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명목의 차량 내부 촬영 동의서… A씨 “원치 않는 서명해”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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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국내 이커머스 선두 업체인 ‘쿠팡’이 쿠팡카 내부에 블랙박스를 설치하면서 논란이 예상된다. 현재 쿠팡카 내부 블랙박스는 차 외부 모습만 영상이 녹화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쿠팡 측은 쿠팡카 내부 블랙박스 설치 문제로 쿠친(구 쿠팡맨, 배송기사)들에게 ‘개인(영상)정보 수집, 이용 동의서’를 나눠주며 서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쿠팡은 3년여 전 불법 내부 블랙박스 촬영 문제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일부 쿠친과 노조 측은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설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고용 불안 등의 이유로 쿠팡이 내민 설치 동의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제보자 A씨 “설치 동의서 강제 아니지만, 계약직 신분이라 동의 할 수밖에”

음성 빠진 블랙박스, 3년 전 ‘불법 촬영’ 의식 했나… 해당 의혹 설명 없어

쿠팡 서울 수도권 캠프에서 쿠친으로 근무한다고 밝힌 제보자 A씨는 최근 쿠팡 캠프 내에서 쿠팡카 내부 블랙박스 설치 문제로 쿠친들에게 ‘개인(영상)정보 수집, 이용 동의서’를 나눠주며 서명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캠프에서는 서명을 하는 것이 강제가 아니기 때문에 블랙박스 설치에 대해 동의를 한다면 서명을 하고 동의를 하지 않는다면 서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나 A씨는 서명을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원치 않는 서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A씨는 “캠프 내 계약직이 절반이 넘는 상황에서 서명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눈치가 보이는 일”이라며 “사생활 침해 문제가 우려되는 만큼 내부 블랙박스 설치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지는 지난 4일 쿠팡카 내부 블랙박스 설치 문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쿠팡공공운수노조쿠팡지부(이하 쿠팡노조) 측에 연락을 취했다. 최세욱 쿠팡노조 사무장은 “내일(5일) 쿠팡 본사에 방문해 블랙박스에 대한 생각과 우려점 등을 얘기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최 사무장은 쿠팡 내부 블랙박스 설치 논란이 불거진 원인이 운전테스트 과정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현재 쿠팡은 쿠친들의 운전테스트를 각 캠프별로 하고 있는데, 운전 실력이 미숙한 이들을 위해 내부 블랙박스를 설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전 쿠친들에게 확대 적용한다는 내용은 전달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 사무장은 “면허증만 있으면 운전 테스트를 받을 수 있다 보니 사측이 내부 블랙박스를 설치해 쿠친들의 운전 테스트와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파악해 왔다”며 “운전 테스트에만 적용하기로 한 걸 아마 전 쿠친들에게 확대 적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 “내부 블랙박스 설치,
사고 감소와는 연관 없어”

내부 블랙박스 설치 문제를 두고 노조 안팎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최 사무장은 “내부 블랙박스 설치와 사고가 줄어드는 것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성급한 결정으로 해당 동의서에 서명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후 쿠팡 노조와 본사 측은 지난 5일 쿠팡카 내부 블랙박스 설치 문제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의에 참여한 정진영 쿠팡 노조 지부장은 “논의 결과 사측은 동의서를 합법적으로 받는 데다가, 동의서에 서명한 쿠친만 촬영하고 있어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며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예민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이를 문제 삼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 지부장 역시 쿠친들에게 성급한 판단으로 동의서에 서명하지는 말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이번 교섭을 통해 촬영 조건이 다소 개선되기도 했다. 사측은 노조를 통해 내부 블랙박스 설치 문제와 관련해 동의서에 서명한 쿠친이라도, 근무 중 내부 블랙박스 카메라를 가리고 운행해도 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해당 문제가 사생활 침해 문제로 이어지는 예민한 사안인 만큼 본사 측에서도 한 발 물러선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현재까지 쿠팡은 전국 캠프 중 일부 소수의 캠프에만 차량 내부에 블랙박스를 설치한 상태다. 전국 캠프 동시 시행은 아니며, 시범 테스트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개인(영상)정보 수집 이용 동의서 [제보자 A씨 제공]

 

녹음 기능은 없어 ‘의아’
3년여 전 논란 의식?

해당 논란에 대해 쿠팡 본사 측은 “내부 블랙박스 설치는 쿠친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며 “운영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내부 블랙박스 설치 문제에 대한 노사 간의 입장이 오가는 상황인 만큼 자세한 답변을 하기에는 조심스럽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노사 간의 교섭이 한창인 가운데, 쿠팡 측이 설치하는 내부 블랙박스에는 영상 녹화 기능만 있을 뿐 녹음 기능은 탑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본사가 3년여 전 불법 블랙박스 촬영 논란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고 입을 모았다.

한편 쿠팡은 3년여 전 ‘불법 블랙박스 촬영’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었다. 2017년 5월 당시 쿠팡 사태대책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현직 쿠팡맨 75명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대책위는 사측이 비정규 직원들을 계약 만료라는 이유로 자르고 그 자리를 다시 신규 직원으로 채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측이 비정규 사원의 정규직 전환을 막기 위해 이른바 ‘인력 물갈이’를 하고 있고 차량 내부 블랙박스에 녹음된 직원 간 통화 내용으로 징계를 내렸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당시 대책위 소속 강모씨는 “쿠팡 창원캠프 관리자가 B 쿠팡맨을 출근하자마자 불러 타 쿠팡맨들이 있는 자리에서 일부 쿠팡맨들과 통화 녹취가 된 블랙박스 영상을 공개했다”며 “이 영상에는 B 쿠팡맨과 몇몇 쿠팡맨들 간의 통화 내용 중 쿠팡에 대한 불만 사항을 이야기한 내용, 사적인 통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영상을 당사자인 B 쿠팡맨의 동의 없이 공개했다는 점이다. 이 영상으로 인해 B 쿠팡맨은 징계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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