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신수정 기자] 집중호우로 지난 3일 가평 산유리의 한 펜션에서 주인 일가족 3명을 숨지게 한 산사태 사고가 발생했다. 일각에선 무분별한 산지 허가의 폐해라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가평 펜션 매몰 사고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4일 오후 사고 현장을 찾았다. 기자는 현장에서 만난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와 동행하며 산사태 발생 경위 파악에 나섰다.

가평 펜션의 산사태 발생지점 및 암벽 등 지반구조를 표기한 사진. [사진=카카오 지도 위성뷰 캡쳐]
가평 펜션의 산사태 발생지점 및 암벽 등 지반구조를 표기한 사진. [사진=카카오 지도 위성뷰 캡쳐]

“안전할 줄 알았다”
산 아래 숨어있던 40°의 경사진 암반


산사태 발생 시작점에서 경사각 40~45°로 추정되는 암반을 공통으로 발견한 이 전 교수는 비교적 완만한 산지 표면 아래 숨겨진 경사진 암반을 이번 산사태의 핵심으로 진단 내렸다.

또한 경사가 가파른 암반 위로 1m 정도 토지가 덮인 걸로 보아 빗물에 약해진 지반이 암반 경사를 타고 힘없이 떠밀려 내려왔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전 교수는 “지질학적 특성을 고려해 옹벽 설치로 보완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어디도 옹벽이 설치됐던 흔적이나 무너진 옹벽의 잔해물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전 교수는 옹벽이 설치되지 않았거나 설치했더라도 미미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산지개발 제도 개선 필요

산림청 임업정보서비스 시스템에 해당 지역의 지표면 경사도는 10~15°로 현행 산지관리법상 허용되는 경사도 25°에서 벗어나지 않는 수치다. 암반 경사가 40~45°나 되는데 산림청 산사태정보시스템에선 산사태 위험지역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전 교수는 “산지에 건물을 지을 때는 내부 암석의 경사도가 지표면의 경사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행 산지관리법 시행령에서 허용하는 경사도는 지표면 경사를 기준으로 삼고 있어 내부 암석 경사도 같은 지반 구조는 규제 대상에 반영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현장 점검, 위험요소 규제 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준공과정을 점검하는 등 현장점검이 부실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지난 5일 가평군청 관계자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시공 승인은 사업자, 시공업체를 확인 후 지형이 적정한지 등을 검토한다. 승인 이후 정확한 준공과정은 군청에서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4일 오후 3시 경기도 가평 산유리 지역의 산사태 발생 시작점에서 바라본 사고현장. [사진=신수정 기자]
4일 오후 3시 경기도 가평 산유리 지역의 산사태 발생 시작점에서 바라본 사고현장 [사진=신수정 기자]

레드오션 된 가평 숙박업 
후발주자는 위험지역에...


“7~8년 전쯤 가평에 펜션업이 몰리다 보니 현재 평지는 이미 다른 펜션들이 어느 정도 차지한 상태에요. 그렇다 보니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산 중턱이나 경사진 지역으로 펜션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더라고요.”

가평 주민 B씨의 말에 따르면 레드오션이 되어가는 가평 내 숙박업계에서 후발주자들은 알면서도 위험한 지역에 펜션을 짓고 들어선다. 준공 시작부터 대로변에 위치한 업소들보다 산사태 위험요소를 떠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산 중턱에 위치한 해당 펜션은 2018년 7월 23일 가평군청에 건축‧토지공사 인허가를 받아 시공해 2019년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주민이 가평 숙박업의 성행 기간이라고 주장한 7~8년 전에 비하면 최근에 들어선 펜션인 것.

뿐만 아니라 주민 B씨에 의하면 비교적 위험지역에 들어서야 하는 숙박업 후발주자들 중엔 인건비를 아끼려고 건설사나 인부를 끼지 않고 자가시공으로 해결하는 펜션들도 생겨나고 있다다. 하지만 건축·토목 분야에 전문가급 수준이 아니라면 개인에 의한 시공은 자칫 부실시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숙박업 신고했어도 산사태 위험요소 다분 
미신고 업소들은 어떻게?

4일 여러 언론을 통해 펜션 뒤 경사진 암반이 산사태 원인으로 밝혀지자 일부에선 가평 내 다른 펜션들에 대해서도 산사태 위험요소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숙박업을 신고했던 펜션조차도 숨겨져있던 산사태 위험요소를 파악하지 못했는데 미신고 업체들까지 생각하면 가려진 위험요소가 더 많을 것이란 주장이다.

주민 B씨에 의하면 가평에 들어선 많은 펜션들이 숙박시설로 신고한 곳인지 아닌지 주민들조차 모른다. 실제 가평군청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20년 6월 기준 가평군 전체 농어촌민박은 1178개, 숙박업소는 318개로 총 1496개의 업소가 숙박업을 신고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네이버로 ‘가평 펜션’을 검색하면 1892건이 검색된다. 펜션 5곳 중 1곳(21%)은 숙박업 미신고 운영 펜션인 셈이다. 

불법으로 펜션을 짓고 운영한 업소들의 경우 군청의 관리·감독에서 벗어나 있어 최소한의 산사태 위험요소 안전점검도 보장할 수 없다. 따로 사설 점검을 거친 게 아니라면 숨겨진 산사태 위험요소를 더 가지고 있다고 예측된다. 적지 않은 미신고 업체들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이유다. 경기도와 지자체가 나서 숙박업 미신고 업체 적발 및 산사태 위험요소 안전점검 제도 개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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