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연구보고서 살펴보니···‘先도입 後연구’ 순서부터 잘못됐다

일요서울이 입수한 ‘고도정수처리 정책방향에 관한 연구’ 자료. [사진=조택영 기자]
일요서울이 입수한 ‘고도정수처리 정책방향에 관한 연구’ 자료. [사진=조택영 기자]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인천에서 시작된 ‘수돗물 유충’ 파문으로 이른바 ‘수돗물 포비아(공포증)’가 전국으로 확산하고, 49개 고도처리 정수장 중 7개 정수장 내 활성탄에서 유충이 발견된 가운데, 정수장 시설 운영‧관리인력 부실 때문에 벌어진 예견된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일요서울은 과거 연구자료(‘고도정수처리 정책방향에 관한 연구’/ 2004년 환경부 발행 / 연구기관-서울대학교 / 책임연구원 윤제용, 선임 연구원 최승일‧손진식, 연구원 문성민)를 입수 후 분석, 과거부터 고도처리 정수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지적이 있었는지 살펴봤다. 

오존활성탄 공정문제점 한둘 아냐연구서 목적도 불분명

최근 환경부가 전국 고도처리 정수장 49개소를 점검한 결과, 공촌‧부평 정수장을 포함한 7곳의 활성탄에서 유충이 발견됐다.

현재 환경부, 한국수자원공사 등에서는 활성탄이 외부에서 유충 등 이물질의 유입을 막을 수 없는 구조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밀폐 설비 강화 등의 대책이 거론, 시행되는 상황. 그러나 ‘급한 불 끄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거부터 고도정수처리 시설에 대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운영 시스템을 사소한 것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깔따구 유충 정보. [그래픽=뉴시스]
깔따구 유충 정보. [그래픽=뉴시스]

1994~2006년

사업비 ‘4359억 원’ 투입

기자는 환경부에 제출된 ‘고도정수처리 방향에 관한 연구(2004년 환경부 발행)’ 자료를 분석, 과거부터 고도정수처리 시설‧운영에 대해 어떤 지적이 있었는지 살펴봤다.

연구서의 연구진은 4명, 자문위원은 10명에 달한다. 연구서는 “과거 2차례에 걸쳐 환경부가 추진한 고도정수시설의 현황 조사와 본 연구 결과를 토대로 기존 고도정수시설에 대한 최적운영을 도모하고 향후 고도정수시설 도입정책을 세우는데 도움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본 연구는 국내 고도정수시설을 설계 운영해온 수많은 현장 기술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정책결정자, 관련 산업체 기술자, 학계의 전문가들의 아낌없는 자료제공과 의견을 통해 이뤄졌음을 이 자리를 통해 밝힌다”고 서두를 뗐다.

연구서에 따르면 국내 정수장에 본격적으로 고도정수시설이 도입된 것은 1994년 이후로 볼 수 있다. 고도정수시설의 도입이 촉발된 것은 1990년대 이후 낙동강 수계에서 여러 건의 수질오염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수질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고도정수시설이 도입됐다.

연구서는 “2003년 말 현재 환경부의 고도정수시설 계획을 살펴보면, 사업기간 1994년에서 2006년까지 사업비 4359억 원(국고 2366억 원)을 투입해 전국 21개 정수장에 고도정수시설을 설치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고, 이중 2003년까지 운영 중인 정수장은 17개소”라며 “주요 도입공정으로는 오존공정과 활성탄공정을 대부분 적용했고, 대부분의 경우 오존공정과 활성탄공정을 병행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표준정수처리 공정으로 단순화돼 있던 국내 정수장에 고도정수시설이 단기간에 도입됨으로, 상수원수의 악화, 지역주민들의 먹는 물에 대한 민원 등과 같은 사회적 요구에 신속히 대응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점으로 평가된다고 연구서는 설명했다. 다만 고도정수시설 도입과정에 있어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점이 부족했고 도입 목적 자체가 불확실해 최적 공정선정, 시설의 적정운영 및 도입효과에 대한 평가가 미흡했다는 점이 지적돼 왔다고 연구서는 밝힌다.

“오존공정, 최적 설계 못했다”

연구서에는 10여 년에 걸쳐 20개소라는 적지 않은 수의 고도정수시설을 도입했음에도, 축적된 기술과 경험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지 못하다고 적혀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지적됐을까. 첫째는 오존공정에 대한 문제점이다. 고도정수시설 정수장의 오존 설비가 과잉 설계돼 있다는 비판이 있음에도 정수장의 오존 설비 가동률이 체계적으로 보고 된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오존 설비가 최적 설계되지 못했다는 점을 표를 통해 지적하고 있다. 제작회사 등에 따라 다를 순 있으나 가동률이 들쑥날쑥한 것으로 나타났다. 높은 곳은 87%에 달하는 반면, 낮은 곳은 6%에 불과하다.

또 전 오존공정-후 오존공정의 도입목적에 대해 언급(국내 도입 오존공정 시설‧운영현황을 설문조사, 기존 보고 자료 등)하고 있으나, 실증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체계적인 도입목적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고 연구서는 설명했다. 특히 전 오존공정 도입목적(응집‧침전효율의 향상, 망간의 제거, 조류 제거, 맛냄새 유발물질의 제거 등)을 정수장 측의 의견을 통해 정성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후 오존공정 역시 마찬가지다.

연구자료(2004년) 내 ‘정수장별 활성탄 개요’ 표. 정수장들이 생물활성탄(BAC)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연구자료(2004년) 내 ‘정수장별 활성탄 개요’ 표. 정수장들이 생물활성탄(BAC)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고도정수시설 활성탄 공정은

생물활성탄 운영 목적으로 도입”

두 번째는 활성탄 공정에 대한 문제점이다. 연구서에는 지난 23일 일요서울이 보도(2020년 7월23일 일요서울 [단독] ‘수돗물 유충 사태’, 활성탄 ‘부착미생물’이 유충 번식 원인일까 기사 참조) 내용처럼 ‘생물활성탄(BAC)’이 언급된다.

연구서는 “국내 정수장의 고도정수시설은 오존과 활성탄 공정을 채택하고 있으며, 활성탄 공정은 ‘생물활성탄’ 공정으로 운영할 목적으로 도입됐다”면서 “90년도 초반에는 고도정수시설로 흡착 기능만을 중심으로 하는 입상활성탄을 도입하는 것은 지자체에 큰 경제적 부담이 될 것으로 판단했으며, 이러한 경제적 부담을 경감하는 공정으로 생물활성탄이 주목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생물활성탄 도입을 전제로 한 파일로트 공정 연구도 일부 수행됐고, 초기의 활성탄 시설의 입찰에 생물활성탄이 명시적으로 공고되기도 했다. 그러나 생물활성탄 공정의 목적과 적정 운영에 대한 논란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크게 존재한다”면서 “생물활성탄 공정에 가장 최적으로 설계됐다는 명장정수장(부산시)의 경우 활성탄의 교체 여부가 아직도 검토 중에 있다. 대부분의 정수장에서 오존주입이 생물활성탄 공정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규명이 미흡한 실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초기 고도정수시설 도입 계획이 이뤄졌을 때 생물활성탄은 흡착 기능을 위주로 하는 입상활성탄과 달리 활성탄을 교체하지 않아도 되거나 교체한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인 운영 후에 활성탄을 교체하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생물활성탄 공정의 활성탄 교체 여부와 시기에 대한 개별 정수장의 혼란은 매우 컸다”면서 “이런 혼란은 활성탄 공정의 설계, 운영방법, 역세의 시기 등과 같은 활성탄 공정 설계와 운영에 여러 가지 논란을 가져왔다. 이에 더해 아직도 생물활성탄이 무엇인가 하는 개념 정의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으며, 어떠한 운전조건 하에서 생물활성탄이 정상적인 기능을 나타내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한다.

정리하면 활성탄 공정은 본래 ‘생물활성탄’ 운영을 목적으로 도입됐으며, 입상활성탄 보다 장기적 운영이 가능해 ‘비용 절감’ 차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생물활성탄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어, 공정 설계와 운영에 여러 논란을 가져왔다. 심지어 1994년 고도정수시설 도입이 본격화되는 시기부터 연구서가 발행된 2004년까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생물활성탄의 개념 정의 조차 전문가들에게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것이다. 고도정수처리 시설 한 곳 건립비에만 수백억 원이 투입됨에도 선 운영, 후 연구가 이뤄진 셈이다.

“설계‧운영 문제 발생

기술 축적‧보급에도 어려움”

연구서는 “국내에서도 지난 10여 년간, 17개 정수장에 고도정수시설을 도입한 결과로 고도정수시설의 설계 및 건설에 참여했던 국내 건설 및 엔지니어링 회사들이 수도 많이 증가했다”면서 “그러나 현재 많은 고도정수처리 시설 도입 정수장들이 자신들의 고도정수시설에 대해 전반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국내 엔지니어링사들의 기술력의 부재에서 오는 설계상의 미숙함이 큰 이유 중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어, 10여 년간의 고도정수시설의 설계 경험이 고도정수시설과 관련된 엔지니어링 기술 발전이 체계적으로 이뤄졌다고 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내 정수장에 고도정수시설을 도입할 경우 최적 공정 선정과 설계인자를 구하기 위해서 도입 예정 정수장의 상수원수를 이용한 실증 실험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고도정수시설을 도입하는데 있어서 그 과정이 생략되거나 적절하게 수행되지 않아 앞에서 언급한 많은 고도정수시설의 설계 및 운영상의 문제점들이 발생했고, 기술 축적과 보급에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서는 고도정수처리 시설에 대해 연구수행자들과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 ▲시기와 비용 면에서 비현실적인 실증연구 계획이 수립됐다. 즉 실증연구를 하면서 동시 고도정수시설 설계가 진행돼 공정설계 시 실증연구의 활용이 미흡했다 ▲실증연구의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 실증 연구의 결과가 향후 공정운영에 어떠한 도움을 줬는지 확실하지 않다 ▲실증연구의 설계가 실 공정의 설계와 크게 달라서 실증 연구의 목적이 불분명해졌다. 즉 실증 연구에 사용된 활성탄에서 오염물질 제거 효과가 있었지만 실공정에서는 다른 활성탄이 사용돼 결과의 비교가 가능하지 않았다 ▲실증 연구자가 선정됨에 있어서 불합리한 측면이 있었다. 일부 실증 연구자들의 연구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 등을 지적했다.

이 밖에도 연구서는 고도정수시설에 대해 ▲실제 수질개선효과 ▲오존 및 활성탄 시설 설계‧운영 문제점 ▲운영‧관리 개선방안 ▲도입 효과 ▲도입과정 문제점 등을 기술하고 있다.

물론 과거부터 지적된 여러 고도정수처리 문제점이 현재 수돗물 유충 사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지는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전문 인력 부실’, ‘시설 설계‧운영‧검증 미흡’, ‘무리한 추진’ 등 고질적인 문제가 고도정수처리 시설 본격 도입시기(1994년)부터 10여 년이 지난 시점(2004년)에도 제기된 만큼 이번 수돗물 유충 사태는 ‘예견된 인재’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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