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엄경영 소장

정치 또는 선거는 종종 프레임 전쟁으로 불린다. 프레임은 꼭 객관적인 사실, 가치 판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에 가깝다. 이 때문에 프레임은 먼저 나서서 구도를 만드는 쪽이 유리하다. 미국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프레임을 운동장에 비유했다. 상대를 내 안마당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올바른 프레임 활용이라는 것이다.

핵심 쟁점이 떠올랐을 때 잘못 대처하면 큰 손실을 입기 마련이다. 정치 또는 선거에선 치명적이다. 곧 패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몇 가지 대처 방안을 조언한다. 논쟁 국면에서 자신이 있을 때는 적극 참여한다. 이길 가능성이 없다면 아예 무시한다. 폭발력 있는 새로운 쟁점을 들고 나온다. 밖에서 보면 쉬워 보이는데 막상 내부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도이전 논란도 프레임 전쟁 성격을 갖고 있다. 여권은 잇달아 6.27, 7.10 두 번의 부동산대책을 내놨지만 여론은 더욱 악화했다. 민주당은 당초 그린벨트 해제로 방향은 잡았지만 부정 여론과 대선주자들이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결국 대통령까지 나서서 간신히 수습했다. 재건축, 재개발, 규제완화 등 공급대책이 빠지면서 시장 반응도 싸늘했다.

백약이 무효였다. 여권은 점점 코너에 몰렸다. 수도이전은 여권을 수렁에서 구한 신의 한수가 됐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수도이전 제안을 했을 때만 해도 반향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김종인 비대위원장 등 당 지도부가 반대 입장을 밝히고, 충청권 의원들과 장제원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정치권 이슈로 부상했다. 보수 매체들도 여권 공격 소재로 삼으면서 부동산 혼란에서 수도이전으로 프레임이 옮아갔다.

수도이전은 2002년 가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대위 발대식에서 내놓은 깜짝 카드였다. 수도권 과밀해소와 균형발전이란 명분과 충청권 공략이란 실리가 딱 맞아떨어졌다. 노 전 대통령도 나중에 수도이전 공약이 대선에서 효과를 봤다고 시인했을 정도다. 헌재 위헌 판결로 수도이전은 반쪽에 그쳤다. 그러나 수도 분할에 따른 비효율 등이 지적되면서 수도이전은 여전히 살아 있는 카드가 된 것이다.

통합당은 수도이전 반대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손해막급이다. 여권은 문제해결 노력이 돋보인 반면 통합당은 ‘발목 잡기 이미지’만 쌓이고 있다. 수도 이전을 대체할 만한 다른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당내 찬성 인사들도 상당하다. 민심도 여권 편이다. 최근 실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수도이전 찬성은 53.9%로 반대(34.3%)보다 훨씬 높았다.

수도이전은 수도권 과밀해소와 국토균형발전이란 명분을 담고 있다. 부동산 안정에 기여할 수 없다거나 여권의 국면 전환용이란 비판은 하위 요소다. 프레임이 만들어지면 명분에서 전선이 형성된다. 통합당은 부작용을 비판하지만 이는 자칫 명분에 대한 반대로 비칠 수 있다. 결국 수도이전 프레임은 여권에 상당히 유리하다. 조지 레이코프 가설을 대비하면 수도이전은 여권 안마당이다. 통합당은 자기 안마당을 놔두고 남의 집에서 싸우고 있는 셈이다. 불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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