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서 허겁지겁 통과시켰는데…신청 기업 한 곳도 없어

LCC가 위기에 처했으나 항공업, 조선, 해운 등을 위해 마련됐다는 기안기금의 지원을 누구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안기금의 신청자는 만 2개월이 지나도록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창환 기자]
LCC가 위기에 처했으나 항공업, 조선, 해운 등을 위해 마련됐다는 기안기금의 지원을 누구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안기금의 신청자는 만 2개월이 지나도록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지난 5월28일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산업은행 등을 주축으로 국민경제와 고용안정 등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을 대상으로 여건에 맞는 방식(대출, 자산매수, 채무보증, 주식 관련 사채 인수 등)을 적극 활용해 적재적소에 지원하겠다며 마련된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이 아직 한 곳도 수혜자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항공, 조선, 해운 등을 중심으로 국내 주요 50여 개 산업 분야에 투입할 수 있도록 적극 활용하겠다며 4월29일 20대 국회 말미에 다급하게 통과시켰으나 당시의 조급함은 사라졌다. 기간산업안정기금운용심의회(기안기금심의회)는 여유롭다. 오히려 신청 기업과 심사 대상 기업들을 기다리고 있다. 인수 문제로 갈등을 겪어온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을 포함해 저가항공사(LCC) 등 항공업 한쪽에서는 붕괴가 일어나도 외면하고, 기안기금이 첫 수혜자로 지목했던 대항항공은 자체적으로 위기를 타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 그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위원회, “기안기금 지원 대상 조건 완화 계획 ‘전혀’ 없다”
산업은행, “기안기금은 2차 방어선, 다양한 지원책 남아 있어”

국내 기간산업들이 코로나19 관련 경영상 위기에 직면하면서 급하게 마련된 기안기금이 어쩌면 실패를 코앞에 두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산업은행은 각 산업에 대한 다양한 지원 방안이 여전히 있고, 자금도 남아 있어서 기안기금으로 마련된 40조 원을 당장 풀어서 지원에 나서야 할 만큼 여건이 어렵지 않다고 보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기안기금의 여건에 충족되지 못하더라도 정부나 금융기관의 다양한 지원 방안이 조성돼 있기 때문에 기안기금 지원 대상의 조건 완화는 논의조차 없을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드러냈다. 

제주항공이 지난달 23일 이스타항공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 상반기 동안 기업 운영조차 하지 못했던 이스타항공은 경영 상황이 더욱 악화돼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스타항공이 파산 수순을 진행하면서 약 1600명의 직원들이 대량으로 실직 당하는 사태에 놓였다고 풀이하고 있다. 

제주항공은 “인수 강행을 위해서 짊어져야 할 (이스타항공 관련) 불확실성이 너무 컸다”며 “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스타항공 인수 이후 피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고 경영권인수를 포기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지금은 제주항공 역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지고 있다. 

저가항공사들 사이에서는 추석이 다가오기 전 대량 실직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정부가 마련했던 고용유지지원금의 6개월 만료 시기가 다가오고 있어서다. 고용유지지원금은 매출액 및 생산량 감소 등으로 고용조정이 불가피한 사업주가 휴업이나 휴직 등의 고용유지 조치를 하면서 근로자를 계속 고용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책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종료일을 맞게 되는 티웨이항공은 무급 휴직 전환을 준비 중이다. 지난달 27일부터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티웨이항공 소속 직원들은 총 2300여 명에 이른다. 제주항공과 진에어는 8월, 에어부산은 오는 9월 지원 기한 만료를 앞두고 있다. 

고사 위기 저가항공사, 기안기금 대상 안 돼

이에 각 저가항공사 대표들로 구성된 LCC대표단은 송옥주 국회 환경노동위원장과 면담을 갖고 지원금 연장 등의 방책 마련을 강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고용노동부에 특별고용지원업종 기간 연장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원금 지원 기간이 종료됨과 동시에 항공사들이 정리해고나 희망퇴직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 이런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밖에 기댈 곳이 없다. 

LCC들이 단체로 고사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관련 금융당국에서는 대한항공 이후 아시아나항공 지원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9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에 대해 의문을 품으며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무산될 경우 기간산업안정기금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시간을 무한정 끌 수는 없어 HDC현산이 인수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다른 안을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초까지만 하더라도 금융위나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의 기안기금 지원에 대한 질의에는 조심스럽게 답변했던 것과는 상반되는 반응이라는 것이 업계의 해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산업은행과 금호산업 그리고 HDC현대산업개발 사이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두고 이견이 팽팽해지면서 신경전이 절정에 이르렀다”며 “우려하던 인수 실패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말했다.  

HDC현산은 지난달 30일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 ‘성공적 거래 종결을 위한 8월중 재실사 개시 촉구’라는 입장문을 내고 “금호아시아나 측의 일방적 거래종결 절차 강행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계약해지 명분 쌓기가 아닌 동반부실 및 과다한 혈세 투입 방지를 위한 재실사를 요구한다”고 전했다. 또한 재실사에 채권단이 참관하거나 공동실사를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HDC현산의 재실사 요구에 반박하며,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와 함께 은 위원장의 아시아나항공 기안기금 지원 이야기가 나오면서 아시아나항공 매각 실패에 대한 전망이 업계 일각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우선 기안기금에 대해 요건을 완화할 계획이 전혀 없다”면서 “코로나19 이전부터 구조적 어려움에 처한 기업에 대해서는 별도의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일본과 중화권 국가 및 동남아 등을 중심으로 근거리 해외 노선을 주로 운영해온 저가항공사들의 경우, 지난해 7월부터 일본의 반도체 관련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의 한국 배제 등으로 일본불매 운동의 여파로 일본 노선을 대부분 축소했고, 연이어 홍콩사태와 맞물리면서 홍콩 노선도 축소돼 하반기 내내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에 올 초 노선 증가 및 중거리 노선 확대 등의 자구안을 마련하고 나섰으나, 지난 2월부터 코로나19의 타격을 맞으며 현재에 이르렀다. LCC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코로나19의 직접적인 피해기업이라고 단정하며 지원 대상 기업의 조건을 까다롭게 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기업들은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이렇게 어려움에 처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기안기금심의위가 구성된 지 만 2개월이 지났지만 현재까지 신청 기업이나 의뢰 또는 문의해 온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산업은행은 “기안기금은 2차 방어선”이라며 “아직 다양한 지원책 남아 있다”고 전했다. 
  
이창환 기자
shin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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