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날씨 정말 죽이게 덥네!”

현우는 운전대를 손으로 탁탁 치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에어컨 틀면 되잖아.” 은아가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기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에어컨을 틀면 어떡하냐?” 현우가 앞으로 길게 늘어선 차량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런 피서철 피크에 경포대로 간다고 따라나선 내가 바보지.”

은아가 투덜댔다. 오후 2시의 뜨거운 태양이 아스팔트의 열기와 합해져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바닷속에 뛰어들어야겠어.” “그래, 도착할 때까지 기름이나 떨어지지 않는다면 말이지.”

은아의 말에 현우가 한심한 어조로 대꾸했다. 둘은 이번 가을에 결혼을 약속한 사이로 약혼 여행이라는 명목 아래 경포대로 놀러 가는 중이었다.
경포대에 도착한 것은 밤 7시가 되어서였다. 아직도 기온이 30도가량이나 되는 무더운 때였지만 그 시간에 수영복을 갈아입고 바다로 나간다는 것이 황당한 것 같아 둘은 예약해 둔 콘도로 바로 향했다. “아이, 이게 뭐야? 온몸이 땀으로 쩔었어” 은아가 투덜댔다.

“그만해라, 그만해. 나도 7시간이나 운전하느라고 아주 죽겠다” 현우가 진이 다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세워봐.” 은아가 소리쳤다. “왜?”

“먹을 거랑 마실 건 사가야지.” 은아는 얼른 뛰어내려 맥주와 안줏거리를 사 왔다. “밥 먹을 건 안 사느냐?” “쌀이랑 반찬은 다 가져왔어.” 은아가 씽긋 눈짓했다. “잘했네. 아, 저기 주유소가 있다.” 현우는 차를 대고는 차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가?” “생리 때문에 그런다” 현우는 기름을 다 넣고도 시간이 좀 지나서야 돌아왔다. “아주 뱃속에 유조선을 넣고 다니는 모양이지?”

은아가 현우를 놀렸다. 현우는 아무 말 없이 차를 몰았다. 콘도에 도착하자마자 은아는 훌훌 옷을 벗고 욕탕으로 들어갔다.
“아이, 시원해” “시원해? 나도 들어갈까?”

“무슨 소리야! 들어왔단 봐라. 살아서 서울에 못 돌아갈 줄 알아”
‘곧 결혼할 건데 뭘 그렇게 빼?“ ”결혼할 때까지는 어림도 없으니까 국물도 삼키지 말아.“ 은아가 고함을 빽 질렀다.

“난 큰 방에서 잘 테니까 자기는 작은 방에서 자든지 소파에서 자든지 하라고.”
“어이구 알았습니다.” 현우는 웃으며 대답했다. 둘은 밥을 지어 먹고 맥주를 들이켜다가 그대로 쓰려져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은아가 보이지 않아 현우는 빙긋이 웃으며 안방 문을 벌컥 당겼다. 하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유, 정말 철저하구나. 은아야. 날 샜다. 일어나라.”

하지만 아무리 은아를 불러도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현우는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혀 허겁지겁 키를 찾았다. 하지만 자신이 받은 키는 현관 열쇠밖에 없었다. 그는 얼른 뛰어나가 관리 사무실로 갔다. 아직 사무실 문이 열려 있지 않아 그는 낙망을 해서 주저 않았다.

“무슨 일이오?” 사무실 창문이 비죽 열리며 수위가 얼굴을 내밀었다. 현우는 얼른 상황을 설명하고 수위와 함께 비상 키를 가지고 자신의 콘도로 왔다. 수위도 바짝 긴장하여 손을 덜덜 떨며 키를 꽂았다.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걸쇠로 잠가 놓았던 것이다.

은아는 목이 졸려 죽어 있었다. 현우는 낙망하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범인은 바캉스 여행자들을 노려서 빈집을 터는 좀도둑들인 것 같습니다. 범행을 하러 들어왔다가 젊은 아가씨가 혼자 있는 줄알고 겁탈을 하려다가 반항을 하자 실수로 살해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강 형사가 추 경감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수배자를 찾으러 강릉에 내려와 있다가 살인 사건이라는 말에 한 번 들러보러 이곳에 왔다.
“그런데 범인은 어디로 들어와서 어디로 나간 거지?” 추 경감이 물었다. “그야 창문으로 들어온 것 아니겠습니까? 이 콘도는 단층으로 지어져 있으니까요?”
“창문으로 들어올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나갈 수는 없을 거야.”

추 경감이 창틀을 살피며 말했다. “창문의 방충망을 보라고. 못이 안쪽에서 박혀 있단 말야. 그런데 이 못은 감방 새로 박은 거야. 못 자국이 그 옆에 하나 더 보이지?”

“그럼 범인이 창으로 들어왔다가 방충망을 다시 달았단 말입니까?”
“현재로써는 그렇지. 아마도 범인은 엉겁결에 살인을 저지르자 도망을 치려고 했겠지. 그러다가 마루에서 자는 현우라는 친구를 보고는 그한테 누명을 씌우려고 범행이 내부에서 일어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했던 것 같네.” “그럼 안방 문은 어떻게 잠그었을까요? 안방 문은 아래쪽으로 걸쇠를 걸게 되어 있던데요?”

“그건 아마 이게 해결해 줄 거야.” 추 경감이 문 앞에서 물에 젖은 종지 쪽을 집어 들었다. 종이쪽지 끝에는 스카치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이것하고 쇠지만 있으며 밀실을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강 형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어젯밤도 30도가 넘는 무더위였으니까요. 이 사람들은 술에 취해서 자느라고 에어 캔도 켜지 않았다고 했지요.”

 

퀴즈.  어떤 방법으로 범인은 밀실을 만들었을까요?

 

[답변 - 4단] 얼음을 걸쇠 고리에 걸쇠 사이에 끼워두고 문을 닫는다. 얼음이 녹으면 걸쇠는 저절로 잠기게 된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