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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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벌이고 있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소송전이 글로벌 완성차 업체 간 대리 공방전으로 확대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의 포드와 독일의 폴크스바겐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소송 결과에 따라 미국 내 전기차 생산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미 당국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한 LG화학이 지난해 2월 조기 승소한 가운데 오는 10월 최종 판결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되는 이해관계자들이 입장을 밝히고 나선 것이다.

 포드·폴크스바겐은 "SK이노 배터리 공급 못 받으면 전기차 생산 차질"
 GM·오하이오주는 "불공정 시정 안 되면 LG화학 투자 위축"

지난해 4월 LG화학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이하 ITC)와 델라웨어 연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이 2차 전지와 관련된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소를 제기했다. 이후 두 회사는 ITC 소송 및 연방법원 소송을 각각 한번씩 주고 받으며 미국 내에서만 총 6개의 소를 진행중이다.

이와 별개로 국내에서도 명예훼손 소송부터 경찰고소까지 이어지고 있다. 1년 가까이 난타전이 진행중이며 지난 2월 ITC가 LG화학이 요청한 조기패소 판결(Default Judgement)를 승인하면서 LG화학이 승기를 잡으면서 일단락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미국 ITC가 지난 4월 SK이노베이션이 제기한 배터리 소송 재검토 요청을 받아들여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결정된 조기패소 판결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밝혔다.

오는 10월 초 최종판결을 앞두고 ITC는 양측에 ▲파괴된 증거가 무엇이었는지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영업비밀을 사용해 어떤 결과가 야기됐는지 ▲그로 인해 LG화학은 어떤 경제적인 피해를 얼마나 입었는지 등에대한 답변을 요청했다.

특히 이날 ITC가 공중보건·복지와 미국 경제의 경쟁 조건, 미국 소비자 등과 관련한 '공익(public interest)'을 고려해 판단할 것이라고 밝힌 점이 주목된다. 이를 위해 ITC는 양측에 관련 서면도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우려 목소리 내는 글로벌 완성차社

이런 상황 속에서 SK이노베이션 쪽의 지원 군으로 포드와 폴크스바겐의 2차례의 걸친 탄원서가 눈에 띈다

자동차 업체가 부품업체를 위해 ITC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사례도 매우 드문 상황 에서 포드는 72페이지에 걸쳐 이번 소송으로 인해 자칫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배터리 공장인 조지아 공장에 문제가 생길 경우 포드는 물론 지역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상세하게 정리해서 제출했다.

포드 측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생산공정에 적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수입 금지 결정이 내려지면 자사 공장뿐 아니라 부품 공급처와 자동차 딜러 등 관련 종사자들의 일자리가 위험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폴크스바겐은 SK이노베이션이 규정을 위반했더라도 조지아주에서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ITC에 요청하기까지 했다.

이와 달리 LG화학과 전기차 배터리 합작사를 건설하는 GM과, 합작공장이 들어설 오하이오주는 LG화학을 지원하고 나섰다.

마이크 드와인 오하이오주 주지사는 5월 ITC에 의견서를 내고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지적 재산권을 훔쳤다"며 "이 불공정을 시정하지 않으면 미국에서 일자리를 최소 1천100개 이상 창출할 LG화학의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고 밝혔다.

GM 역시 4월 제출한 의견서에서 "지적재산·영업비밀이 철저히 보호돼야 한다"며 LG화학 편을 들었다.

LG화학도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주 공장 건설 현장 취업을 목적으로 불법 입국하려던 한국인 30여명이 미 당국에 적발돼 추방당한 사실과 배터리 소송 관련 증거 인멸 정황 등을 거론하며 SK이노베이션의 신뢰성을 지적하는 의견서를 최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쪽 이겨도 국익은 손해될 듯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완성차 업체들의 의견서 제출에 대해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양사는 "소송 절차에 충실히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 양사가 진행중인 소송과 관련해서는 LG화학은 지난달 31일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을 통해  "전지사업은 기술 가치가 사업의 가치라고 할 수 있을만큼 매우 중요하다"며 "이런 영업비밀 침해 행위는 회사가치를 해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소송은 ITC에서 조기패소 예비판결이 나왔는데, 최종판결은 예비판결과 동일하게 나오는 기조"라며 "이런 판결 전에 양사가 합의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LG화학 측은 "다만 이는 객관적인 인식을 토대로 쌍방이 합의해야 가능하다"며 "성실한 자세로 대화에 임하고 있고 조속히 원만하게 협상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소송을 당한 입장이기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측에서 피해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면 손해배상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다만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SK이노베이션이 그 피해액을 산정하라는 LG의 주장에 대해서는 피해를 입증할 책임은 피해를 입었다는 소송 제기자에게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편 국내 업체 관계자들은 어느쪽이 이겨도 한쪽 기업과 또 그 기업을 거래하던 완성차 업체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일각에서는 한국 자동차 배터리업계가 자중지란으로 일본이나 중국에 시장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두 기업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지말고 정부가 조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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