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힘’ 선사시대 유적 밀어 버리고 100년 무상임대 테마파크 세워

중도에 세워질 예정인 레고랜드 테마파크 건설 현장에 중장비들이 드나들고 있다. 뒤로 '어린이들의 굼과 희망이 실현됩니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창환 기자]
중도에 세워질 예정인 레고랜드 테마파크 건설 현장에 중장비들이 드나들고 있다. 뒤로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이 실현됩니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내년 7월 강원도 춘천시에 개장 예정인 세계 최대의 ‘레고랜드’ 개발 사업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14년 개발 부지에서 대규모 선사시대 유적과 유물이 출토되면서 시민단체 및 역사단체 등과 지속 마찰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혈세 부담 증가와 사업 임대 수익률 조작 또는 하향 조정 의혹 등으로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강원도의원 등 49명이 검찰에 고발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시민단체 등은 이들 49명에 대해 배임과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특히 최 지사에 대해서는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추가했다. 레고랜드 개발 사업과 관련해 승인된 안건이 배임에 해당하며 이로 인해 강원도에 손해를 입혔다는 이유다.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 아래 묻히게 될 국내 최대 청동기 유적
시공사 ‘삐걱삐걱’ 매년 변경, 4차례 선정 후 ‘다시’ 현대건설

강원도와 춘천시는 2008년부터 세계 2위 테마파크그룹인 영국 멀린사(社)와 손잡고 장난감 레고를 주제로 하는 놀이시설 및 테마공원인 ‘레고랜드 코리아’를 춘천시 의암호 중도에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공사는 내년 7월 개장을 목표로 진행 중이지만 이는 당초 2015년 개장을 계획했다가 공사 관련 각종 비리와 멀린사의 직접 투자 포기 등으로 두 차례나 미뤄진 뒤에 결정됐다. 

특히 2014년 7월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지에서 청동기시대 복합유적들이 출토됐다. 유적 발굴 조사결과, 대형 취락에서 방어용 환호(環壕)가 발굴되고 집터 917기, 비파형동검, 청동도끼, 고인돌무덤(지석묘) 101기, 경작지 등 단일면적 국내 최대 유적이 발굴됐다. 역사단체 140여 곳이 모인 ‘중도유적지킴본부’는 춘천지법에 레고랜드 개발 시행사인 엘엘개발 등을 상대로 건설공사 진행 금지 및 청동기 고인돌무덤 이전 금지 등의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어 시민연대와 경실련 등도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됐는데 비밀 협약 후 10년간 밀실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공유지 헐값 특혜 논란 검증과 소상공인 보호대책 등도 점검해야 한다”며 강원도와 춘천시에 레고랜드 관련 공개 검증을 위한 시민공청회를 제안했다.

‘귀 닫은’ 강원도, 나홀로 전진

이런 제안에 강원도 및 춘천시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레고랜드추진단은 공청회 제안을 거절했다. 이들은 “사업 시작 전인 2013년10월 설명회와 공청회를 진행했으므로 다시 열 계획이 없다”며 “시민단체의 문의에는 상세하게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건설공사 및 고인돌무덤 이전 금지 가처분 신청도 기각됐다. 재판부는 “이 사업 진행으로 채권자(중도유적지킴본부)들이 입게 될 손해나 위험이 현저할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채권자들의 주장으로 공사 중지 가처분을 내리면 채무자(엘엘개발 등)로서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당한 규모의 손해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중도 레고랜드 개발 과정에서 출토된 단일 규모로 국내 최대인 청동기시대 복합 유적 등을 보존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창환 기자]
중도 레고랜드 개발 과정에서 출토된 단일 규모로 국내 최대인 청동기시대 복합 유적 등을 보존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창환 기자]

2015년 말에는 이욱재 전 춘천시 부시장이 레고랜드 시행사인 엘엘개발 전 대표 A씨로부터 뇌물 수수 등으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 전 부시장에 대해 징역 5년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고 A씨에게는 뇌물공여 의사 표시 등으로 법정 구속하고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또 A씨로부터 7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전 특보 B씨에게는 7000만 원 추징과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016년 4월에는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책임준공’에 대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해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2016년 6월 SK건설과 대림산업 컨소시엄이 시공사로 참여했다가, 다시 2018년 5월 STX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된다. 하지만 역시나 1년이 지나 2019년 8월 계약이 해지 된다. STX건설은 강원도 등의 일방적 해지에 법적 대응을 준비했으나, 레고랜드 테마파크 주변 리조트 부지 등의 공사를 맡기로 합의하면서 일단락 됐다. 

강원도와 마찰을 빚었던 현대건설이 3년 만에 다시 시공사로 재계약을 하기에 이른다. 이는 최초 1억 달러(약 1200억 원)를 투입하기로 했던 멀린사가 직접 투자를 철회하면서 강원도와 국내 시공사 등을 중심으로 사업이 추진됐다가 다시 멀린사가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재차 밝히면서 시공사가 바뀌는 사태가 발생한 것. 

영국 멀린社, 시행사로 나서면서 시공사 갈아치워

이에 대해 강원도 측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완전히 해소됐고 오는 2021년 개장을 목표로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영국 멀린사가 직접 시행사로 나서고 현대건설이 공사를 진행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임대료 관련 밀실협상 의혹이 제기됐다. 당초 강원도가 멀린사로부터 받기로 한 임대료보다 턱없이 낮은 비용으로 변경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기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난 19일 중도유적지킴본부 등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강원도가 수천억 혈세를 붓고도 월 임대료 400만 원의 밀실 계약을 맺었으나 이를 강원도의회에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강원도가 국가와 국민의 재산을 파괴하는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혈세 낭비 레고랜드 중단 촉구 문화예술인, 춘천시민·사회단체, 제 정당, 범시민대책위원회’ 등 지역 시민단체는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곽도영 강원도의회의장을 비롯한 도의원 등 총 49명을 ‘레고랜드 임대료 밀실 협약 논란에 따른 허위사실 유포 및 부지 고가 매입에 의한 공동배임, 직권 남용, 직무유기’ 혐의로 춘천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이들에 따르면 세계적인 테마파크 레고랜드가 강원도 춘천시 중도에 들어서는데 우리는 건물 공사를 하고도 8%의 임대료 수익 배분을 30%에서 3%로 깎아줘서 월 400만 원만 받게된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100년 동안 무상임대를 해주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최문순 지사 등은 이런 밀실 협약을 10년간 외부에 알리지 못하게 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강원도는 “임대료 관련 현재 중동이나 중국 등 다른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테마파크 조성 사업 등으로 멀린 측이 비밀로 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든 크든 세금이 들어가는 부분이라면 이를 상세하게 공개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과 송구함이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다만 기존에 운영되고 있는 각국의 테마파크 등과 비교하면 멀린사와의 계약상에 불리한 조건은 없다. 오히려 후차적인 경제효과를 더욱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수천 년 세월 자리 잡은 청동기‧선사시대 국내 최대의 복합유적과 유물들은 그 위로 지나다니는 중장비와 대형 트럭들에 의해 지금도 훼손되고 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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