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감성 체코 ‘알쓸신잡’

[편집=김정아 기자/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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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프리랜서 김관수  기자] 체코는 처음부터 ‘유럽의 감성’으로 각인됐다.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찾아간 프라하에서 순식간에 되돌아 온 그때의 감회는 처음 만난 다른 도시에서도 계속해서 이식되고 있었다.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하루하루 달라진 감성의 이름들을 담으려했던 모라비아, 그렇게 내 사랑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진 땅.

브르노 Brno 
힙플레이스의 상상력

브르노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무려 13세기부터 열리기 시작했다는 양배추시장(Cabbage Market)이었다. 숙소 앞 브르노 시내 중심 제일 큰 광장에 장이 서고 있어 일부러 찾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시장이 도시의 가장 중심에 있는 광장에서 열린다는 사실이 의외였지만, 양배추시장이 오래도록 브르노 시민들이 소식을 전하고 인사를 나누는 만남의 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어진 브르노의 첫 여행지는 그리 크지 않은, 비교적 아담한 시장이다. 화사한 파라솔 아래 상인들이 펼쳐놓은 물건들은 더욱 화사하다. 검고 붉은 베리를 비롯해 신선한 과일과 채소, 식료품, 꽃 등이 판매하는 물건의 대부분이다. 상인들이 직접 생산해서 이른 아침부터 들고 나와 물건을 모두 팔 때까지 있다가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런 풍경은 광장의 파르나스 분수대와 광장을 내려다보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성당 등과 함께 오래도록 그 풍경을 지켜내며 브르노 만의 전통으로, 그리고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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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노 시내에는 지나가는 길목에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남아있다. 구 시청사(Old town hall)에는 ‘브르노 드래곤(Brno Dragon)’과 ‘브르노 휠(Bruno Wheel)’, 그리고 약속한 돈을 받지 못해 화가 난 조각가가 조각품의 일부를 구부려 놓은 모습이 있고, 늘 그곳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있다. 브르노의 상징이기도 한 브르노 드래곤은 거의 완벽하게 악어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실제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시민들이 전설 속의 용이라고 부르면서 그 이름이 붙었다는 웃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길을 따라 내려오면 또 다른 볼거리들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2010년 만들어진 프리덤 광장(Namesti svobody)의 천문 시계는 그 모양부터 이색적이다. 마치 커다란 총알처럼 생긴 약 6미터 높이의 이 시계는 30년 전쟁 동안 스웨덴 군대에 대항한 도시의 위대함을 형상화한 기념물이다. 또한 특이하게도 오전 11시에만 딱 한 번 시각을 알려주는데, 유리구슬을 네 개의 구멍 중 하나로 방출하고 그 구슬은 줍는 사람이 임자다. 늘 11시가 가까워지면 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대기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하지만 문제는 11시 이외에는 이 시계를 통해 시각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길 건너에 일반적인 시계를 설치해 놓았다. 그래서인지 오후의 천문 시계 앞은 무척이나 한산했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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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 시계 옆에는 노천카페 ‘Na Brno dobrý’가 있다. 마치 빛 좋은 해변이라도 되는 듯, 상의까지 벗고 비치의자에 누워 태양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색 카페. 체코어로 도브리(dobrý)가 ‘좋다’라는 의미를 갖는데, 비록 바다가 없는 체코이지만 이 카페가 있어 브르노에서도 해변을 즐길 수 있어 좋다는 의미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브르노 사람들은 한결같다. 사고의 자유로움과 유쾌함, 익살까지 더해진 브르노 사람들을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브르노에는 전설적인 빌라 투켄하트, 신비로운 언더그라운드, 선택된 소수자를 위한 원자폭탄 대비소,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납골당, 악명 높은 감옥 등 이미 잘 알려진 독특한 볼거리들이 많지만, 그보다는 이 도시에 활기를 가득 불어 넣고 있는 젊은 감각과 문화적 감성을 더 찾아보고 싶었다. 브르노는 체코 최고의 학생 도시이자 특이하고 흥미로운 어트랙션을 경험할 수 있는 도시 그리고 유럽에서도 삶의 질이 높은 도시로 이미 꽤 높은 점수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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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 브르노에서 가장 핫하다는 레스토랑에서 시작된 ‘브르노 힙플레이스 투어’는 늦은 밤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총 6곳을 돌아보고 직접 그곳의 시그니처 음료와 음식을 맛본 뒤에야 마무리된 투어는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조금도 취하지 않는, 다만 그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창조해 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유니크한 신 세계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세계 최대 맥주 소비국의 명성에 걸맞은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체코 맥주, 그리고 모라비아의 자랑이자 모라비아 여행의 머스트 아이템인 와인을 두고 매번 선택의 고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고민을 놓게 해준 건, 브르노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는 특별한 하모니의 칵테일과 재기발랄한 게임의 결과로 그들이 건네준 칵테일, 그리고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기발함과 훈훈함이 함께 들어 있는 책으로 만들어진 메뉴판이었다. 표지에 그려진 브르노 시내의 다양한 바들을 사람의 성향에 따라 동서남북으로 구분 지어 놓고, 개인 취향에 따라 원하는 방향의 바를 선택하면 그 바에서 판매 중인 칵테일을 또 다시 취향에 따라 선택해서 즐길 수 있는 시스템. 그 시간은 단순한 투어가 아닌 선진 문화에 대한 학습의 시간으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그들의 상상력을 마음껏 즐기고 돌아오던 늦은 밤 광장의 중년 커플을 목격했다. 한쪽 발꿈치를 들어 올린 채 내려놓을 줄 모르는 눈 감은 한 여인과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안은 남자의 긴 입맞춤. 양배추 시장 입구에 홀로 외로이 서 있는 어린 모차르트 역시 환하게 웃고 있는 밤이었다.

 Info. 체코 제2의 도시, 브르노

브르노는 체코와 주변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며 수세기 동안 북쪽과 남쪽의 유럽 문명을 연결했던 고대 무역 루트의 교차로 역할을 했다. 과거 올로모츠가 모라비아 최고의 도시였지만 1618년~1648년에 있었던 30년 전쟁에서 올로모츠가 스웨덴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브르노로 모라비아의 권력이 넘어왔고, 지금도 모라비아의 주도로 남아 있다. 이러한 지리적 요건과 역사적 사건들은 브르노를 체코의 두 번째 도시로 만들어 놓았고, 지금은 체코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힙한 도시, 체코와 주변국들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들르는 관광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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