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성추행, 부동산 실패 등 부각할 호기에
의원들 행정수도 이전 찬성 목소리 나와 '비상'
지도부 "의견 표명 자제해야 與에 안 휘둘려"
당분간은 '행정수도 이전=失政 물타기' 비판
충청권 표 무시 못해 수도 이전 논의 불가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0.07.23.[뉴시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0.07.23.[뉴시스]

 

[일요서울] 여당이 쏘아올린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정국 '블랙홀'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자 미래통합당은 의원들 단속에 나섰다.

여당이 '행정수도 완성 추진 태스크포스(TF)'와 국회 특위 구성을 추진하는 등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가운데 당 내 충청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천도론'에 찬성 입장까지 내고 있어 내부 단속이 시급해졌다는 판단에서다.

부동산 정책 실패,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등 정부·여당을 흔들 수 있는 '호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자칫 여당의 노림수대로 각종 이슈가 묻힐 가능성이 높아 위기감 마저 읽힌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23일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이 뭐 하나 터지면 또 다른 게 터지고 해서 정신이 없는데 이런 국면 전환을 위해 행정수도 이전을 꺼내 들었다"며 "섣불리 우리가 그 논쟁에 가담해 집값 폭등, 박원순 성추행 사건의 중앙지검 조직적 은폐까지 덮이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념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당분간은 의견 표명을 자제해줘야 민주당의 의도에 넘어가지 않는다. 가급적 논쟁거리는 만들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함구령을 내렸다.

통합당은 행정수도 이전 논의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당분간은 '행정수도 이전=실정(失政) 물타기' 프레임으로 민주당에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여당이) 부동산 투기 대책이 성과를 전혀 거두지 못하고 지지율이 급락하니까 급기야 내놓은 제안이 세종시로 옮기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여당이 위헌 결정을 우회하기 위해 행정수도특별법을 추진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가 우리 사람(여권)으로 채워져 있으니 법안을 내면 합헌이 될 수 있다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까지 들린다"며 "문 대통령은 정책을 상식적인 수준에서 운영할 수 있게 정책팀 정리를 단행하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도 "16년 전에 소위 행정수도 이전을 놓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선거에 재미 좀 봤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이번에도 선거 재미를 보려고 민주당이 저런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행정수도 특위에 참여해달라는 이날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의 요구에 대해 "자다 봉창 두드리는 이야기"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나 통합당 의원들이 지도부의 함구령에 언제까지 따라줄 지는 의문이다. 중진들 중에서도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차원에서는 수도 이전에 긍정적인 목소리가 많은데다 특히 충청권 의원들은 지역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충남 공주·부여·청양 지역구 5선 의원인 정진석 의원은 지난 22일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밀도있게 추진해 행정수도를 완성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장제원 의원도 같은날 "당이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론을 왜 반대로 일관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헌법재판소의 16년 전 판결이 영원한 판결은 아니지 않나. 통합당이 지역균형발전 전반에 대한 논의를 오히려 민주당보다 더 강하게 내면서 아젠다를 주도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남권에 지역구를 둔 한 초선의원도 23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수도 이전은 언제가 되든 논의해야 할 일"이라면서 "국회, 청와대 등은 물론 공공기관도 이전하고 꼭 세종이 아니어도 인근이라면 못갈 이유가 없지 않나"라고 했다.

이날 의총에서도 지도부의 함구령에 공개 반발은 없었지만 상당수 의원들은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당 차원에서도 선거 때마다 충청권 민심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온 만큼 차기 대선을 생각한다면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언제까지 마냥 미뤄둘 수는 없을 거란 게 대체적 관측이다.

주 원내대표도 "통합당 중앙당 공약은 아니지만 충청권 공약에는 국회 세종 분원이 설치가 들어가 있다. 국회 분원설치는 가능한 일"이라며 이전 논의 가능성은 닫아두지 않았다.

다만 행정수도 이전 방향성이나 당론은 '위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를 결정한 다음에 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주 원내대표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이란 것은 600년 내려온 관습헌법이라고 했다"며 "그 헌법을 하위법으로 바꿀 순 없는 것이니까 위헌적 문제가 선결적으로 해결돼야 개헌이든, 행정수도 특별법이든 논의가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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