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감성 체코 ‘알쓸신잡’ 이야기]

[편집=김정아 기자/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편집=김정아 기자/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일요서울 |  프리랜서 김관수  기자] 오늘의 올로모츠는 대학도시로 이름이 높다. 숙박시설과 카페, 레스토랑 등을 둘러보며 그런 면면을 느낄 수 있었다. 캐주얼하고 톡톡 튀고, 또는 지극히 노마드적인. 이렇게 올로모츠를 만들어 가는 요즘 사람들의 개성들이 수 세기 영화를 누렸던 도시의 전통과 함께 어색하지 않게 녹아들어 있어 오히려 안락함을 준다. 그런 면이 오늘을 여행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참 감사하지 않을까. 하나하나 느릿느릿 둘러봐야 할 것 같은 도시. 그렇게 며칠쯤 머물다 가고 싶은 여행지. 걸어서 여행해도 좋은 도시라는 사실은 그만큼 쉬어가도 좋은 곳들이 많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작은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고 나온 어둠이 내려앉은 밤의 올로모츠 역시 다르지 않았다. 가녀린 불빛에 인적 드문 투박한 길을 걸어도 편안함은 여전했다. 광장의 불빛은 휴식을 즐기기에 적당했고 분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소란스럽지 않았으며, 거리를 밝히는 펍의 네온사인은 딱 발걸음을 향하고 싶은 정도였다. 브루어리에서 직접 만든 맥주는 더 없이 신선하고 젊은 커플은 더욱 다정스러워져 가고 있었다. 도시의 품격에 감성의 물줄기가 가득 흘러내리고 있었다.  

레드니체 성 Castle Lednice
풍요 속 디톡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유럽의 정원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레드니체 성으로 향하는 길은 특별히 기대가 컸다. 며칠 동안 도시를 여행하다가 19세기 네오고딕 양식의 성과 정원을 찾아가는 일정은 마치 부록처럼 얻어진 뜻밖의 즐거움이었다. 귀족들의 여름 회의장이자 별장이라는 소개가 나의 별장이라는 환청으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레드니체 성은 의외로 소탈하고 아늑했다. 성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귀족의 별장이라는 표현이 적당한 모습.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투어프로그램을 통해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휴가를 즐기던 공간을 잠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조금은 긴장됐던 마음을 편안히 내려놓을 수 있었던 곳은 기타 연주를 감상했던 작은 공간. 커튼 틈 사이로 흘러들어온 햇살에 물들어버린 마루 위 양탄자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연주자의 눈감은 표정을 바라보며 나와 이곳의 시간은 함께 잠시 먼 과거로 돌아갔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마음은 어느새 햇살을 타고 창밖으로 날아갔고, 정원을 거니는 귀족들을 떠올렸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싶었던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정원의 끝은 아득히 멀어 보였다. 가장 먼 곳 한가운데에 뜻밖의 미나렛첨탑이 부끄러운 듯 모습을 드러냈고, 발걸음은 그곳으로 향했다. 거추장스러운 장식 없이, 그대로의 자연만이 존재하는 길이지만 싱그러운 초록들의 조화로 정원은 풍요로웠다. 호수, 새, 꽃, 나무, 잔디, 나무다리, 아이, 가족들까지. 눈과 귀 그리고 코와 입을 통해 흘러들어온 레드니체 정원에 살고 있는 모든 것들의 기운이 몸속으로 전해져 왔다. 조금 더 산뜻하게, 조금 더 사색하며, 자연이 만들어놓은 초록빛의 터널을 걸을 수 있었던 시간. 나의 머리와 가슴은 몰라보게 가벼워져 있었다.  

미쿨로프 (Mikulov) 숨은그림찾기의 유쾌함

레드니체를 떠나 미쿨로프로 가는 차 안에서 멀리 언덕 위에 자그마한 건물들이 보였다. 마법에 걸린 듯 계속해서 눈을 뗄 수 없는 새하얀 모습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어느새 언덕 아래 마을에 이르렀다. ‘거룩한 산’을 뜻하는 하얀 예배당 ‘스바티 코페첵Svatý Kopeček’을 품은 미쿨로프. 가이드는 스바티 코페첵이 모라비아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성지순례지로 꼽히는데, 이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의 마지막 여정을 기념하는 동상 15개가 설치되어 있어 ‘십자가의 길’로 불린다고 소개했다. 마음은 꼭 한 번 그 길을 가보고 싶었지만, 미쿨로푸에서 갈 길 바쁜 여행자의 발걸음은 이미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체코를 대표하는 정통 와인을 미쿨로프에서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이렇게 아담한 마을에 와이너리는 어디 있고, 와인 셀러는 어디 있을까’, 광활한 농장 같은 와이너리를 상상했던 탓에 와인을 맛볼 수 있는 곳을 찾으며 어쩔 수 없이 걱정 반, 의심 반이었다. 하지만 옛 돌길로 된 골목을 따라 산을 오르다 보니 와인을 맛볼 수 있는 곳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돌산 아래에 자리 잡은 한 와이너리로 들어가 ‘체코 와인의 진리’라고 까지 불리는 화이트와인과 음식을 주문했다. 양배추 등을 넣어 만든 빨간 국물의 스프는 김치찌개와 거의 흡사한 맛을 보여주었는데, 뜻밖에도 화이트와인과 궁합이 절묘했다. 미쿨로프의 화이트와인만 가져간다면 한국에서도 멋진 페어링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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