을 골자로 한 개헌안을 발의한 바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그해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국회에 제안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불발됐다.

이후 개헌은 동력을 상실했지만 4·15 총선을 통해 민주당이 거대 여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여권이 주도하는 개헌 추진 가능성은 다시 주목을 받았다.

문 대통령의 개헌안은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에 가로막혀 꽃을 피우지 못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는 인식에서였다.

다만 코로나19 사태 대응이 여권의 최우선 과제인 가운데 개헌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정국의 블랙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전면에 대두되지는 않고 있었다.

개헌 논의로 여야 대치가 심화될 경우 총선 압승으로 기껏 확보한 국정 주도권을 활용하지 못한 채 문재인 정부 집권 후반 2년을 허송세월로 보낼 수 있다는 우려였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아동정책조정위원회 회의에서 참석 위원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2020.07.17.[뉴시스]
정세균 국무총리가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아동정책조정위원회 회의에서 참석 위원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2020.07.17.[뉴시스]

 

그러나 민주당이 국회 운영을 단독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입법 권력을 쥔 마큼 여권의 오랜 숙원인 개헌론은 언제든 다시 불을 지필 수 있는 이슈로 남아 있다.

민주당 김두관 의원도 이날 토지공개념을 반영한 개헌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은 미래통합당이 부동산 정책에 어깃장을 놓고 있지만 그 당의 전신이었던 노태우 대통령은 당시 망국적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강력한 토지공개념 정책을 펼쳤다"며 "우리 헌법이 바뀌어야 할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저는 무엇보다 토지 공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헌법개정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는다"고 전했다.

다만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재적의원 3분의 2(200명) 이상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민주당 단독으로 밀어붙이기는 불가능하며 개헌 저지선을 확보한 통합당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통합당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고치기 위한 개헌 필요성에는 공감한 바 있지만 각론에서 민주당과 차이가 분명하다.

지난 2018년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당시 민주당은 기존 대통령제를 이어가되 임기를 4년 연임제로 바꾸고 국무총리 선출은 현행 방식을 유지, 선거구제를 개편하는 등 정부 개헌안이 곧 민주당 개헌안임을 밝힌 반면 통합당은 대통령이 국방, 외교, 통일 등 3개 부처만 맡고 나머지는 국회가 선출한 총리가 운영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내세우며 충돌했다.

또 토지공개념과 경제민주화 강화 등의 헌법 반영을 놓고도 통합당의 반대가 거셀 것으로 보여 개헌 논의는 별다른 힘을 받지 못하고 사그라들 가능성도 있다.

시기적으로도 아직은 개헌보다 코로나19 극복에 정치권이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인식이 정치권에 더 널리 퍼져 있는 분위기다.

추후 여권의 개헌 논의에 핵심 역할을 할 민주당의 차기 당대표 후보들도 아직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낙연 의원은 지난 9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21대 국회에서의 개헌 논의와 관련해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 국난 극복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며 "개헌을 얘기하면 전부 다 그쪽으로 몰려서 정작 필요한 시급한 입법과제들이 지체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 개헌이 급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김부겸 전 의원도 지난 1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진지한 토론을 하고 개헌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지금은 이걸 제기하기에는 코로나19라는 재난도 있고 해서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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