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말’보다 간결성·전달력 갖춘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효과 ‘한 방’

[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청와대 행정관 출신의 미래통합당 당료(黨僚)는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일대에서 만난 일요서울에 “더불어민주당이 ‘일하는 국회’를 앞세운 결과 여당 외에는 모두 ‘일하지 않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던졌다”라고 지적했다. 즉, 여당의 “일하는 국회”라는 ‘구호 투쟁’에서 야당이 한걸음 뒤처지게 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를 대응하듯 통합당에서 ‘지금 이 나라에 무슨 일이’라는 백보드 문구가 등장하며 눈길을 끌고 있다. 통합당의 김수민 신임 홍보본부장이 지난달 29일 임명된 이후 생긴 ‘오랜만의 변화’다. 그래서 일요서울이 그 변화를 알아봤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미래통합당 백보드(배경막)에 눈길이 모아진다. [뉴시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미래통합당 백보드(배경막)에 눈길이 모아진다. [뉴시스]

 

-민심 속 ‘나라가 니꺼냐, 문재인 파면’…野, 장외 투쟁은 '글쎄'

우선, 여기에 ‘답’은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우려되는 점’ 또한 있을 뿐이다. 일요서울은 미래통합당의 김수민 신임 홍보본부장이 임명된 이후 나타나고 있는 ‘구호(口號) 투쟁’ 전략을 분석해봤다. 그동안 ‘혁신’을 외쳐 온 통합당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함이다.

정당의 가치는 ‘선명성’을 잃는 순간 동력을 상실한다. 정당이 추구하는 바는 ‘말(言)’에서 묻어나는 만큼, 정당의 가치가 확실하려면 어떤 구호를 사용할 것이냐의 문제가 된다. 바로 ‘구호(口號) 투쟁’이 필요한 이유이다.

‘구호 투쟁’이란 용어는 곧 ‘슬로건(Slogan)’과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를 어떻게 쓸 것인지의 문제로 이어진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슬로건이란, 어떤 단체의 주장·생각 따위를 간결·명확하게 나타낸 짧은 표어나 어구를 뜻한다. 캐치프레이즈 역시 선전 등에서 주의를 끌기 위한 문구라고 정의돼 있다. 슬로건과 캐치프레이즈 모두 ‘간결성’, ‘전달력’이 공통적이다.

즉, 정당의 ‘구호 투쟁’은 모두 하나같이 단순한 표현으로 대중이 이해하기 쉬워야 하며 ‘단정적(斷定的)이어야 한다’는 특징으로 모아진다. 물론 슬로건과 캐치프레이즈에서 정당의 가치가 녹아 있어야 함은 당연지사. 짧고 간결할수록 높아지는 전달력과 핵심 가치로 사람들을 사로잡아야 한다. 정당이란 결국 당원의 확대와 지지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은 소속 의원 전원이 공동 발의(김태년 원내대표 대표 발의)한 제21대 국회 1호 당론 법안 ‘일하는 국회법’을 발의하며 야당을 ‘일하지 않는’ 것으로 몰아세웠다. 여당의 슬로건 ‘일하는 국회’는 곧장 민주당의 최고위원회의의 백보드에 걸렸고 방송 화면에 잡히며 전국에 방영됐다. 여당의 ‘구호 투쟁’에서 야당이 한 발 밀린 결과다.

그런데, 최근 통합당은 ‘구호 투쟁’에서 선점력을 보이는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지금, 이 나라에 무슨 일이’, ‘그렇게 해도 안 떨어져요, 집값. 더불어민주당’, ‘이 나라, 믿을 수 없는 게 수돗물뿐일까’라는 등의 표어를 내세우고 있다. 바로 김 본부장의 ‘한 수’이다. 과연 그의 한 수가 향후 대여투쟁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일요서울이 알아봤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0.07.30. [뉴시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0.07.30. [뉴시스]


김종인, 직관성·선명성 강조 ‘동의’

미래통합당의 ‘구호 투쟁’의 전투력의 근원은 김수민 신임 홍보부장이다. 김 본부장은 과거 디자인벤처기업을 맡은 바 있는 데다 유명 과자 ‘허니버터칩’의 이름과 디자인 제작에도 관여한 인물로, 지난달 29일 홍보본부장에 임명되면서 정당 디자인 개선에 전격 착수,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여백이 있는 화면에 눈길이 가는 문구만 또렷하게 중앙에 박는 감각적인 디자인’이라고 소개했다. 이는 곧 통합당의 ‘구호 투쟁’이 어느 정도 관심을 끌었다고 해석되는 대목이다. 

김 본부장이 최근 한 언론을 통해 밝힌 이야기에서 통합당의 고민이 묻어난다. 그는 ▲ 통합당만의 언어가 없다 ▲ 좋은 이미지와 메시지가 당에 흡수되지 않는다 ▲ 당의 철학과 방향성이 희미하다 ▲ 연상되는 이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김 본부장에 따르면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이 같은 지적에 수긍했는데, 결국 ‘직관성’과 ‘선명성’이 부족했다는 점에 동의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구호 투쟁 전략의 추진 배경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아쉽다’고 느끼는 당내 의견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일요서울은 ‘무엇이 아쉬운지’에 대한 의견도 찾아봤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0.07.27. [뉴시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0.07.27. [뉴시스]


단기적 이슈 선점 성공, 그러나 장기적 비전 제시는...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만난 통합당 관계자는 일요서울에 “과거에 비해 적극적인 이슈 선점 능력은 확실히 올랐다고 볼 수는 있겠으나, 김 본부장이 언급했던 ‘연상되는 이미지의 부재’와 ‘당의 철학이 흡수되지 않는다’는 게 계속 문제화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특히, 그가 재차 지적한 부분은 바로 김 본부장의 발언인 ‘당의 철학과 방향성의 모호함’이라는 것이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당명에서부터 각종 토론회에서 자신들의 방향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며 “‘더불어’, ‘상생’, ‘함께’, ‘모두’, ‘다같이’, ‘사회적’이라는 용어에서부터 여당의 핵심 가치는 바로 ‘같이’임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김 본부장이 앞서 언급했던 고민인 ‘모호함’, 그리고 ‘정당 정체성’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에 대한 ‘당내 걱정’인 셈이다.

결국 ‘단기적인 이슈’에 대한 전취(戰取) 목적의 ‘구호 투쟁’은 어느 정도 성공한 모양새지만,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데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이다. 이를 종합하면 통합당의 ‘구호 투쟁’은 단기전(戰)에서 장기전(戰)으로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하지만 ‘구호 투쟁’도 첫술에 배부르랴. 지난 24일 김 본부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 이슈를 이야기할 게 아니라 폭넓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최근 문제가 된)부동산·수돗물 등으로 조금씩 좁혀 나가야 국민과의 공감대가 회복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김종인 비대위원장도 전격 수긍했다. 그렇다면 통합당의 ‘구호 투쟁’을 바라보는 전문가의 시각은 어떠할까.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를 마친 후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2020.07.29. [뉴시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를 마친 후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2020.07.29. [뉴시스]

 

巨與 ‘입법 독주’... 野 여론 호소 ‘유일’

명지대학교의 신율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29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최근 언론 보도에서 나오고 있는 미래통합당을 보면 백보드에 인상적인 ‘슬로건’이 보이는데, 당면 현안과 제대로 맞아떨어지게 되면 국민 입장에서 매우 공감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이날 “슬로건·캐치프레이즈 등 표어의 경우 작성자가 전달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압축해 전달하고자 함이다. 그래서 문구(phrase)를 잡았다(catch)라고 표현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실제로 최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실검)에는 ‘나라가 니꺼냐’, ‘조세저항 국민운동’, ‘김현미 장관 거짓말’ 등이 실검 순위에 등장했다. 심지어 지난 28일(오후 3시 기준)에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문재인을 파면한다’라는 문구가 무려 2위로 기록된 바 있다. 이는 부동산 대책 및 조세 정책에 불만을 품은 국민 일부가 벌이는 일종의 온라인 시위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구호 투쟁’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앞서 국회 운영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9일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퇴장 속에 ▲인사청문회법 일부개정안 ▲국회법 일부개정안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운영규칙 개정안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을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의결 처리했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이날 일요서울에 “거여(巨與) 단독 강행 상황에서 소수 야당의 국회 내 입지는 거의 보장되지 않는다. 결국 ‘구호 투쟁’ 등을 통해 여론에 간곡히 호소하는 방안 외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고 전했다.

한편 통합당의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는 여당의 입법 독주에 ‘장외투쟁’도 고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야당이 ‘구호 투쟁’에 이어 ‘장외 투쟁’을 불사하더라도, 이미 입법 독주 중인 거대 여당이 무엇이 아쉬워 야당을 불러들이려고 할까.
 

미래통합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등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미래통합당 회의실이 텅 비어있다. 2020.04.21.[뉴시스]
미래통합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등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미래통합당 회의실이 텅 비어있다. 2020.04.21.[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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