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감성 체코 ‘알쓸신잡’ 이야기- 첫 번째 여정]

[편집=김정아 기자/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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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프리랜서 김관수  기자] 체코는 처음부터 ‘유럽의 감성’으로 각인됐다.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찾아간 프라하에서 순식간에 되돌아 온 그때의 감회는 처음 만난 다른 도시에서도 계속해서 이식되고 있었다.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하루하루 달라진 감성의 이름들을 담으려했던 모라비아, 그렇게 내 사랑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진 땅.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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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비아 Moravia

체코는 수도 프라하 등이 속한 서부의 보헤미아(Bohemia), 제2의 도시 브르노 등이 속한 동남부 지역의 모라비아, 그리고 동북부 지역의 실레지아(Silesia) 까지 3개의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라비아는 체코어로 ‘Morava모라바’ 라고 부르며, 모라비아강이 이 지역을 지나가고 있어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한다. 과거 영화롭던 시절을 보여주는 바로크 양식의 많은 유산들과 체코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들이 모여 특유의 클래식한 정취를 간직하고 있지만, 체코에서 가장 힙한 분위기와 독특한 도시재생의 매력도 뿜어내고 있어 최근 여행자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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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라바 (Ostrava)
정적 강철도시

프라하를 떠난 기차는 약 3시간 후 오스트라바에 닿았다. 체코를 대표하는 공업도시는 프라하의 기억이나 모라비아에 대한 기대와는 감성적으로 먼발치에 있는 듯 보였다. 흐릿한 시야와 인적 드문 시내의 생기 없는 기운 때문이었을까. 제법 흥미로운 외관을 지닌 시청사의 전망대에 올라가 도시의 풍경을 바라본 뒤에도 왠지 휑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의 울산에 비견되는 공업도시라는 사실을 군데군데에서 커다란 연기를 피워내는 굴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오스트라바는 석탄을 채취하는 광산으로도 유명했다.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폐광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관광코스로 개발한 란덴 파크(Landen Park)에는 지난 1990년대까지 약 150년 이상을 이어왔던 탄광의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관광용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어두운 갱도 속을 오가는 광차와 각종 장비들, 목숨을 담보한 채 더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던 광부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아슬아슬한 모습들, 그리고 이곳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바치고 이제는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백발의 노인까지. 그의 눈에는 그 시절의 첨단 시스템을 도입하고 지역 경제에 크게 이바지했던 책임자로서의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리고 지금 란덴 파크는 폐광의 아픔이 아닌, 변함없는 활기찬 모습으로 새로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오늘의 오스트라바를 또렷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곳은 뜻밖의 장소였다. 출장 중 참석했던 국제 행사가 열린 돌니 비트코비체(Dolni Vitkovice). 한때 유럽을 대표하던 거대한 탄광과 제철소 단지는 모두 녹슬어 자칫 폐허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곳에 모인 전 세계 참가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만족스러워 보였다. 여느 유명 행사장 못지않은 공연과 파티가 열렸고, 과거 가스 저장탱크로 쓰였던 공(Gong)이라는 이름의 컨벤션센터에서는 대규모 컨퍼런스를 비롯해 각종 강연과 미팅이 진행됐다. 야외에 마련된 참가자들의 휴식 장소에 마련된 선베드, 한편에서 빠른 템포의 음악을 틀어 놓은 시민들의 스포츠 이벤트, 유모차를 끌고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나온 가족들, 거대한 용광로 위에 설치한 전망대에 놓인 빨강 자동차까지. 이 모든 아이러니한 현실을 둘러싼 웅장한 고철덩어리와 낡은 벽돌은 이곳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오히려 역동적인 세련미를 연출해 내고 있었다.

오스트라바에 머물던 며칠, 도시는 그렇게 나의 눈에서도 변화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보일 것 같지 않던 풍경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빈 빌딩의 낡은 벽을 가득 메운 여인의 얼굴, 광장을 둘러싼 파스텔톤 건물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대신한 이색적인 영상물까지. 재생이라는 건, 낡은 것을 새것으로 바꾸는 것에 더해 그것과 함께 공존하는 사람들의 삶 역시 함께 바꾸어주는 게 아닐까. 우리 마음의 온도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의해 차가워지고 또 따스해진다.

Info. 돌니 비트코비체

오스트라바를 대표하는 여행지로 주저없이 돌니 비트코비체를 꼽는다. 이곳이 여행지라는 사실이 잘 믿겨지지 않지만 원료 채굴부터 철 생산을 모두 담당하던 거대한 시설이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완벽하게 변신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기 어렵다. 다양한 공간들을 둘러볼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어 돌니 비트코비체의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새롭게 모습을 바꾼 공간들을 경험할 수 있다. 투어 프로그램 외에도 카페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외부는 상시 개방되어 있으니 시간의 여유를 충분히 갖는 것이 좋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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