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여권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대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지난 20175월 현 정부 출범 이후 되풀이됐던 크고작은 고비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난 421대 총선 압승 이후 내놓았던 차기 대선 재집권이라는 청사진도 어느새 빛이 바랬다. 대선은커녕 내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전망도 어둡다. 압도적인 여권 우위의 정국이 불과 넉 달 만에 막을 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의 고공행진은 막을 내렸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최고점이었던 70%와 비교할 때 20% 포인트 이상 폭락했다. 민주당 지지율 역시 미래통합당에 역전을 허용할 정도로 위태로운 수준이다. 더구나 부동산정책 실패를 둘러싼 광범위한 민심이반의 여파로 향후 정치적 전망도 매우 불투명하다.

김원웅 광복회  회장, 뉴시스
김원웅 광복회 회장, 뉴시스

-“이승만 친일파김원웅 광복회장 의도된 도발에 여야 공방
- 민주당, “친일파 청산은 당연오히려 통합당 압박

정국반전을 고민 중이던 여권이 마침내 반격의 히든카드를 꺼내들었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역사전쟁의 칼을 꺼내든 것이다. 여권이 내세운 검투사는 김원웅 광복회장이다. 김원웅 회장은 8.15 광복절 경축식 기념사에서 친일파 청산이라는 우리 사회의 해묵은 현안을 꺼내들었다. 파장은 엄청났다.

김원웅, 대통령 면전서 이승만 친일파, ‘선긋기

여야 정치권은 곧바로 엄청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민주당을 제외한 보수야권은 일제히 여권의 의도에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당은 친일파 청산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라며 야권의 주장을 반박했다. 차기 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고작 17개월이다. 대통령 레임덕 방지와 차기 대선 재집권이라는 거대한 플랜 아래 역사전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이승만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폭력적으로 해체하고 친일파와 결탁했다. 대한민국은 민족 반역자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되었고,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친일 행적이 드러난 음악인 안익태가 작곡한 노래가 여전히 애국가로 쓰이고 있다. 민족 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한 나라뿐이다. 서울현충원에서 가장 명당이라는 곳에,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자 등 친일반민족인사 69명이, 지금,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김원웅 회장의 광복절 경축식 기념사는 위험한 파격이었다. 공개 석상에서 대통령이라는 표현도 없이 이승민 친일파라고 노골적으로 저격했다. 오죽하면 김 회장의 기념사에 문 대통령 광복절 연설이 아예 묻히는 현상까지 발생할 정도였다.

김 회장의 기념사는 한국현대사에 대한 여권 주류의 역사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친일파라는 점 친일파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를 교체해야 한다는 점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반민족 인사의 묘를 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 회장의 주장은 반성 없는 민족 반역자를 끌어안는 것은 국민화합이 아니다라며 친일청산이 국민의 지상명령이라고 주장했다.

3선 의원을 지낸 김 회장은 200818대 총선과 2010년 대전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뒤 정계에서 은퇴하며 야인으로 지내다 지난해 3월 광복회장 선거에 출마해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꺾고 당선됐다. 문제는 논란의 기념사가 문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에 앞서서 낭독됐다는 것이다.

매년 광복절 기념식을 청와대가 사실상 주관한다는 점에서 김 회장의 기념사는 청와대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김 위원장의 기념사가 몰고올 정치적 효과를 청와대가 미리 계산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야권에서는 교감설을 제기했지만 청와대는 즉각 부인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김 회장의 광복절 기념사 논란에 대해 광복회장으로서의 입장과 생각을 밝힌 것이라며 청와대와는 무관하고, 사전에 간섭한 적도 없다고 선긋기에 나섰다.

, ‘역사전쟁전세 뒤집기vs , 김원웅 사퇴촉구

친일파 청산 논란은 한국사회의 고질적 과제다. 해방 이후 7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논쟁은 진행 중이다. 김 회장의 과격한 주장에 여야 정치권은 논쟁 속으로 뛰어들었다. 통합당은 김원웅 회장을 맹비난하며 사퇴를 촉구했다. 모든 일에는 공과가 있는데 김 회장의 무리한 역사인식이 오히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는 설명이다. 반면 민주당은 김 회장의 연설을 지지하면서 통합당의 반발을 비판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친일파라고 하는 이야기는 상식에 맞지 않는 이야기라면서 황당하게 느꼈다고 지적했다. 배준영 대변인은 초대 임시정부 대통령을 이름만으로 부르고, 대한민국의 국가인 애국가를 부정하고, 현충원의 무덤까지 파내자는 무도한 주장을 했다며 김 회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장제원 의원도 편 나누어 찢어발기고, 증오하고, 저주하는 광복절 기념식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하태경 의원 역시 일본과 수교까지 거부했던 이승만을 친일부역자로 몰았다김구를 포함한 독립운동 선열이 자랑스럽게 불렀던 애국가를 친일 노래로 매도했다고 꼬집었다. 통합당은 나아가 독재부역이라는 김 회장의 과거 정치행보도 문제삼았다.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에 공채 합격해서 전두환의 민주정의당까지 당료로 근무했다친일 잣대만으로 이승만을 비난하고 안익태를 민족반역자로 저주한다면, 김원웅은 독재 잣대만으로 부역자로 비난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통합당과의 연대설이 나도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역시 산업화와 민주화의 75년 역사를 순식간에 삭제시키고, 대한민국을 분열과 갈등의 해방공간으로 돌려놓으려 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은 일제히 김 회장을 지원사격했다. 특히 통합당의 거센 비판에 통합당은 친일파들의 대변자냐는 날선 반응을 쏟아냈다. 이낙연 전 총리와 박주민 의원 등 당권주자들도 응원에 나섰다. 이 전 총리는 친일 잔재 청산을 충분히 못 한 채로 지금까지 왔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것 아닌가. 광복회장으로서는 그런 정도의 문제의식은 말할 수 있다고 옹호했다. 박주민 의원은 친일청산은 여야의 정파적 문제도 아니고, 보수·진보의 이념의 문제도 아니라 국민의 명령이라는 김 회장의 광복절 축사 말씀을 깊이 새기고 있다고 지지의사를 밝혔다.

여야의 논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논란의 당사자인 김 회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여야의 역사전쟁에 기름을 끼얹었다. 김 회장은 광복절 이후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6·25가 난 그날 백 장군이 이끌던 육군 제1사단이 안 나타났다. 백 장군은 사형감이라고 거칠게 비난했다.

이승만은 해방 이후 미국에 빌붙어서 대통령이 된 분이라고 비난하며 논란을 확대 재생산했다. 이어 820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안익태가 베를린에서 만주국 건국 10주년 축하연주회를 지휘하는 영상을 친일 증거 사례로 제시하면서 국가 교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특히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행위는 음악·역사계에서는 이미 상식이라며 친일 반민족 권력이 장악해온 민족 반역의 시대를 종언하는 것이 우리의 역사적 의무라고 주장했다.

토착왜구 프레임 차기대선 앞두고 역사공방 가열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 회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청산 3대 법안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 회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청산 3대 법안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여야 역사전쟁의 불씨는 이미 당겨졌다. 더 큰 문제는 김 회장의 광복절 기념사만이 아니다. 최근 별세한 백선엽 장군에 대한 공과 평가와 현충원 안장 여부가 또다시 쟁점이 될 수 있다. 특히 백 장군에 대한 현충원 안장의 적절성을 재론하는 것은 진보·보수진영이 한국현대사 인식을 놓고 벌이는 전면전이 될 수밖에 없다.

진보진영에서는 백 장군이 독립운동가를 탄압한 친일파로 6.25전쟁 당시의 공적이 과장됐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반면 보수진영에서는 백 장군이 6.25 전쟁 당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영웅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여야의 역사전쟁을 장기적인 호흡으로 봤을 때 차기 대선국면에서 한일관계도 변수다.

역사적으로 한일관계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 때마다 국내에서 정치적 논란이 커져갔다. 특히 한일 양국의 지도자들이 역사문제를 국내 정치에 활용할 경우에는 파문은 일파만파로 확산돼갔다. 김 회장이 쏘아올린 역사전쟁의 불씨가 위기의 한일관계와 결합할 경우 정치적 파급력을 예측불가 수준이다.

여권으로서는 민족정기 확립을 명분으로 차기 대선을 겨냥한 승부수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강제징용과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로 한일관계가 한 걸음도 진전하지 못하다는 장기 교착국면을 고려해 역사전쟁을 차기 대선의 히든카드로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통합당은 코로나19 재확산과 경제위기 가속화 국면 속에서 지나친 국론분열 행위라고 비판하면서도 여권의 속내를 의심하고 있다.

특히 광복절 기념사 논란은 김 회장의 일회성 돌출 발언이라기보다 여권 핵심 주류와 모종의 교감 하에 나온 의도된 도발이 아니냐는 의심이다. 다시 말해 여권이 역사전쟁 카드를 통해 정치판 뒤집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실제 민주당은 지난해 7월 한일 경제전쟁 당시 보수야권을 이른바 토착왜구프레임으로 몰아세우며 정치적 재미를 본 적 있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의 통합당이 총선 이후 혼란상을 어느 정도 수습한 뒤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권의 이러한 의도를 조기에 차단해야 한다는 시급성도 있다.

통합당 역시 전면전에 나서고 있다. 여권의 친일파 프레임에 휘말릴 경우 상승세에 놓인 당 지지율이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략적 목적의 국론분열 행위와 진영논리에 매몰된 외눈박이 역사인식에는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여의도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대한민국 역사가 일제강점기라는 식민지를 거쳤다는 점에서 친일파 청산을 거부할 수 없는 논리다. 친일파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세우자는데 반대할 국민은 없다면서도 다만 역사의 공과를 균형적으로 보지 못하고 여권이 지나치게 정략적인 의도로 접근할 경우 오히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은 물론 엄청난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향후 민주당이 당 차원에서 일부 강경파 의원들이 발의한 이른바 친일파 파묘법공론화에 나설 경우에는 백선엽 장군의 사망을 계기로 불거졌던 극심한 정치사회적 갈등이 재현될 수밖에 없다친일파 청산을 비롯한 과거사 문제가 자연스럽게 차기 대선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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