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 벗었다···재판부 “살인 범행 동기 불명확”

안전벨트. [뉴시스]
안전벨트.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캄보디아인 만삭 아내 명의의 고액 보험금을 받기 위해 교통사고를 낸 남성이 최근 살인죄를 벗었다.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일명 ‘보험금 95억 원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살해 사건’이다. 당초 이 남성은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이후 지난 2017년 대법원에서는 “살인 동기가 명확하지 않다”며 대전고법으로 파기환송 했다. 결국 무기징역까지 받았던 해당 사건이 최근 살인죄 대신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죄를 적용, 금고 2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왜 고의 사고가 아닌 졸음운전으로 봤을까.

고의 사고졸음운전···지연 이자까지 100억 원 넘는 보험금 향방은?

대전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허용석)는 지난 10일 이모(50)씨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검찰이 적용한 혐의 중 살인죄에 대해 무죄로 보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죄를 적용해 금고 2년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 했다.

이 씨가 아내 명의로 된 보험금 95억 원을 받으려고 살해를 목적으로 사고를 낸 혐의를 졸음운전으로 판단한 것.

금고형은 판사 선고로 집행되는 형벌 중 자유형의 하나로, 노역을 포함하는 징역형과 달리 1개월 이상 교도소 등에 수감되지만 노역에서는 제외되는 경우를 뜻한다.

재판부는 거액의 보험금을 노린 교통사고에 대해 “피해자 사망에 따른 보험금 95억 원 중 54억 원은 일시에 나오는 것이 아니고 다른 법정 상속인과 나눠 받게 돼 있다”면서 “아이를 위한 보험도 많이 가입했던 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점 등 살인 범행 동기가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졸음운전을 했다는 공소사실은 유죄로 인정된다. 피고는 만삭의 아내가 안전벨트를 풀고 좌석을 젖힌 채 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만큼 더 주의를 기울여 운전해야 했다”고 밝혔다.

20여 개 보험상품 가입

이 씨는 지난 2014년 8월23일 새벽 3시41분경 경부고속도로 천안나들목 근처에서 승합차를 운전하던 중, 갓길에 주차된 화물차를 들이받아 동승한 임신 7개월의 아내(당시 24세)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고 후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졸음운전을 하다 화물차를 못 보고 부딪쳤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 씨가 아내가 사망하기 전 20여 개 보험상품에 가입, 사망보험금이 모두 95억 원에 달하고 매달 납부한 보험료가 400만 원이 넘는 점을 두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도 이 씨를 살인과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간접 증거로만으로는 범행을 증명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사고 두 달 전 30억 원의 보험을 추가로 가입한 점 등을 보면 공소사실이 인정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 ‘사형’ vs 변호인 ‘무죄’

이후 또다시 반전이 일어난다. 대법원이 2017년 5월 “살인 동기가 명확하지 않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고법에 돌려보낸 것. 대법원은 “피고인이 특별히 경제적으로 궁박한 사정도 없이 고의로 자동차 충돌사고를 일으켜 임신 7개월인 아내를 태아와 함께 살해하는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려면 그 동기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3년 넘게 진행 된 파기환송심에서는 검찰이 “보험금을 타려는 살해 동기가 명확하다”며 이 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이에 이 씨 변호인 측은 “살인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무죄”라고 맞섰다. 결국 재판부는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이번 파기환송심에서 피해자에게서 수면 유도제 성분이 검출된 점에 대해 재판부는 “임신부나 태아에게 위험하지 않다는 감정이 있고, 일상 속에서 다양하게 쓰이는 성분”이라며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는 2심에서 재판부가 간접증거라고 본 대목이다.

다만, 졸음운전과 아내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있던 점은 유죄 및 운전자 과실로 봤다. 피의자로 지목된 이 씨에 대해 여러 미심쩍은 정황들은 직접 증거가 되지 못했다.

한편 이 씨의 보험금 청구와 관련해서는 보험사와 아직 민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살인을 전제로 적용된 보험금 청구 사기 혐의가 무죄가 나오면서, 지연이자까지 100억 원이 넘는 보험금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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