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놓고 혼란에 빠진 통합당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행정수도 이전’ 주장에 미래통합당이 분열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민주당은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문과 부동산 정책 실패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가 흔들리는 시점에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내놨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3일 민주당의 행정수도 이전 주장에 대해 “부동산 대책이 수도권에서 전혀 성과를 못내 국민 원성이 높아지면서 지지율이 급락하니 급기야 수도를 세종시로 옮긴다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통합당의 일부 의원들은 ‘지역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워 행정수도 이전에 찬성하며 김 위원장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의 행정수도 이전 카드가 통합당 갈등에 불씨가 되고 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고심하고 있다. 2020.07.30.[뉴시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고심하고 있다. 2020.07.30.[뉴시스]

 

- 김종인 자제 요청에도…정진석‧장제원 “행정수도 이전 논의 지지”

충청권 및 영남 지역에 정치적 기반을 가진 미래통합당 의원 및 정치인들이 더불어민주당의 ‘행정수도 이전’ 주장에 동조하며 당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달 22일 미래통합당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구)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우리 당이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론을 왜 반대로 일관하고 일축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며 “통합당은 행정수도 완성론을 넘어 공공기관 대규모 지방 이전 등 논의를 민주당보다 더 강하게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의원에 이어 미래통합당 정진석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도 지난달 27일 SNS에 “수도 이전 논의를 회피하자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결정을 뒤로 미루는 것밖에 안 된다”며 “수도 이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무엇인지 조속히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통합당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병준 세종시당 위원장까지 행정수도 이전을 지지하고 나섰다. 

한편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통합당 원내외에서 나오는 행정수도 이전 지지의견에 관해 “신중하지 못한 자세”라며 자제를 촉구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도 지난달 23일 의원총회에서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당분간은 의견 표명을 자제해야 민주당의 의도에 넘어가지 않는다”며 김 위원장과 입장을 같이했다. 

이렇게 야당의 내부 갈등을 촉발시킨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16대 대통령 선거 기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선 기간인 지난 2002년 9월30일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중앙선대위 출범식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했다. 노 후보는 “한계에 부딪힌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 경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 청와대와 중앙부처를 옮기겠다”며 “수도권 집중과 비대화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국가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 2003년 2월 대통령으로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같은 해 3월에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을 공식 출범했다. 같은 해 12월엔 신행정수도특별법 등 국가균형 관련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신 행정수도 건설은 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제기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헌법재판소 재판부는 지난 2004년 특별법에 대해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관습헌법 위반”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헌법상 명문의 조항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왕조 이래 600년간 오랜 관습에 의해 형성된 관행이므로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참여정부는 지난 2005년 헌재의 위헌 판결에 대한 대책마련으로 다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특별법’을 만들어 국회와 헌재에서 통과시켜 행정수도가 아닌 행정도시로 낮춰 추진했다. 

 

장제원 미래통합당 법제사법위원회 의원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법안 전체회의에 참석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2020.02.26.[뉴시스]
장제원 미래통합당 법제사법위원회 의원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법안 전체회의에 참석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2020.02.26.[뉴시스]

 

전문가 “행정수도 이전 주장…與의 꼼수 여지 있어”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지난달 20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행정수도를 제대로 완성할 것을 제안한다. 국회, 청와대, 정부부처 모두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며 “그래야 서울‧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원내대표의 갑작스런 행정수도 이전 주장에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부동산 대책이 수도권에서 전혀 성과를 못 내고 지지율이 급락하니 급기야 수도를 세종시로 옮긴다고 한다”면서 “세종시를 만들어 그동안 수도권 인구과밀 등 아무것도 해소된 점 없는 게 오늘날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도 SNS에 “뜬금없는 행정수도 이전으로 봉창 두드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이 같은 민주당의 행정수도 이전 주장의 배경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4.15 총선 이후 계속된 민주당의 정치적 실수와 정부 정책의 실패를 덮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을 수단으로 삼았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인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문과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그린벨트 해제 논란으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시점에 행정수도 이전 주장이 나왔다는 비판이다.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는 지난달 30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행정수도 이전 정책의 명분과 필요성이 좋아도 민주당이 주장한 시기와 상황이 국면전환용 꼼수로 볼 수 있는 여지들이 많다”며 “행정수도 이전은 국토균형발전 이라는 백년대계를 결정할 사안인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진석 미래통합당 의원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장 중진의원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0.06.10.[뉴시스]
정진석 미래통합당 의원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장 중진의원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0.06.10.[뉴시스]

 

행정수도 반대하자니…野 ‘충청 표심 놓칠라’

민주당이 띄운 행정수도 이전 주장이 모든 정국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앞서 지적한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들의 성추문과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논란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행정수도 이전의 이면에 2022년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지난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세워 충청권 표심을 등에 업고 승리했다. 민주당은 16대 대선 때와 같이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의제를 가지고 충청권을 비롯한 영‧호남 표심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통합당의 권영진 대구 시장은 “야당의 행정수도 이전은 부동산 실정을 감추기 위한 꼼수가 맞다. 그러나 꼼수라고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 우연이 필연이 되듯 꼼수가 묘수가 될 수도 있다”며 “호남권을 문화수도로, 부울경은 금융수도로, TK(대구‧경북)를 사법수도로, 강원을 관광수도로 만들어 국가기관을 분산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충청 및 영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통합당 소속 정치인들도 민주당의 행정수도 이전 주장의 의도는 비판했지만 자신들 지역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리는 측면에선 찬성하고 있다. 

민주당이 던진 행정수도 이전 카드가 미치는 파급이 정국을 혼란스럽게 뒤덮고 있다. 통합당도 그 혼란을 피하지 못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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