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숨길 품은 한국의 미 간직한 문경새재

[편집=김정아 기자/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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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프리랜서 김관수  기자]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고 했던 고갯길을 지키고 있는 것들은 옛 선비들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사람의 발걸음을 편안하게 맞아주는 황톳길과 그 길의 곁에서 귓가를 적시는 물길이 함께 살고 있다. 깊은 숲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생명들의 아롱아롱한 숨소리가 가슴 속에 차분히 스며든다.

옛 사람의 흔적들

문경새재에는 많은 이들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선비들뿐만 아니라 물건을 팔러 다니며 한양과 영남의 문물교류를 책임졌던 상인들과 일본을 왕래하던 조선 통신사 일행도 이 길을 넘었다. 사람들의 왕래는 험한 산 속까지도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게 했고, 그렇게 생겨난 것들이 긴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 남아 있기도 하다.

문경새재를 대표하는 세 개의 관문인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은 그중에서도 가장 아픈 사연을 지니고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뒤 빠르게 북상하던 왜군은 한양으로 진격하며 이곳 조령에서 나뉘어 다니던 부대를 합류시켰다. 그만큼 군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조령은 중요한 곳이었지만, 신립 장군은 이곳에서 적을 물리쳐줄 것이라는 조정의 기대와는 달리 충주로 후퇴하여 그만 길을 내주고 만다. 이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이 지금의 제2관문 자리에 성을 쌓고 교통을 차단하며 왜병을 기습하였으며, 군사적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조정은 3중의 관문을 설치하게 된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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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관문의 사이사이에는 나그네들의 숙소와 주막, 유적지, 그리고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노래와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숙소로 사용됐던 조령원터, 이·취임하는 경상도관찰사가 관인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하는 교귀정, 국내 유일의 순수 한글 비석인 <산불됴심비> 등은 그것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궁금하게 한다. ‘산불됴심’, 그 의미는 단번에 알아챌 수 있으면서도 안내문을 읽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문경에도 아리랑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는 이들도 많다. 같은 문경아리랑이고 가사도 같지만 부르는 이에 따라 소리의 억양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도 호기심을 부른다. 악보 등이 없이 오래도록 구전되어 왔기 때문에 문경아리랑은 우리에게 두 가지로 남게 됐다고 한다. 길 속에 세상의 이치가 있는 듯하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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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Point

편도 6.5km에 이르는 길을 한 바퀴 다녀오는 데에는 4~5시간 이상이 필요하다. 많은 여행객들이 1관문을 지나 2관문까지만 다녀오는 탓인지, 3관문을 향하는 길은 비교적 한산해서 느릿느릿 녹음을 만끽하기에 좋다. 특히 2관문으로 들어서기 전, 돌다리가 성벽으로 연결되고 작은 천이 다리 밑으로 흐른다. 멀리 주흘산 부봉이 배경이 되어 함께 보이는 지점이 있는데, 문경새재를 넘어 대한민국 어디다 내놔도 빠지지 않는 한국의 미가 드러난다. 평상 하나가 그 포인트에 놓여 있는데, 주의 깊게 찾아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이외에도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과 새재용추정도 잠시 앉아서 주변 풍경을 만끽하기에 좋은 곳이다. 군데군데 숨어 있는 멋있는 나무와 바위들도 많으니 잘 찾아보자.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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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낙동강 발원지, 문경 초점

조선 초기의 지리서인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낙동강은 그 근원이 셋인데, 하나는 봉화현 북쪽 태백산 황지에서 나오고, 하나는 문경현 북쪽 초점에서 나오며, 하나는 순흥 소백산에서 나와서 물이 합하여 상주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라고 기록했다. 문경초점은 문경새재의 옛 지명으로, 제3관문 근방에 그 발원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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