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1. 2016년 6월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은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투표 결과 보수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노동당이 공식적으로 추진하던 EU 잔류에, 노동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보수당이 공식적으로 추진하던 탈퇴에 투표, 기존 지지정당의 공식 입장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2. 2016년 미국 대선. 전 세계 공적이 되고 있는 공화당 후보 트럼프가 힐러리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 결정적 원인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던 러스트벨트(대표적 공업지역인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 및 백인 블루칼라(노동자계층) 계층 이탈을 자초한 게 뼈아픈 실책이 되었다.

#3. 2017년 5월 프랑스 역대 최연소이자 역대 3번째 높은 지지율로 당선된 25대 에마뉘엘 장미셸 프레데리크 마크롱 대통령. 기성정치에 염증을 내던 대도시 시민, 고학력자, 고소득층과 중산층, 30대와 40대 그리고 기존 사회당 전통적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선에서 승리했다. 

#4. 2018년 1월.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팀 단일팀으로 불거진 평창겨울올림픽 논란으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20대 긍정평가는 1월2주 조사(9~11일) 81%에서 4주차에서 7%포인트 하락해 68%를 기록했다. 50대는 월2주 66%에서 59%로 떨어졌다.

#5. 2019년 9월. 한국갤럽 조사 기준 50%에 육박하던 문 대통령 지지율은 ‘조국 사태’가 절정이던 9월 셋째 주 취임 후 최저치인 40%를 기록했다. 20대 지지율은 한달 사이 30%포인트가 빠졌다. 전통적인 여권 지지층인 30대는 14%포인트, 광주. 전라에서 9%포인트 빠졌다.

#6. 2020년 6월. 인국공 사태 관련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20대에서 ‘정규직 전환을 보류해야 한다’는 응답이 55.9%로 전체 연령층 중에서 반대 비율이 가장 높았다. 

#7. 220년 8월. 부동산 폭주 이후 알앤써치 8월 첫째 주 정례조사에서 부정평가는 전주(52.9%) 대비 3%p 상승한 55.9%로 집계됐다. 연령별 부정평가는 전주보다 18세 이상 20대는 4.2%, 30대는 6.6%p, 50대 8.9%p 올랐다. 위에서 보듯이 이미 세계는 새로운 정치 환경, 유권자의 선택의 변화가 오고 있다. 아니 우리는 이미 예전과 다른 새로운 정치, 정치 노마드 시대 한 가운데 서 있다. 유권자의 지지방식이 특정 정당이나 이념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각에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정당과 후보, 정책을 지지하고 선택(투표)한다. 

당헌당규와 정강정책을 지지하고 동의하는 당원들이 모여 중앙당과 지역 조직을 구성하고 공직선거 때마다 후보를 내세워 경쟁하던 정당정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대신 정치인과 정책을 중심으로 뭉치고 흩어지는 새로운 정치노마드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노마드는 알다시피 목초를 찾아 옮겨 다니는 유목민을 뜻하는 것으로 지금은 휴대전화, 노트북, PDA 등과 같은 첨단 디지털 장비를 갖고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인터넷에 접속하여 필요한 정보를 찾고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사람들, 세대를 가리킨다. 또한 단지 공간적인 이동만이 아니라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정치권에서도 1990년대 초부터 인터넷정당이 제기됐고 2002년에는 유시민, 명계남, 문성근 등과 친(親) 노무현 성향의 정치 세력이 인터넷정당을 표방하고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2018년 정병국 전 의원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노마드 정치를 표방하는 등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정치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대부분 공천을 매개로 한 기성 정당의 기득권에 막혀 제대로 공론화도 없이 '미래의 꿈'으로 끝났다.

그러나 정치권이 인터넷 홈페이지와 네트워크, 인터넷투표, SNS를 기존 정당의 보조수단으로 치부하는 동안 유권자들은 이동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정치노마드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특정 명망가에 대한 무비판적이고 몰개성적이며, 때로는 극도의 공격성으로 같은 당 소속 정치인도 사정없이 퇴출시키는 ‘팬덤’(열성 지지) 문화는 부작용이지만 정치노마드 시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마드정치와 정치노마드의 차이는 무엇일까. 노마드정치가 풀을 찾아 떠도는 유목민을 찾아가는 정치라면, 정치노마드는 정당. 정치인 자체가 노마드, 유목민이 되는 것이다. 즉 노마드정치가 유권자를 뒤쫓는 정치라면 정치노마드는 유권자와 일행이 되는 정치다.

정치노마드 시대는 아이돌 스타 팬클럽이 그 연예인의 소속 기획사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특정 정당이나 이념에 소속되어 맹신하는 '충성 어린 정당인' 은 사라지고 정당이나 이념에 관계없이 자신의 취향이나 선호에 따라, 특정 현안에 대해 공감하는 정치인을 지지하고 선택하는 시대인 것이다. 정치노마드 시대는 곧 무(無)정당 시대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달 안에 4·15 총선백서 출간과 정강·10대 정책, 당명 교체 등 쇄신작업을 마무리하고 새롭게 나아가겠다고 한다. 김종인 위원장의 '새로운 정당-새로운 정치 프로젝트'가 노마드 시대의 유권자를 담아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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