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장 논란’ 류호정 “관행 깰 것”...정작 與 지지자 ‘도 넘은 성희롱’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꼰대’라는 비속어가 한창 유행이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꼰대’는 ‘권위적 사고를 가진 어른을 비하하는 속어’다. 그런데, 이 비속어가 국회를 휩쓸고 있다. 바로 지난 4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원피스 등원’에서 시작됐다. 그는 한 라디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에서)제가 청바지, 반바지, 정장 등 여러 복장들을 다양하게 입고 다녔다. 그런데 본회의 마지막 날 복장이 다음 날 논란이 되어 조금 놀랐다”며 “검은색, 어두운 색 정장과 넥타이로 상징되는 50대 중년 남성 중심의 국회 관행을 좀 깨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일요서울은 류 의원의 원피스 등원이 정치권 '꼰대'들에 던진 파장과 의미를 추적했다.  

류호정 의원[뉴시스]
류호정 의원[뉴시스]

 

-민주당 100만 당원 모임 發 ‘인신 모독’...진중권 ‘일침’

국회법 제25조에 따르면 ‘품위 유지’가 명시됐다. 다만 복장에 대한 세부 방침은 제시돼 있지 않다. 그래서 관행적으로 남성 국회의원의 경우 양복에 넥타이를, 여성 국회의원은 여성 정장에 준하는 옷을 입는 게 관행이었다. 그러다 보니 28살 여성 정치인 류 의원의 빨간 원피스 복장 등원은 국회 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그 결과 기존 관행은 ‘꼰대’가 됐다.

국회의원의 복장 논란은 2003년에도 있었다. 당시 의원이었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재보궐 선거에 당선돼 의원선서식에 참석하는데, 흰색 바지의 캐쥬얼 차림으로 국회 본회의장에 등원했다. 야당에서 “저건 예의가 아니다. 국민에 대한 예의”, “국회가 이게 뭐냐”, “퇴장시키자”라는 비난이 쇄도했고, 보다 못한 일부 의원들은 본회의장을 퇴장하기도 했다. 박관용 당시 국회의장도 이날 유 이사장의 옷차림을 지적하며 “모양이 좋지 않다. 내일 다시 회의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결국 다음 날 유 이사장은 정장에 넥타이를 착용해야 했다.

그로부터 17년 후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빨간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 등원했다. 이 같은 복장을 두고 온라인에선 혐오·성희롱적 발언이 줄을 이었다. SNS 그룹인 친문(親文) 성향의 ‘더불어민주당 100만 당원 모임’에서는 지난 5일 류 의원의 원피스 복장 사진을 올리며 “본회의장에 술값 받으러 왔냐”, “노래방 도우미 같다”, “정의당이 아니라 보도당”등의 도를 넘은 발언이 나왔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도 “소개팅 나가냐”, “다음엔 더 야하게 입고 나와라”는 성희롱이 이어졌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양 진영의 커뮤니티에서 류 의원에 대한 비난과 성희롱이 확산되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SNS에 “일-민동맹(일베-민주당 100만 당원 모임), 전국의 수컷들이여 단결하라! 그렇게 싸우다가도 성희롱이라는 공동의 대의 앞에선 하나로 뭉친다”고 조롱했다. 

반면 류 의원의 원피스 복장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응원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류호정 의원의 복장을 문제삼는 건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며 “성희롱성 발언이 있다면 비난 및 처벌받아야 할 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5선 중진인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6일 SNS에 “17년 차 국회 꼰대가 류호정 의원을 응원한다”고 밝히며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비난하기보다 류호정 의원이 왜 저 옷을 입었는지,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는지를 더 생각해 봐야 한다”고 글을 올렸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성 정치인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패션을 지적당하거나 일부러 패션 논란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테즈[뉴시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테즈[뉴시스]

 

해외권, ‘꼰대 정치’ 물러가라?

2018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여성 후보들이 약진하며 의회 정장 문화가 바뀌기 시작했다. 색상만 다를 뿐 긴 재킷에 바지 정장 차림은 미국의 대표적인 국회 의사당 복장이라고 불렸다. 이런 스타일은 그동안 미국 여성 정치인과 기업인의 전형적 옷차림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많아지면서 인종, 종교 등 다양한 개성을 공식 석상에서 드러내는 일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지난 2018년 미 중간선거에서 당선된 첫 무슬림 여성 하원의원인 소말리아계 일한 오마르는 히잡 착용을 허용하는 ‘하원 복장 규정 개정안’을 요구했다. 오마르는 SNS에 “나 외에 그 누구도 내 머리 위에 히잡을 얹지 못한다”며 “이것은 내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해 여성 원주민 출신으로 캔자스에서 당선된 샤리르 데이비스는 격투기 훈련으로 다져진 근육질 팔뚝이 드러나는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개표 현장에 나왔다. 미 정치권에선 여성 정치인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민소매를 입은 전례가 거의 없다.

29세로 최연소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테즈 의원은 여성 참정권을 위해 헌신한 선배들을 기리는 의미로 흰 옷을 입고 취임식에 참석했다. 미국의 여성 정치인들은 여성의 참정권을 얻어내기 위해 헌신한 활동가들에 대한 연대를 표시하기 위해 흰옷을 입어 왔다.
미국의 한 매체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신진 여성 정치인들의 틀에 박히지 않은 패션이 남성 위주 문화에서의 전환을 뜻하며 여성 내부 세대교체이자 독립선언으로 해석된다”고 평가했다.

유럽에서도 여성 정치인들의 옷차림으로 인한 논란과 변화를 겪고 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원피스 복장 논란에 앞서 영국의 브레이빈 의원도 지난 2월 한쪽 어깨가 드러나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해 그의 복장을 둘러싼 악성 댓글과 비난에 시달렸다. 브레이빈 의원은 논란 다음 날 가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의상 논란은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을 보여 준다”고 주장하며 “권력을 갖고 있는 여성에게 남성들이 도전하는 방법이 그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노동자 주먹[뉴시스]
노동자 주먹[뉴시스]

 

꼰대, 진보·보수 안 가려

지난달 10일 직원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날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SNS에 올린 글에서 박 전 시장을 “조문하지 않겠다”고 그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직원을 향해 “존경하는 사람의 위계에 저항하지 못하고 희롱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당신이, 치료와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정신과 상담을 받고서야 비로소 고소를 결심할 수 있었던 당신이, 벌써부터 시작된 ‘2차 가해’와 ‘신상털이’에 가슴팍 꾹꾹 눌러야 겨우 막힌 숨을 쉴 수 있을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에선 비판이 쏟아졌고 정의당 또한 내홍을 겪었지만, 류 의원은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류 의원의 이런 행보에 친문 성향 네티즌들은 연일 비판 공세를 취하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국회 본회의에 빨간 원피스를 입고 등원한 류 의원에 대해 친문 성향 네티즌들은 극우라 불리는 일베와 마찬가지로 성희롱 및 조롱성 발언을 쏟아냈다.

친문 성향의 극성 네티즌들은 진보 정당을 표방한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정작 류 의원은 공격당하고 있는 모양새다. 대체 왜 그럴까. 앞서 류 의원으로부터 제기된 ‘복장 논란’ 속 ‘이중 잣대’에서 그 이유가 짐작된다. 진보진영 일각에서 보수 정당을 향해 ‘꼰대정당’이라는 비판이 이번엔 류 의원의 ‘조문정국’에 대한 소신과 맞물리며 ‘복장논란’을 통해 표출되는 양상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 관계자는 지난 13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류 의원의 행보로 인해 이제 보수 진보가 아닌 개혁과 꼰대 세력으로 정치진영이 나누어지는 것 같다며 이번 논란이 극단적인 진영논리에 갇힌 정치지형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