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안내
조용헌 살롱



1,800개의 화두 중에서 최고의 화두는 ‘나는 누구인가?’이다. 정녕 나는 누구란 말인가? 이 화두를 깨달으면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셈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인생 최대의 즐거움이요, 안심이자 보람이다.
정체성을 깨닫지 못하면 항상 헤매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체성을 깨닫는 일은 쉽지 않다. 노력과 투자 없이 얻어질 수 있는 경계가 아니다. 개인의 정체성을 좀더 확대하다 보면 민족의 정체성과 마주친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구분되는 ‘한국인의 정체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필자는 이 물음을 9가지 각도에서 추구하였다. 이 9가지를 구궁이라고 이름 붙였다. 문(文)ㆍ사(史)ㆍ철(哲)ㆍ유(儒)ㆍ불(佛)ㆍ선(仙)ㆍ천문(天文)ㆍ지리(地理)ㆍ인사(人事)가 여기에 해당한다.

‘강호동양학’의 관점에서 본 삶의 지표
음양(陰陽)- 조상들은 살아 있는 사람이 사는 집을 양택이라 부르고, 죽은 사람이 사는 무덤을 음택이라 불렀다. 둘 다 매한가지로 집으로 여겼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음과 양은 둘이면서 하나고 하나이면서 동시에 둘이다.
이것을 무 자르듯이 하면 옳지 않다. 우주에는 나름의 운행 법칙이 있고 때가 있다.
이 때를 모르면 ‘철 없는’ 사람이 된다. 사람 사는 일, 거창하지 않다. 음과 양을 잘 살피며 살면 된다.
오행(五行)- 오행은 우주를 구성하는 5대 원소다. 보통 수화목금토로 이야기하며 여기에 음과 양 즉 월과 일이 만나면 음양오행, 즉 우리 삶의 매일 매일이 된다.
오행은 동서남북을 비롯한 방위와, 인체의 오장(五臟)을 포함한 우리 주변의 온갖 요소를 이 오행으로 환원시켜 적용할 수 있다.
먹는 음식, 생활, 습성이 모두 오행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상극과 상생은 하나의 이치로 관통한다. 오행을 바로 알면 우리는 보다 더 조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마치 돼지고기에 새우젓을 찍어 먹듯.
이판(理判)-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은 불교에서 유래했다. 이판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에 대한 판단이라면, 사판은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에 대한 판단이 된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인격모델은 이판사판에 모두 통달한 인물이다.
한국의 지적 전통에서 볼 때 고려 불교의 이·사 개념은 조선시대 성리학으로 넘어오면서 이(理)와 기(氣)로 계승되었다. 세상살이는 이판과 사판으로 살고 볼 일이다.
사판(事判)-사사무애(事事無碍)란 일과 일에 걸림이 없는 단계를 가리킨다. 최고의 경지다. 그러나 말이 쉽지 현대사회를 살면서 사사무애란 요원하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땅바닥에다 글로 쓴 예수의 행동은 사사무애의 한 초식을 보여준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직 멀었다. 이판과 사판을 더욱 정진해야 한다.
* 강호동양학- 강호의 낭인들과 민초들 사이에서 주로 유통되는 동양학을 지칭하는 표현.

천하를 돌아다니며, 삶을 깨닫는다
저자는 지난 20년간 이 ‘구궁’이라는 틀을 가지고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하였다.
어느 산천, 어느 도시, 어느 사람을 만나든지 그냥 스치는 법은 없었다. 이 구궁이라는 9개의 낚시를 던지면 그 중에 한두 가지는 이야깃거리가 걸리기 마련이었다.
문ㆍ사ㆍ철이 없으면 유ㆍ불ㆍ선으로 걸고, 유ㆍ불ㆍ선이 없으면 천문ㆍ지리ㆍ인사라는 낚시로 걸면 이야깃거리가 최소한 한두 개는 나오기 마련이다.
운이 좋으면 다발로 나올 때도 있었다. 이 책은 그렇게 펜대 하나 등에 메고 천하를 유람하면서 보고 듣고 생각한 내용이 담긴 책이다. 나의 이야기가 독자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용헌 저 / 랜덤하우스 / 12,000원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