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남원북철(南轅北轍)’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수레의 긴 채는 남쪽으로 가고 바퀴는 북쪽으로 간다는 뜻으로, 전국시대 위나라 왕의 신하 계량이 천하를 제패하는 방법을 왕에게 건의하는 장면에서 유래한 고사다.

정부와 여당이 부동산 시장 안정을 명목으로 추진 중인 소위 “임대차 3법” 가운데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가 야당의 불참 속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미래통합당은 “국회를 통법부(通法府)로 전락시켰다.”고 강력히 비판했지만,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퇴장한 가운데 일사천리로 통과되었다.

개정안은 기존의 2년 계약이 끝나면 세입자가 추가로 2년 계약을 연장할 수 있도록 ‘2+2년’의 임대차 기간을 보장하고, 임대료 상승 폭은 직전 계약 임대료의 5% 범위 내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상한을 정하도록 했다. “임대차 3법” 가운데 나머지 하나인 ‘전월세신고제’도 곧 국회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정부와 여당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상가건물 임대차와 관련한 업무를 부동산 정책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법무부가 공동으로 관할하도록 ‘상가건물임대차위원회’를 법무부에 신설하되, 위원을 국토부 고위공무원으로 하는 내용을 담았다.

주택시장 안정과 서민의 권리 강화를 명분으로 공룡 여당이 법안 처리에 속도전을 강행한 것까지는 성공했다 치더라도 정작 문제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법이 통과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집주인들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집을 비워두거나 직접 들어가서 살겠다는 집주인이 늘어나다 보니 수도권에 때아닌 ‘전세 난민’이 속출하고 있다. 또한, 거래절벽이 현실화되어 서울의 7월 전세 거래량은 이미 절반으로 줄었고, 전세 가격은 57주 연속 상승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전세 수요가 강한 강남을 중심으로 월세와 반전세 전환 움직임도 분주한 상황이다. 

“임대차 3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4년 8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뛰었다. “임대차 3법”이 시행되기 전에 전세금을 올리려는 집주인의 문의가 폭주하고 있고, 계약만료일이 내년 초인 전세 물건까지 미리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신규 세입자를 찾는 주인들도 늘고 있다. 이 정도면 가히 “임대차 3법 통과의 역설(paradox)”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세 매물이 귀해지면서 거래량도 크게 줄었고, 반전세와 월세 물건조차 귀한 상황이 되자 세입자 부담은 날로 가중되고 있다. 서울은 물론이고 수도권과 지방 전체로 전세 대란이 번지다 보니, 임대차 3법 시행으로 임대차 시장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부동산 전문가도 늘고 있다.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본래의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정반대로 수레의 긴 채는 남쪽으로 가고 바퀴는 북쪽으로 굴러가는 ‘남원북철’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전세자금 대출은 집주인 동의가 필수인데, 재계약 시점에 전세자금 대출연장에 대한 동의를 거부하면 기존 세입자는 쫓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역설(paradox)이 ‘역공’ 내지 ‘반격’으로 돌변하는 상황이다. 집주인들은 임대차 3법 소급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을 적극 공유하고 있고, 이에 맞서 일부 세입자는 집을 나가는 조건으로 이사비 조로 ‘웃돈’을 요구하는 등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갈등이 폭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서울 전체 아파트 전세 매물량이 한 달 만에 7.5% 감소한 것에서 보듯이, 전세 대란은 현실이 되었다. 임대차 3법이 오히려 전세를 줄이고 월세살이를 늘리는 등 서민의 주거복지를 해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당장에 확인된 것이다. 충분한 논의와 준비 과정 없이 만든 엉성한 법안이 졸속 통과되면서 계층 갈등만 키우게 된 것이다. ‘집값 대란’도 ‘전세 대란’도 박근혜 이명박 정부 탓으로 돌리는 가운데, 대체 우리는 언제쯤이나 되어야 수레의 긴 채도 남쪽으로 가고 바퀴도 남쪽으로 굴러가는 올바른 정책을 만나게 될까?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