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뱉고 보자…‘막말의 정치학’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막말’의 사전적 정의는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말함. 또는 그렇게 하는 말’이다. 막말 논란이 정치권 안팎에서 정국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10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에서 성추행 의혹에 관한 당 차원의 대응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노려보며 “XX자식 같으니”라고 발언해 막말 논란을 불렀다. 이어 야당에서도 막말 논란이 터져 나왔다. 정원석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은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열린 통합당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박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을 “서울시 ‘섹스 스캔들’ 은폐 의혹이다”라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0.07.10.[뉴시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0.07.10.[뉴시스]

 

- ‘조문 정국’아닌 ‘막말 정국’? 

비서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지난달 8일 사망했다. 박 전 시장의 비서 성추행 의혹 사건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선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와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달 10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 전 시장 조문을 마치고 나온 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는데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이 있는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건 예의가 아니다.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얘기라고 하냐. 최소한 가릴 게 있다”고 언성을 높였다. 이어 기자를 노려보다 “XX자식 같으니”라고 말해 막말 논란을 일으켰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TBS(교통방송)에서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박지희 아나운서는 지난달 14일 공개된 ‘청정구역 팟캐스트 202회’에 출연했다. 이 방송에서 그는 박 전 시장 성추행 고소 사건의 피해 여성을 향해 “(피해자)본인이 처음에 서울시장이라는 (박 전 시장의) 위치 때문에 신고하지 못했다고 얘기했다”며 “왜 그러면 그 당시에 신고를 하지 못했는지 저는 그것도 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4년 동안 그러면 대체 뭐를 하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김재련 변호사와 함께 세상에 나서게 된 건지도 너무 궁금하다”고 말해 ‘2차 가해’ 논란이 일었다. 

박 아나운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동형TV’에 출연해 “피해자를 비난할 의도로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발언을 했다는 것 자체는 사과드리며 산발적으로 퍼지는 보도로 피해 호소인이 상처를 또 받지 않았을까 걱정”이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피해 호소인’이라고 피해자를 지칭했다. 
결국 박 아나운서는 박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막말 논란 끝에 TBS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박 아나운서에 이어 YTN라디오 진행을 맡고 있는 이동형 씨도 지난달 15일 라이브로 방송된 유튜브 채널 이동형TV에서 피해자를 향해 “미투 사건은 과거 있었던 일을 말 못 해서 밝힌다는 취지로 신상을 드러내고 하는 것”이라며 “피고소인(박 전 서울시장)은 인생이 끝났는데 숨어서 뭐하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 씨는 “여자가 추행이라고 주장하면 다 추행이 되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4년씩 어떻게 참았는지도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게 이상한가”라고 주장해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여권 안팎에서 막말 논란이 쏟아지는 가운데 야당인 미래통합당에서도 막말 논란이 이어졌다. 정원석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은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열린 통합당 비상대책위 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정 위원은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해 “조문의 시각을 지나 이젠 심판의 시각이다. 우리는 두 가지 진실을 밝힐 때가 됐다. 첫째는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시 ‘섹스 스캔들’ 은폐 의혹이다”라고 말했다. 

정 위원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자신의 SNS에 “사전적 차원에서 ‘섹스 스캔들’(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성적인 문제와 관련된 사건)이라고 지칭한 부분에서 여성 피해자 입장에서 이를 가해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 역시 배려가 부족했음을 인정한다”며 “용어 선정에 있어서 피해장의 입장을 더욱 반영하는데 노력하겠다. 더욱 여성 피해장의 입장에서 생각하겠다”고 사과했지만 비난 여론이 잦아들지 않았다. 이에 통합당은 지난달 17일 정 비대위원에 대해 2개월간 비대위 활동 정지를 권고했다. 

 

정원석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차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0.06.01.[뉴시스]
정원석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차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0.06.01.[뉴시스]

 

정치권 관계자 “막말 정치적 효과 기대 이상”

정치권의 막말 논란은 여야를 막론해 어제 오늘 발생한 일은 아니다. 정치권 안팎에서 막말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막말이 가져오는 정치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막말을 뱉은 정치인은 언론과 대중에 주목을 받았다. 설사 정치인이 막말로 인해 부정적인 관심을 받더라도 막말 논란에 관해 이슈화된 기사와 그에 따른 대중의 반응들로 인지도와 존재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막말은 각 정치진영의 고정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될 때도 있다. 세고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해 상대진영을 비난하는 막말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같은 집단에선 ‘사이다 발언’이라며 지지 받기도 했다. 반면 반대 진영에선 막말로 지적 받으며 비난의 대상이 된다. 같은 발언을 놓고서도 각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이다 발언’과 ‘막말’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이런 막말의 정치적 효과에 대해 익명을 요청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정치권에서 막말을 하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의도치 않은 말실수가 나오거나 둘째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나타내기 위해 셋째 인지도를 올리는 수단으로 넷째 지지층 결집을 위한 노림수 등으로 쓰인다”며 “막말을 하는 정치권 인사들이 앞에서 지적한 목적과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뉴시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뉴시스]

 

당내 윤리규범 있지만…강제하기 어려워

정치권 밖에서 이뤄진 막말은 차치하더라도 정당 안에선 잘못된 언행으로 인한 사회적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여야를 막론해 당원에 대한 윤리규범을 만들어 규정해 놓고 있다. 
먼저 민주당의 윤리규범 제5조(품위유지) 6항에는 ‘당 소속 공직자와 당직자는 직무수행 시 고압적 언행을 하지 아니하고 상대방을 존중하여 예의와 신의를 지켜 응대한다’고 규정한다.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통합당의 윤리규칙 제4조(품위유지) 1항에도 ‘당원은 예의를 지키고 사리에 맞게 행동하여야 하며, 당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을 해서는 아니된다’고 했다. 

각 정당이 당원의 언행에 대한 윤리규범‧규칙을 규정함에도 불구하고 막말의 판단 기준과 잣대는 명확하지 않아 해석의 논란을 가지고 올 수 있다. 그리고 강제적으로 제재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지난달 30일 일요서울과 통화한 선관위 관계자는 “정당법에 근거한 막말에 대한 규정은 없으며 각 정당의 자율적 규제에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막말 논란은 정치권 스스로 자정하고 자제하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