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좌진은 두 부류로 나뉜다. 국회의원 배지 달겠다는 야심이 있는 보좌진, 월급쟁이 생활에 만족하는 보좌진. 기억하기로는 18대 국회 때까지만 해도 보좌진은 예비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석, 박사나 변호사 등의 고급인력들이 유입되면서 보좌진이 나름 전문직업군으로 대우 받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보좌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본회의장에서 의원 선서를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선서하는 날에 나도 그 옛날 유시민 의원처럼 빽바지를 입고 해 볼까? 재탕은 재미가 없으니 하와이안 셔츠에 썬글라스를 머리에 얹고 선서를 해볼까? “답답하고 숨 막히는 정치는 가라, 하와이 해변처럼 매혹적인 정치를 선물하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이왕 과감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으니 상임위장에도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신고 가볼 수도 있겠다. 사실 몇시간 동안 이어지는 국회 상임위 회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때가 많고,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정장차림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리바이스 청바지에 탠디 스니커즈를 신고 법을 논하고, 정부 정책을 질타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보좌진이라면 “내가 질의하면 저 의원보다 백배는 잘하겠다”라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것이다. 밤새 준비한 자료를 불성실한 사전 공부와 이해력, 말주변으로 날려 먹는 의원을 보면 안타깝고 화가 나면서 국회법에 ‘보좌진 찬스’조항을 넣어 놨다가 의원들이 자기 대신에 질의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국회의원으로 상임위장에서 장관을 상대로 질의를 한다면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얼굴도 붉히지 않고, 폐부에서 우러나는 절실함으로 보좌진과 함께 준비한 질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절대 보좌진이 날밤 새우게 하지 않으면서 수집한 자료와 머리 맞대고 분석한 문제점을 가지고, 국민 모두가 가질 만한 궁금함을 풀어 줄 수 있는 질의를 해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국회의원은 모두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배지만 달고 나면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국회의원이 체면 차리지 않고 이름 알리자면 무궁무진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당 지도부 회의 때 ‘봄날은 간다’에 맞춰 춤을 춰도 되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하는 차별금지법 반대자들과 멱살 잡고 싸우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더 현실적인 방법은 대권주자를 대차게 씹어대는 것이다. 이낙연 대권주자, 이재명 대권주자, 윤석열 대권주자를 사흘에 한 번씩만 선정적으로 비판하면 언론은 알아서 기사를 내 준다. 이름값은 상한가를 친다. 조중동이 너무 사랑해서 하는 말마다 따옴표로 따서 기사를 내주는 진모씨를 벤치마킹하면 일약 전국적인 지명도를 획득할 수 있다.

국회의원으로 더도 말고 4년만 일해 보고 싶다는 술자리 넋두리를 하는 이들이 가끔 있다. 앞뒤 재지 않고, 당 지도부 눈치, 유권자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일,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펼쳐보고 싶다는 이룰 수 없는 꿈. 이런 꿈은 사실 의원들도 꾼다. 그런 까닭에 4년만 하고 집어던지고 나가는 국회의원도 있었다. 꿈을 이룬 사람들. 허나 이 모두가 한여름 밤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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