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도 할머니들 위한 직접 경비 아닌 시설 운영에 지출

경기 광주 나눔의집에 세워진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동상이 비를 맞고 있다. [뉴시스]
경기 광주 나눔의집에 세워진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동상이 비를 맞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거주시설인 나눔의 집이 수십억 원의 후원금을 받아 놓고도 할머니들에게 직접 사용하지 않고, 땅을 사거나 건물을 짓기 위해 쌓아둔 것으로 드러나 여론의 공분을 사고 있다. 게다가 조사과정에서 할머니들에 대한 정서적 학대 정황도 발견돼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경기도 민관합동조사단, 법인 및 산하시설 조사 결과 발표

이사회 의결 부당행위에 할머니 정서적 학대 정황도

송기춘 나눔의 집 경기도 민관합동조사단(이하 조사단) 공동단장은 최근 경기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송 단장은 “나눔의 집은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홈페이지 등을 통해 할머니들의 생활, 복지, 증언활동을 위한 후원금 홍보를 했으며 여러 기관에도 후원 요청 공문을 발송하는 등 지난 5년간 약 88억 원 상당의 후원금을 모집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과정에서 나눔의 집 법인이나 시설은 기부금품법에 의한 모집 등록을 하지 않았고, 후원금 액수와 사용내역 등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등록청의 업무 검사도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현행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000만 원 이상의 기부금품을 모집하려는 사람은 모집‧사용계획서 등을 작성해 주소지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해야 한다. 10억 원을 초과할 경우 행정안전부에 등록해야 한다.

국민들이 후원한 돈은 나눔의 집 시설이 아니라 운영법인 계좌에 입금됐다.

이렇게 모인 후원금 약 88억 원 중 할머니들이 실제 생활하고 있는 나눔의 집 시설로 보낸 금액(시설전출금)은 약 2억 원 뿐이었다. 약 2.3% 수준이다.

이런 시설전출금도 할머니들을 위한 직접 경비가 아닌 시설 운영을 위한 간접 경비로 지출된 것이 대부분이었던 점이 드러났다.

역사 담은 기록물 ‘방치’

반면 운영법인이 재산조성비로 사용한 후원금은 약 26억 원으로 파악됐다. 재산조성비는 토지 매입과 유물전시관 및 추모관 신축비, 생활관 증축공사, 추모공원 조성비 등으로 사용됐다.

이사회 회의록 및 예산서 등을 살펴봤을 때 나머지 후원금은 국제평화인권센터, 요양원 건립 등을 위해 비축한 것으로 보인다고 조사단은 설명했다.

이사회 의결 과정에서 부당행위도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눔의 집은 법인 정관상 이사의 제척제도를 두고 있음에도, 이사 후보자가 이사 선임절차에 참여해 자신을 이사로 의결한 것.

지난해 11월 이사회에서는 사외이사 3명이 자신들의 이사 선임에 관한 안건 의결에 참여했다. 이들을 제외하면 개의정족수가 미달됐으나 회의가 진행됐다.

조사단은 조사 과정에서 할머니에 대한 정서적 학대 정황도 발견했다고 전했다.

간병인이 “할머니, 갖다 버린다”, “혼나봐야 한다” 등 언어폭력을 가했는데, 의사소통과 거동이 불가능한 중증환자 할머니에게 집중됐다.

간병인의 학대 행위는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나눔의 집 운영 문제에서 파생된 의료공백과 과중한 업무 등이 원인일 수 있다고 조사단은 판단했다.

할머니들의 생활, 투쟁 등의 역사를 담은 기록물은 방치되고 있었다. 입퇴소자 명단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었으며 할머니들의 그림과 사진, 국민들의 응원 편지 등을 포대자루나 비닐에 넣어 건물 베란다에 방치했다. 방치된 물건 중에는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된 자료도 있었다.

“시설 폐쇄나 시설장 교체

검토할 만한 수준”

제1역사관에 전시 중인 원본 기록물은 습도 조절이 되지 않아 훼손되고 있었다. 제2역사관은 부실한 바닥 공사로 바닥 면이 일어나 안전이 우려되는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법인 직원인 간병인이 조사단과 할머니의 면담 과정을 불법으로 녹음했다. 시설장은 할머니를 조사대상인 전 시설장과 전 사무국장 등과 외부에서 만나게 하기도 했다.

송 단장은 “나눔의 집은 초창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평안한 생활을 위해 불교계의 노력과 헌신으로 시작됐다”며 사회에 기여한 공도 있음을 인정했다.

또 “피해자였던 할머니들이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역사적 아픔을 나누고 치유하며 역사적 진실을 세상에 증언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러나) 점차 법인 및 시설 운영에서 문제점이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를 포함한 시민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회가 구성될 필요가 있다”며 “민관협의회가 ‘할머니들의 편안한 여생’과 ‘위안부 역사’의 기록과 보존 등에 대해 긴밀히 협의,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고 경기도와 광주시는 그 정상화 방안이 잘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고 제안했다.

한편 조사단은 지난 7월6일부터 22일까지 행정과 시설운영, 인권, 회계, 역사적 가치 등 4개반으로 나눠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법인)과 노인주거시설 나눔의 집(시설), 일본군 역사관 및 국제평화인권센터 등에 대해 조사했다.

경기도는 조사단으로부터 최종 조사 결과를 받아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한편, 사회복지사업법 등 관계 법령을 위반한 사항에 대해서는 행정처분할 방침이다.

송 단장은 행정 처분과 관련해 “경기도와 광주시가 보고서를 토대로 충분히 검토를 해서 판단하겠지만 법인 설립허가 취소는 굉장히 과하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며, 이사진 전원이 책임을 져야 하는 사안이 아닌가 하는 게 조사단에 참여한 민관위원들의 생각”이라며 “시설에 대해서는 시설 폐쇄나 시설장 교체도 충분히 검토할 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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