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땅에서 보낸 열흘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북한인권국제연대 문국한 대표는 ‘장길수 가족’ 탈북을 주도한 주인공이다. 문 대표는 지난 1999년 문구 사업을 위해 중국에 진출했다가 알게 된 조선족 여성을 통해 길수 가족과 친척을 소개 받았다. 당시 15명이나 되는 길수 가족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북한을 탈출했다. 문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요서울과의 만남에서 “20년째 북한인권운동을 해 왔지만 북한의 인권상황과 중국에서 떠도는 탈북자 인권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2000년 문 대표는 길수 군이 경험한 북한의 인권 실태를 글과 그림으로 알리기 위해 ‘눈물로 그린 무지개’라는 책을 출판했다. 현재 책은 절판됐다. 그 첫 번째 이야기다.

 

길수 그림[문학수첩]
길수 그림[문학수첩]

 

장길수 – 16세. 함경북도 화대군 출생.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아버지와 군대에 간 형님을 남겨 둔 채 어머니와 작은형 등 일가족 3명이 탈북, 그후 두 번에 걸쳐 가족을 구하려고 두만강을 건넜다. 

 

-두만강을 건너 다시 북으로

장마가 한창이던 1999년 8월 어느 날. 나는 다시는 들어가지 않으려던 굳은 결심을 허물며 두만강을 또다시 건너 북한으로 향해야 했다. 이종사촌 민국 형과 함께였다. 두만강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왠지 무섭고 소름이 끼쳤다. 마치 마귀 소굴에 들어가는 듯싶었다. 

‘모든 것을 참자.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날 줄 몰랐다. 그것은 북한에서 굶고 있을 아버지를 돕고 중국에서 강제 송환되어 잡혀간 이모를 구출하기 위해서였다. 함께 간 이종사촌 민국 형은 조선 돈 1만 원 정도만 있으면 북한으로 송환된 어머니(나의 이모)를 구할 수 있다는 말에, 중국에 있는 이모부가 여기저기서 끌어온 중국 돈 600원(북한 돈 1만2천 원)을 가져갔다. 

우리가 중국 쪽 두만강 유역에 도착하니, 며칠 전에 내린 비로 물이 많이 불어 있었다. 강물은 시커멓고 물살도 셌다. 우리는 옷을 벗어 목에 걸고 속옷만 입고 강물에 들어섰다. 처음에는 물이 허리에 오더니 강 중간쯤 이르러서는 허리를 지나 목까지 차올랐다. 물살이 너무 세어 우리는 그만 물 속에 빠지고 말았다. 목에 걸었던 옷도 다 젖어버렸다. 

북한의 강기슭에 도착한 순간, 나는 물에 젖은 옷을 급히 짜 입었다. 그리고 전부터 알고 있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리가 목표로 삼은 집에 거의 도달했을 때였다. 골목 저쪽에서 민간인 복장을 한 두 젊은이가 다가오더니 우리를 좀 보자고 했다. 민국 형은 급히 가지고 있던 중국 돈을 강냉이밭 옆 숲속에 던졌다. 나도 재빨리 달러 한 장을 입 속에 넣었다. 그들은 도 안전국 안전원들이었다. 어디로 가냐는 그들의 질문에 나는 아는 집의 아이 이름을 알려줬다. 그들은 내가 알려준 집으로 같이 가보자고 했다. 그러나 막상 그 집에서는 우리를 모른다고 말했다. 할 수 없이 잘 아는 집 주소를 또 알려줬다. 그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모른다고 했다. 내가 한 말이 모두 거짓말이 되자, 그들은 우리를 끌고 역 쪽으로 갔다.

역에는 군인들이 철길 보수를 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소대 정치 지도원이 나타났다. 그러자 안전원들은 그에게 ‘중국 비공식 방문단’이라고 우리를 소개했다. 지도원은 우리에게 ‘중국에 언제 몇 번이나 갔는지 가서 무엇을 먹었는지’ 물었다. 나는 중국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다고 거짓말 했다. 그저 친척 집에 식량 얻으러 배낭을 지고 나왔을 뿐이라고 하면서, 두만강에서 목욕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둘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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