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후 정의당 혁신위 출범...與와 거리 두기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으로 정의당이 양분되는 모양새다. 박 전 시장은 지난 10일 삼청각 인근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정의당의 초선인 류호정·장혜정 의원은 박 전 시장이 숨진 날 SNS에 성추행 피해자와 연대의 뜻을 전하며 조문을 거부했다. 바로 ‘여직원 성추행 의혹’ 때문이다. ‘조문 거부’에 대한 당원의 탈당과 여권 지지자들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심상정 대표는 지난 14일 의원총회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의 사과가 당내 노선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정의당은 주요 정치 이슈에 대해 민주당과 입장을 같이해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조문(弔問)정국’을 둘러싼 정의당 내 갈등을 일요서울이 파헤쳐 봤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뉴시스]
심상정 정의당 대표[뉴시스]

 

-진중권 “정의당 의석수에 눈멀어 제 역할 못해”

정의당은 지난해 ‘조국사태’로 촉발된 당내 노선 갈등을 이번에도 피하지 못했다. 정의당은 박원순 전 시장 사망과 성추행 의혹 사건과 관련, 조문 뒤 피해자 보호에 나서겠다는 당론을 정했다. 하지만 박 전 시장이 숨진 날 류호정 의원은 SNS에 “조문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고, 장혜영 의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애도할 수 없다”며 ‘조문 거부’의사를 밝혔다. 이를 비판하는 정의당원들의 탈당계 제출이 줄을 이었다.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는 지난 14일 의원총회에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반면 홍명교 정의당 혁신위원은 같은 날 SNS를 통해 “심상정 의원의 사과 메시지는 불필요한 혼란을 가중시키고, 의도와 무관하게 당 혁신위와 두 의원의 권위를 손상시키며, 혁신위를 허수아비 취급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하며 “심 대표의 갈팡질팡 메시지로 상처를 드려 혁신위원으로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지난 15일 SNS에 심 대표를 향해 “민주당 2중대 하다가 팽당했을 때 이미 정치적 판단력에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며 “이로써 이분에 대해 가졌던 마지막 신뢰의 한 자락을 내다 버린다. 저 말 한마디로 피해자가 ‘5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라 절망했던 그 ‘위력’에 가담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앞서 정의당은 ‘조국사태’로 내홍에 휩싸였는데, 심 대표가 추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과시키기 위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온갖 비리 의혹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과 연합하여 그의 임명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진보논객으로 알려진 진 전 동양대 교수도 이 사건을 계기로 정의당을 탈당했다. 진 전 교수는 지난 1월 11일 SNS에 올린 글에서 “정의당이 의석수에 눈이 멀어 지켜야 할 그 자리를 떠난 거다”라고 비판했다. 

정의당은 지난해 12월 27일 민주당과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개정안 통과 당시 정의당은 정당득표 20%이상,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 구성을 목표로 삼았다. 

민주당은 미래통합당의 비례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꼼수’, ‘가짜정당’이라고 비판하며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여권 발(發) ‘1당을 뺏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비례연합정당’을 출범시키고 원외정당을 들러리로 세우며 정의당에 참여를 요청했다. 정의당은 참여하지 않겠다고 민주당에 선을 그었다. 장혜영 정의당 청년선거대책본부장은 지난 3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청년선거대책본부 출범식에서 정의당이 조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찬성한 데 대해 “반성한다”고 발언했다. 

의석수 확대를 노렸던 정의당은 지난 4.15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 입성을 목표로 했으나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절반도 못 미치는 6석에 그쳤다. 지난 4월16일 정의당 중앙선거대책위 해단식에서 심 대표는 “최선을 다한 당원들과 정의당의 홀로서기를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더 좋은 결과를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정의당은 민주당의 패스트트랙 법안 통과를 위해 이용만 당한 모습으로 비춰졌다. 정의당의 뒤늦은 ‘홀로서기’ 노력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정의당은 당 쇄신을 위해 지난 5월 혁신위원회를 출범했다. 이혁재 정의당 혁신위원은 지난달 26일 열린 혁신위원 공개회의에서 “그동안 민주당 2중대로 비쳤던 모습을 철저히 극복해야 한다”며 “특히나 조국·윤미향 사태 당시 당이 원칙적 입장을 보이지 못하는 모습은 비판 대상이었다”고 지적했다.
 

류호정, 장혜영 정의당 의원[뉴시스]
류호정, 장혜영 정의당 의원[뉴시스]

 

강령개정권 미룬 정의당...언제 혁신하나

일요서울은 이번에 발표된 정의당 혁신안을 통해 ‘당의 선명성 강화’ 여부를 알아봤다. 정의당 혁신위는 지난 19일 두 달여 동안 고심한 혁신안 초안을 발표했다. 이를 기초로 혁신위는 당원들의 의견수렴과 토론을 거쳐 혁신 최종안을 발표해 오늘 8월 말 있을 전당대회에서 추인 받을 계획이다. 

혁신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혜영 의원은 이날 오후 ‘정의당 TV'를 통해 혁신안 초안 온라인 설명회를 통해 “이 초안은 정의당과 한국사회를 사랑하는 평범한 18명의 사람이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지고 토론하고 공감하고 논쟁하고 합의하며 애써 만들어낸 민주적 토론의 결과물”이라며 총 7가지 제안을 소개했다.

혁신위의 7가지 혁신안에는 ▲ 2021년 상반기 강령개정 ▲ 평등하고 안전한 조직문화 ▲ 지지당원제 도입 및 당권 강화 ▲ 원내·외, 중앙·지역 통합하는 정치활동 ▲ 대의원대회 권한 강화 및 전국위원회 폐지 ▲ 당내 지도 체제 개편 ▲ 청소년 및 청년 정치 활성화 등이 있다.

그런데, 혁신위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차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강령개정을 차기 지도부에 넘기면서 한계가 드러났다. 4.15총선 이후 정의당은 ‘민주당 2중대’라는 이미지를 떨쳐내고 당을 개혁하기 위해 혁신위를 출범했음에도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뉴시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뉴시스]

 

‘민주당 2중대’ 한계 드러나...그 뒤엔 유시민계?

정치권 일각에선 정의당이 ‘민주당 2중대’를 탈피하지 못한 이유가 창당 당시부터 민주당 출신 인사들과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난 2012년 정의당은 유시민‧천호선 등 국민참여당계와 심상정‧노회찬 등 진보신당 탈당파가 통합진보당에서 나와 창당했다.

현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이사를 맡고 있는 유시민‧천호선 전 의원 등이 정의당 창당 멤버로 참여하며 정의당은 지금 민주당의 주류세력인 친노·친문 세력과 여러모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지속해 왔다는 것이다. 

정의당은 고(故) 노회찬 의원 사망 후 친민주당 성향 당원들이 대거 늘었다. 노 전 의원의 후원회장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맡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은 4.15총선 이후 당을 쇄신하기 위한 혁신위까지 발족시키며 민주당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앞으로 ‘민주당 2중대냐 홀로서기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정의당의 선택이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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