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북한인권국제연대 문국한 대표는 ‘장길수 가족’ 탈북을 주도한 주인공이다. 문 대표는 지난 1999년 문구 사업을 위해 중국에 진출했다가 알게 된 조선족 여성을 통해 길수 가족과 친척을 소개 받았다. 당시 15명이나 되는 길수 가족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북한을 탈출했다. 문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요서울과의 만남에서 “20년째 북한인권운동을 해 왔지만 북한의 인권상황과 중국에서 떠돌는 탈북자 인권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며 안타까워 했다. 지난 2000년 문 대표는 길수 군이 경험한 북한의 인권 실태를 글과 그림으로 알리기 위해 ‘눈물로 그린 무지개’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했다. 현재 책은 절판된 상태다.

장길수 – 16세. 함경북도 화대군 출생.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아버지와 군대에 간 형님을 남겨 둔 채 어머니와 작은형 등 일가족 3명이 탈북, 그 후 두 번에 걸쳐 가족을 구하려고 두만강을 건넜다. 

-잡히고 또 잡히고 

지도원은 “옷은 왜 그렇게 많이 젖었나” 물었다. “물고기를 잡으며 놀다 그랬다”라고 대답하자 지도원의 주먹이 사정없이 날아왔다.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나는 민국 형과 함께 국경 경비부대로 끌려갔다. 부대에 들어서자마자 소대 정치 지도원은 우리에게 “이 마을에 어떻게 왔나”, “중국에 가서 며칠이나 있다 왔나”, “중국에 있는 친척이 누구며, 어디서 살고 있는가. 몇 번 중국에 가 봤나”등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내가 계속해서 중국에 간 일이 없다고 하자, 지도원은 마치 우리를 잡아먹을 것처럼 눈을 부라리며 승냥이 얼굴을 했다. 한 사람의 도강자라도 잡아서 상부에 보고해야 칭찬을 받고, 승급이 되기 때문이다. 지도원은 “당의 품은 한없이 넓고 따뜻하니 진실하게 말해야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며 우리를 회유했다.

나는 지도원의 말에는 아랑곳 않고 계속 거짓말을 했다. 그 다음은 민국형을 데리고 와서 심문했다. 그런데 거기서 다른 지도원이 나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그 전에 잡혔던 XX가 또 잡혀 왔네 이번에도 강타기(도강)를 하다 잡혔나” 그의 말에 나는 식량 구하러 나왔다고 했다. 지도원은 “그러면 돈은 어디 있나”고 물었다. 내가 “잃어버렸다”고 대답하니 어디서 잃어버렸나 며 더 자세히 캐물었다. 나는 바로 대답을 못 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우리 둘을 풀어줬다. 우리는 살았다고 생각하고 역전으로 갔다. 역전에 있던 군인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와 “이 놈들을 도 안전국 순찰대에 인계해”라며 옆에 있던 전사 한 명에게 말했다. 나는 “우리는 방금 소대 정치 지도원 동지에게 검열을 받고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라고 말했지만 군인이 버럭 소리쳤다. “내가 중대 보위 지도원인데 누가 보내?” 다시 처음에 잡혔던 도 안전국 위원회로 끌려가게 됐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문짝도 없고 유리도 없는 제일 끝의 방이었다. 밤이 되었지만 불도 없었다. 

조금 있으니 안전원 두 명이 들어왔다. 나이는 스무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은 정치대학을 막 졸업하고 도 안전부에 배치되어 있다가 “김정일 방침”을 받고 지방에 내려온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전지(손전등)를 쥐고 방으로 들어와 우리에게 수쇄(수갑)을 채웠다. 우리를 벽의 한구석에 몰아넣고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땅에 고꾸라지면 구둣발로 내리밟고, 마구 내리쳤다. 매 맞는 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민국형이 보다 못해 “모든 죄가 나에게 있다. 내가 가자고 해서 이곳에 오게 됐다. 그러니 나를 때려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안전원들은 둘 중에 먼저 말하는 사람은 용서하고 수쇄도 풀어주고 집에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민국형은 자기가 먼저 중국으로 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안전원은 민국형의 수쇄를 풀어 주며 나에게 “동무, 누구는 놓아주고 누구는 노동단련대(꽃제비 수용소)에 가서 석 달 동안 일을 시켜야 하겠군”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민국형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나갔다. 그들은 다시 나를 구슬리며 “중국에 가자는 약속은 어떻게 했나”, “어디서 만나게 되어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며 묻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민국형을 역전에서 만났으며 잘 모르는 사이라고 했다. 이후  밖에서 ‘어우’ 하는 비명 소리가 났다. 민국형이 옆방에서 매 맞는 소리였다. 나중에 민국형에게 물으니 밖으로 내보내 준다고 해놓고는 어두운 방에 가두고 때렸다고 했다. 

안전원들이 계속 물어도 내가 중국에 간 일이 없다고 하자 그들도 지쳤는지 방 안으로 들어가 담배를 한 대씩 피웠다. 나는 ‘이렇게 계속 맞다간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도망칠 궁리를 했다. 나는 안전원 한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틈을 타서 복도 옆에 놓인 젖은 옷과 배낭을 손에 쥐고 그것을 안전원에게 덮고 조금 열린 문을 박차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갈대밭을 지나고 나무 울타리를 뛰어넘어 정신없이 달렸다. 그런데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없었다. 그런데다 그동안 먹지도 못했으니 맥이 다해 얼마 뛰지 못하고 결국 쫓아온 안전원에게 잡히고 말았다. 나는 소리 내어 울며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안전원은 “엄살을 부리지 말라”며 내 목덜미를 잡고 끌고 갔다. 그에게 끌려가며 “어머니 살려 주세요” 하고 소리쳤지만 누구 한 사람 쳐다보지 않았다. 내가 다시 잡히자 안전원들이 달라붙어 때리고 밟고 야단들이었다. 수쇄로 묶은 손과 손 사이를 마구 발로 밟으며 막대기로 머리를 때렸다. 너무 세게 맞아 머리가 터져 피가 나왔다. 이제 꼼짝없이 죽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죽도록 맞기는 처음이었다. 그들은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노동단련대로 보내겠다고 계속 협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