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는 아침부터 심하게 기침을 했다. 영우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둘은 결혼한 지 3개월이 채 안 되는 신혼부부였다.
“감기지? 너무 건조해서 그래.”

그들이 사는 아파트가 건조한 것은 사실이었다. 빨래들이 흥건히 젖어 있어도 반나절이 지나기 전에 쉬 말라버렸다.

“아파트 생활에는 그저 가습기가 필수적이야.” 영우는 다짐하듯이 말하고 약 지어 먹으라고 당부를 하고는 집을 나섰다. 사실 집을 나와야 그가 딱히 갈 곳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르포라이터로 여러 잡지에 글을 쓰고 있는데 최근에는 마땅한 일거리가 없는 형편이었다. 뭔가 큰 건을 하나 터트려야 할 텐데.

그는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주먹을 쥐어본다. 그가 마침 들른 시사 잡지사에서 연말이라며 그동안 밀린 원고료가 나와 영우의 어깨를 펴주었다. 그가 거기에 연재했던 것은 세계의 화생방전이라는 기사였다.

최초의 화생방전이라 일컬어지는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전투로부터 일본 관동군 급수부의 731부대, 월남전의 고엽제, 북한의 생물학 병기들에 이르기까지 심층 취재한 것으로 그는 연재를 위해 세계 각 국의 방독면까지 구했었다.

그만큼 들어간 돈도 많았지만, 원고료도 엄청났고 덕분에 원고료가 찔끔거리며 나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영우는 그 돈으로 낼름 가습기를 샀다. 집에 갔을 때 아내는 옆집의 중년 부인과 함께 있었다. 시간이 아직도 이른 오후 4시라 그가 이렇게 일찍 들어올지 몰랐던 은희가 놀라 몸을 일으켰다. “어, 안녕하십니까?” 영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인사를 했다.

“감기 걸렸으면 약 먹고 쉴 것이지, 웬 수다야?” 영우는 아내에게 핀잔 주듯이 말하며 가습기를 내밀었다. “아유, 새댁, 이게 뭐야? 역시 젊은 신랑이 좋구만. 감기만 걸렸다 해도 이렇게 신경을 써주니. 그저 우리 늙은 영감쟁이는…….”

옆집 아주머니는 가습기를 설치하는 것까지 다 지켜보고 동작하는 것도 살펴보고는 좋구나! 소리를 연발하다가 저녁까지 얻어먹고 돌아갔다. “웬 돈이 생겨서 가습기를 샀어요?”

은희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원고료지 뭐. 도둑질했을까 봐? 왜, 싫어?”
“싫긴요.” 은희가 교태를 부리며 영우의 품에 안겼다. “왜 이래? 몸도 안 좋으면서.”

영우는 은희를 밀어놓으며 가습기의 위치를 조정해 수분이 그녀의 얼굴에 떨어지도록 맞추었다. “싫어? 왜 그래?” 은희가 도리질을 쳤다. “건조해서 그러니까 오늘은 좀 참아. 약 먹었지?”

은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잠시 후 약 기운에 세상 모르고 잠이 들었다. 영우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불을 챙겨주고 자신도 자리에 들었다.

“믿어주십시오. 그게 답니다.” 영우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강 형사를 바라보았다. 다음 날 아침 은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경찰은 당연히 영우를 범인으로 추정했다. 영우는 일정한 직업도 없는 룸펜이나 마찬가지였으며 은희는 상당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졸지에 홀아비가 되었다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기는 하지만 저 사람이 범인임이 틀림없어. 강 형사는 자기 생각을 다시 곱씹었다. “글쎄, 아니에요. 그 약이 문제가 있었던 거라고요.”

영우는 계속 감기약을 걸고넘어졌다. “은희는 약물 중독으로 죽은 겁니다. 범인은 약사라고요. 왜 엉뚱한 사람을 이렇게 고생을 시킵니까?”

그런데 그의 부정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나타나 강 형사를 당황하게 했다. 사체 부검 결과 은희는 CY-100 이라는 독극물에 의해 죽은 것으로 밝혀졌는데 은희가 먹은 약봉지에서 그 약 성분이 발견된 것이다. “CY-100이라는 약이 대체 뭐야?”

추 경감이 강 형사에게 물었다. “전에 들은 적이 있는데 화학전에 사용되는 약 이름이랍니다. 혈액을 굳게 만들어서 죽게 만드는 약이라고 하던데요.”
“그런 게 왜 약국에 있어?” “약국에 있을 턱이 있나요. 저 녀석이 집어넣은 거에요.”

“그건 그렇지 않아. 그날 저녁을 같이 먹은 옆 아파트의 주민 말로는 약을 먹는 것을 자신이 직접 보았다고 했어. 자기가 봉지를 뜯고 약을 헤아려보며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댔기 때문에 잘 안다고 하더군. 그중에 녹색 캡슐이 처음 보는 거라 수상하더란 이야기까지 했지.”

“그 녹색 캡슐이 뭐였나요?” “뭐긴 뭐야. 해열제지.”
추 경감은 지포 라이터를 꺼내 철컥거렸다. “약사는 자기가 약을 져 놓은 약의 품목을 정확하게 갖고 있어. 그건 아직 개봉되지 않은 약봉지 속의 약과 같더라고. 어떻게 한 봉지에만 독극물이 들어갈 수 있었겠느냐고 항변하더군. 일리가 있는 말이지. 더구나 그런 약국에는 있지도 않은 거라고 하더군.”

추 경감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그런데 CY-100 이라는 약은 수용성이라고 하더란 말이야. 물에 녹여서 공기를 통해 뿌리는 약으로 호흡기에 작용하게 되다고 하지.”

“아니, 반장님, 그런 걸 어떻게 다 아십니까?”
“허허허, 한영우가 쓴 기사를 읽었어. 그 친구, 그 계통에 빠삭하던데 그래.”
“그럼, 범행 수법도 뻔한 것 아닙니까?”
강 형사가 빙그레 웃으며 일어났다.
 

퀴즈. 영우는 어떻게 은희를 죽인 것일까요?

 

[답변 - 4단] 한영우는 가습기 속에 수용성 독을 넣었다. 독은 물에 용해되어 뿜어져 나와 은희를 죽게 하였다. 그동안 영우는 방독면을 쓴 채로 누워 있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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