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년 전(1882년) 조선은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제3국이 한쪽을 침략하는 등 부당 행위를 할 때 다른 한쪽은 조정에 나서는 등 반드시 서로 도움을 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3년 뒤(1905)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조선을 배신했다. 미국과 일본은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서로의 지배를 인정한 협약을 맺음으로써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화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지난 7월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 “미국 국방부가 백악관에 주한미군 감축 옵션을 제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WSJ은 이튿날 사설을 통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부에 아프가니스탄, 독일, 한국 주둔 미군 철수를 밀어붙였다”고 전했다.

해당 보도 내용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주한미군 방위비 협상에서 한국 측으로부터 양보를 끌어내려는 일환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우리 역사상 주한미군 감축론(철수론)은 닉슨, 카터, 부시 전 대통령 시절 세 차례 있었다. 그 때마다 우리 정부는 워싱턴으로 사자(使者)를 보내 미국 내 친한파(親韓派)를 총동원해 외교적 해법을 찾았다.

1979년 6월30일. 청와대에서 단독 회담을 가진 박정희, 카터 한미 정상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놓고 날 선 공방을 벌였다.

박 전 대통령은 “(전략) 북한이 현재 우리보다 우월하며 그들의 (대남)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며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했다. 그러나자 카터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병력 규모를 동결하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한국군 군사력 증강 시간표를 제시하면서 “북한이 (대남 적대시 등의)정책을 바꿀 대까지는 미 2사단 주력 부대가 한국에 남고 한미연합사령부가 계속 유지되기를 솔직히 희망한다”고 설득했다.

한미 정상의 공방은 방위비 분담 이슈로 번졌다.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의 방위비(GNP의 20%)에 비해 한국의 방위비(GNP의 5%) 분담이 적다”고 지적하자 박 전 대통령이 “북한은 그렇게 할 수 있어도 우리는 할 수 없다”고 버텼다. 이후 논의가 이어지면서 카터 전 대통령은 “한국이 (북한처럼) 방위비로 쓸 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고, 박 전 대통령도 방위비 증가 의사를 밝히면서 가까스로 논란이 봉합됐다.

문재인-트럼프의 주한미군 감축론(철수론)이 박정희-카터가 걸었던 길을 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41년 전 그때와 결정적 차이는 지금은 미국 조야(朝野)에서 한국의 안보 상황을 대변해 줄 친한파(親韓派)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한미군 철수론에 대한 국내 언론 논평도 좌-우로 갈려 있다. 좌파 언론은 ‘주한미군의 바짓가랑이를 잡지 마라’는 논조며, 우파 언론은 ‘주한미군을 조심히 안 다루면 재앙이 된다’는 논조다.

WSJ 보도와 관련, 외교부는 “한미가 주한미군 감축을 논의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며, 청와대는 “지나치게 무게를 둘 사안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이는 미국의 주한미군 감축은 으름장이며 트럼프도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는 느긋한 자세다.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은 당분간 그리 크지 않을 수 있지만 무풍지대(無風地帶)는 아니다. 한국에서의 병력 철수는 중국과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고, 가까운 동맹을 저버리는 일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외국 자본 등이 빠져나가 우리 경제에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은 방위비 인상 수단으로 ‘미군 철수 위협’을 거론하고 있다. 정부는 상상도 하기 싫은 최악의 상황에 적극 대비해야 한다.

올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밀어붙일 수도 있다. 주독미군 감축은 국방부 및 외교안보 고위직들이 거의 모른 상태에서 결정됐고, 논의 과정에서 독일에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미국이 일본에게 군사 무장을 허용하면서 동아시아 방위 임무를 맡기고 물러날 수도 있다. 그 경우 대한민국에게는 악몽 같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재현되는 것이다. 역사는 어리석은 결정을 반복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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