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 총리가 곤혹스런 처지에 몰렸다. 안으로는 당권을 두고 김부겸 전 의원과 일전을 겨뤄야 하고 밖으로는 대법원에서 사실상 무죄판결을 받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차기 대권 1위 자리를 두고 각축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당권 구도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당초 조용하게 당 대표직에 오르고 싶었던 이 전 지사지만 친문 인사에다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세를 탄 박주민 최고위원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박 최고의 출마는 차기 대권주자로서 자질을 의심받는 이 전 총리와 비주류 출신인 김 전 의원이 못마땅한 친문진영의 오갈 데 없는 표를 노린 틈새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일단 외형상 친문 지지를 받고 있는 이 전 총리에게 불리해 보인다. 그러나 합리적 개혁 성향의 표가 박 전 의원에게 갈 수도 있어 김 전 의원 표를 잠식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친문 주류에서 미는 이 전 총리보다 주류 진영의 ‘까치밥’이라도 얻으려고 했던 김 전 의원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서울 출신 박 최고의 출마는 명분이 있다. 호남 출신 이낙연 대 영남 김부겸 대결 구도에 뛰어들면서 영호남 지역 대결 구도를 완화시킬 수 있고 양자 구도보다 3자 구도가 언택트(비대면) 전대 흥행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최고가 서울시장 출마설에 휩싸인 인사라는 점에서 당대표 출마를 통해 대중 인지도와 위상을 높이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40대 후반의 젊은 박 최고지만 고령에 정치9단인 이해찬 대표체제하에서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전 총리는 눈앞의 당권도전도 힘겨운 싸움이지만 대권 가도에도 빨간등이 켜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허위사실 공표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2심 유죄 판결을 깨고 파기 환송함으로써 대권 행보에 날개를 단 격이 됐기 때문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대법원 무죄 취지의 판결이후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에서 이 전 총리를 오차범위까지 추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 총리의 리더십이 안팎으로 시험대에 오르면서 여권 일각에서는 ‘7개월짜리 당대표’에 너무 많은 것을 건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특히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미투’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내년 4월 재보궐 선거가 미니 대선급으로 격상된 상황이다. 

이미 ‘성추행’ 의혹으로 단체장직을 사퇴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서울시장 선거까지 치러지면서 내년 4월 재보궐 선거판이 커진 형국이다. 이 전 총리가 우여곡절 끝에 당대표에 올라 내년 3월까지 당대표 직을 수행하고 사퇴한다고 해도 4월 재보선 성패에 따른 책임론을 비껴가긴 힘든 상황이다. 

물론 당대표가 아닌 차기 대권주자 1위로서 4월 재보궐 선거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뛸 수밖에 없어 패할 경우에도 책임을 질 수 있다. 하지만 당대표 직을 갖고 있는 것과 아닌 것은 무게감이 다를 수 있다. 부산은 패하고 서울은 수성한다고 해도 이 전 총리 입장에서 득보다는 실이 많은 당권 도전인 셈이다. 

이에 여권 일각에서는 이 전 총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자진 사퇴’의 퇴로를 열어줘 ‘이낙연 대망론’의 생명을 연장시켜야 한다는 주장 마저 나오고 있다. 이 전 총리가 대권 레이스에서 조기 낙마할 경우 비주류 출신인 이재명 독주 체제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권력의 최대 관심사가 미래 권력이 자기 편에서 나와야 ‘퇴임 후 안전판 확보’가 가능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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